감정을 소비하는 시대, 인간은 감정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앞부분은 유치하지만, 그걸 견디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시청자 다수의 평이다. 그리고 그걸 ‘꼭’ 견디는 걸 추천한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올해 나온 어떤 작품보다 많은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린다. 드라마에 시대상을 'too much'하게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보고나면,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에 시청해보길 권한다.
그 많은 요소 중 이번 글에선 작품을 ‘인간의 감정’을 관점으로 바라봤다. (추후, 다른 관점으로 글 또 올릴 수도 있음)
요즘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기보다, 감정을 소비하는 주체에 가깝다.
드라마와 음악, SNS 속에서도 감정은 여전히 오가지만, 그 온도보다 숫자가 먼저 계산된다. ‘좋아요’와 ‘팔로워 수’가 감정의 척도처럼 작동한다. 감정을 주고받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깊이보다 반응의 속도가 중요해졌다. ‘감동받았다’는 말조차 이제는 공유와 좋아요로 대체된 반응의 언어가 됐다.
AI의 확산은 그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사람들은 생각과 감정 모두를 기계에 위탁한다. 기업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감정을 ‘참여율’과 ‘체류 시간’으로 계산하고, SNS는 감정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증명해야 하는 무대로 변했다.
SNS는 이제 감정을 증명하는 도구이자, 성공을 계산하는 사회적 알고리즘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의 인간은 더 이상 복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 성취하는 주체다.”
철학자 한병철이 자신의 저서이자 베스트셀러, 책 『피로사회』 (2012)에서 지적한 대목이다. 그는 이 ‘자발성의 강제’가 인간을 스스로 착취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결국 성과와 속도의 논리가 감정의 여백까지 잠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느끼기보다 보여주기에 익숙해졌고, 행복은 체험이 아닌 성과로 측정된다. 덕분에 인간은 계절이 바뀌어도 집 앞의 꽃이 피었다는 사실조차 무심히 지나치는 존재가 됐다.
감정의 마비는 둔감함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을 숭배한 사회가 만든 피로의 징후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느끼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 이루어질 지니〉의 기가영(배수지 분)은 현시대의 초상이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일종의 사이코패스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라 믿는다, 할머니가 그렇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할머니의 신념이다).
이에 지니(김우빈 분)는 ‘인간은 결국 타락하는 존재’라며 반박한다. 그리고 가영은 지니에게 그 말을 증명해보라고 소원을 빌었다.
감정을 배제하고,이성적으로'만' 접근한 실험은 냉정했다. 감정이 배제된 합리성은 언제나 효율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끝내 마주한 것은 타락의 증명이 아니라, 감정 없는 판단이 초래한 관계의 파괴였다.
감정을 잃은 인간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기에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없다.
SNS 속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주장'들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예일대학교 연구팀은 SNS의 '좋아요'와 '공유' 보상 시스템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 확산을 부추긴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는 사용자들이 정확성보다 반응을 우선시해,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탓이다.
결국 극 중, 가영이 증명하려 한 건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 옳다는 확신 그리고 옳아야 한다는 욕망이었다. 인간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순간, 그녀는 이미 지니와 다르지 않은 위치에 서 있었다.
SNS 시대에 이른바 ‘전문가’는 감정을 나누기보다 정답을 제시하는 존재로 소비된다. 성공하기 위해선 확신이 필요하고, 그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선 타인의 감정을 지워야 한다. 그렇게 근거 없는 확신이 쌓일수록, 사회는 점점 더 감정보다 확신을 주입하며 중시하는 구조로 변해간다. 즉, 성공이라는 개개인의 욕망 때문에 그 외의 가치들은 얼룩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근거와 맥락에 기반한 확신은 사회를 견인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감정과 이해가 제거된 확신은 결국, 타인을 설득하는 언어가 아니라 배제의 언어가 된다. 그리고 이는 극중 타락의 모습과 이어진다.
가영은 마지막 소원으로 '이것'을 빈다.
“평범한 인간처럼 모든 감정을 느끼게 해줘”
그제서야 그녀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 울음은 감정을 온전히 느낀다는 증거였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상실, 지니를 향한 사랑, 슬픔 그리고 그리움 등이 동시에 밀려왔다.
드라마〈다 이루어질 지니〉는 이 지점에서 완성된다.
타락을 증명하려던 실험이, 감정을 되찾는 이야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가영은 이성만 존재하는 인간에서 감정의 인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회복은 단순한 구원이 아니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느낀다’는 행위는 곧 저항이다.
느낀다는 것은 멈추는 일이고, 멈춘다는 것은 계산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감정은 단지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감정은 세계를 해석하는 또 다른 언어이자,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따라서 '감정을 되찾는다는 것'은 인식의 복귀다.
다시 말해, 세계를, 타인을, 자신을 이해하려는 능력의 회복이다.
인간은 그렇게 온전히 느낄 때 비로소 ‘사유하는 존재’가 된다.
감정은 회복의 언어이자, 속도의 문명 속에서 여전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