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은중과 상연〉: 삶의 방향을 비추는 나침반

인간의 본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

by 수나로이



한 번에 보지 못하고 끊어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지나치게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생생하게 재현되면서, 시청자는 마치 주변인의 삶을 훔쳐보는 듯한 불편함과 몰입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 사실성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갈등이 첨예할수록 드라마는 힘을 가진다. 특히 상처 입고 뒤틀린 캐릭터는 그렇지 않은 인물보다 훨씬 강렬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상연(박지현 분)은 그 전형이다. 후기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변하는 상연에게 연민을 보낸다.



사진 출처=넷플릭스



[‘왜’ 은중과 상연인가]


그런데도 제목은 ‘상연과 은중’이 아니라 ‘은중과 상연’이다. 왜일까.


대중은 상연의 고통 앞에서 울컥하다가도 은중(김고은 분)의 고집스러운 선함 앞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어느 순간에는 상연이, 또 다른 순간에는 은중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공감의 저울은 고정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과 상처에 따라 움직인다.


은중은 상처를 이유로 타인을 해치지 않는 인물이다. 현실에선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 존재가 드라마를 제목으로 견인한다. 상연만 있다면 이 이야기는 너무 익숙한 ‘흑화 서사’에 그쳤을 것이다. 은중은 흔들리는 다수(보통의 사람들) 속에서 끝내 스스로를 지켜내는 소수를 상징한다.


사진 출처=넷플릭스



[두 이름이 던지는 질문]


〈은중과 상연〉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는 '인간의 본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다. 상연은 환경에 휩쓸려 무너지고, 분노와 복수심 같은 원초적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이드(id)’의 표출이다.


반대로 은중은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붙드는 기준을 놓지 않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는 초자아(superego)’의 힘이다. 욕망과 분노가 솟구쳐도 끝내 스스로를 다스리는 선택 말이다. 은중은 초자아적 기준을 따라 자신의 본능(id)을 다스리는 인물이다.


사진 출처=넷플릭스



[선택과 책임]


20대의 상연은 아직 자신을 붙잡으려 했다. 상학(김건우 분)으로인해 갈등이 생겼을 때 은중을 찾아가 풀어보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30대가 되면서 그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식으로, 끝내 스스로를 포기했다. 상연은 그렇게 환경으로부터 잡아먹혔다.


은중은 달랐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타인을 해치지 않겠다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이다.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아래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탓이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마지막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 바로 주어진 상황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다.”



프랭클이 말한 ‘태도의 자유’는 은중의 모습과 겹친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인간은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상연은 그 자유를 잃었고, 은중은 끝내 붙들었다.



사진 출처=넷플릭스



[흔들리는 다수, 끝내 붙드는 소수]


〈은중과 상연〉은 결국 두 가지 가능성을 나란히 보여준다. 사회 속에서 바래지고 무너지는 다수(이른바 생존을 위해 '흑화'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지켜내는 소수.


이 작품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상황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그 속에서도 태도를 선택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작품은, 두 인물을 나란히 세워두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상연인가, 은중인가.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가?’


사진 출처=넷플릭스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지 되돌아 보게 하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었다.













*생각을 읽는 데서 멈추지 마세요.

-> 함께 훈련하며 인사이트를 길러가는 자리, <통찰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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