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살인자 리포트가 비추는 것들
최근 들어 영화를 본 후, 유독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 있었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 <살인자 리포트>다.
기자인 주인공 선주(조여정 분)는 살인자 영훈(정성일 분)에게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처음에는 기자로서의 본능이 앞선다. 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윤리 그리고 단독 보도의 기회. 인터뷰는 수단이고 목표는 살인을 멈추고 단독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훈과의 인터뷰 끝에 선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영훈이 죽이려던 사람은 선주의 딸 예린을 성추행한 가해자였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선주의 남자친구 상우였다. 예린이 성추행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정신과 의사였던 영훈을 알게된 것이다.
이를 알게된 순간, 선주는 판단을 멈춘다. 살인을 막기 위해 붙들었던 도덕적 확신은 흔들리고, 그의 선택은 달라진다. 결국 그녀는 살인을 막지 않는다.
이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 동안 여운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람은 어디까지 도덕적일 수 있을까?
“살인은 나쁘다.”
“법대로 해야 한다.”
“사적 복수는 위험하다.”
위의 말들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내 가족, 내 상처가 걸린 문제라면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성추행을 당한 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죽도록 복수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때 느꼈던 분노와 떨림은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는 것을. 그것은 차갑게 계산하는 이성이 아니라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감각은 결코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AI가 대중화되면서, 이 질문은 더 날카로워졌다. AI는 우리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그 이해는 언제나 데이터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문가들은 “AI는 인간이 이해하는 방식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지만 감정적인 말을 흉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선생님은요? 손에 묻은 피가 쉽게 지워지지 않을 텐데요.”
마지막에 선주가 영훈에게 묻는다.
영훈은 웃다가, 죄책감이 묻어난 표정을 짓는다. 그 짧은 표정에 이 모든 일이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AI는 선택 뒤에 남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안다.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마음 깊숙이 무거움을 느낀다. 어쩌면 그 죄책감이, 우리가 윤리를 완전히 놓지 않게 만드는 마지막 장치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정의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입었을 때도 혹은 본인이 상처를 입었을 때도, 그 정의는 여전히 서 있을까.
아니면 흔들리고, 무너지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다시 세워질까. 그리고 그 선택 이후 남는 죄책감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위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정의와 공감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더 알고 싶어 하고, 결국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현 시대에 '나'와 '우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하는 영화, <살인자 리포트>였다.
*생각을 읽는 데서 멈추지 마세요.
-> 함께 훈련하며 인사이트를 길러가는 자리, <통찰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