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지금, 연대는 가능한가

AI가 대중화된 시대, ‘연대’는 가능한가?

by 수나로이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하 ‘케데헌’)가 2025년 여름, 전 세계를 휩쓸었다. 아니, 지금도 휩쓸고 있다.


<케데헌>은 넷플릭스 영화 역대 1위를 기록했다. 또한 ‘싱어롱 단기 상영’만으로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찍었다. OST는 빌보드 핫100에 ‘동시 4곡 TOP10’이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출처=넷플릭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작품’일까?


<케데헌>의 흥행은 단순히 K팝 인기의 연장이 아니다. 이 영화는 지금 ‘인간이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출처=넷플릭스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인기 있을까?]


2025년의 지금, 세계는 정서적으로 피로하다. 전쟁과 경제 위기, 생성형 AI 등장으로 정보는 늘었지만, 정서는 쉽게 소진되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정서적 회복을 갈망한다.


영화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감정 회로가 얼마나 망가져 있고, 그 회로를 무엇으로 복구하는지 보여준다.


<케데헌> 이야기 속에 상실–재결속–공동행동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회로가 설계돼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주인공 루미를 중심으로 미라, 조이는 악마 사냥꾼이자 3인조 K-POP 걸그룹 '헌트릭스'로 같이 활동한다. 그들은 악귀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혼문’을 완성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처음엔 루미가 자신의 정체(반은 사냥꾼 반은 악마인 사실)를 숨기며 균열이 시작되지만, 사실을 공유하고 다시 힘을 모으는 순간 위기가 해소된다.


즉, 정체를 숨김-불신-갈등의 위기를 겪지만, 사실 공유-합의-공동행동으로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건, 정체성의 회복과 동료성의 확인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함께하기(‘연대’)였다.



출처=넷플릭스



[‘같이하기’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


연대는 다른 사람과의 ‘직접’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연대’란, 협의의 정치적 연대가 아닌 감정을 매개로 한 ‘광의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런데 AI의 대중화로 더 심각한 개인화 시대가 되면서 연대는커녕 대면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그리고 이 같은 세태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편리함을 추구해 만든 장치들이 초래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의 결핍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요즘 ‘생성형 AI’가 글·그림·노래까지 완성물을 쉽게 만들어준다. 덕분에 ‘무언가를 만드는 일’의 가치는 확 내려갔다. 동시에 ‘인간이 직접 만든 것’에 대한 가치, 그리고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참여의 가치는 커졌다.

<케데헌>은 낮은 문턱의 참여를 촘촘히 깔아두었다.


일부 관객은 ‘함께 부르기’ 형식의 참여 상영에 갔고, 더 많은 관객은 짧은 영상(릴스, 쇼츠 등)·챌린지·팬아트·코스튬 등으로 온라인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장면·가사·표정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밈이 돼, 그걸 활용해 사람들이 말하게 됐다.


핵심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참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는 오프라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참여해 결속을 느꼈다. 이 다양한 방법의 ‘같이하기’는 지금의 욕구와 정확히 맞물렸다.


출처=넷플릭스



[디아스포라의 힘: ‘메이드 인’이 아닌, ‘메이드 위드’]


<케데헌>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 ‘메이드 위드’ 코리아다. 이 영화는 미국 시스템에서 한국계 창작자들이 주도한 작품이다. 덕분에 찜질방·남산타워·귀신 설화 같은 고맥락 요소(배경지식이 있어야 더 재밌는 것)와, 글로벌 뮤지컬·액션·걸그룹이라는 저맥락 요소(배경지식 없어도 바로 이해되는 것)가 동시에 포함돼 있다.


알고리즘은 저맥락 요소를 읽어 추천하고, 관객은 고맥락 디테일에서 애착을 키운다. 이는 한국계 창작자들이 한국적 디테일을 세심히 담되, 세계가 익숙한 장르 문법으로 배열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출처=넷플릭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함께’하고 싶어한다]


AI가 발전될수록,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 자신을 회복한다.


<케데헌>은 문턱을 낮추고(다양한 참여 경로), 실내를 깊게(정체성·동료성의 감정 회로) 설계했다.


그 결과,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진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 가능해졌다.


거창할 필요없다. 같은 장면을 저장하고, 같은 비트를 따라 하고, 같은 마음을 건네는 것이 시작이다. 그것이 현시대 '맞춤형' 연대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물론 전통적인 연대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혼자 생활하는게 더 익숙해진 시대에 그렇게라도 소통하고 연대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과는 맞닿아있지 않을까.


‘AI發 완성품’이 늘어가는 시대에 우리가 직접 완성할 수 있는, 서로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였다.




*생각을 읽는 데서 멈추지 마세요.
-> 함께 훈련하며 인사이트를 길러가는 자리, <통찰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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