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의 본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는 단순히 ‘우리나라도 총기 소지가 허용된다면’에 대한 이야기일까?
물론 표면적으론 그렇다.
그런데 이 작품이 본질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까?
드라마 <트리거>는 총이라는 사물을 넘어, 각자가 가진 ‘트리거(촉발점)’가 어떻게 눌리고, 다뤄지는지를 집요하게 비춘다. 제목이 이중적 의미를 가진 셈이다.
‘트리거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인간다움을 가르는 기준'임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문백(김영광 분)이 억울한 사연을 지녔거나 복수하고 싶은 대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총을 나눠주며 한국 사회 곳곳의 도화선을 붙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사회의 허점을 정교하게 이용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문 앞 배송과 무인 보관함 등 신뢰를 전제로 작동하는 택배 인프라는 역설적으로 사각지대가 된다. 문백은 총을 택배로 보내 유통 경로를 은폐했고, 경찰이 택배를 추적하기 시작하자 즉시 방식을 우회해 다른 경로로 확산시킨다.
첫 번째 사건의 주인공은 10년 동안 세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사람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하던 정태(우지현 분)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는 평소 예의 바르고 약자를 배려하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태의 선택은, 그의 서사 속에서 총살이 ‘정당화돼 보인다’.
그런데,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지점은 사회에서 권력과 자원이 불균형하게 배분되는 구조에서 기인한 강약약강의 태도가 '어떻게' 한 사람을 극단적인 결심으로 몰아붙이는지 보여준다.
"정태씨, 정태씨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 명인 줄 알아요? 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묻는 말에 사실대로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미안한 마음? 그 새끼들은 나한테 미안한 마음 같은 거 있었을까요? 법도, 규칙도, 상식도 안 지키는 새끼들이"
"어떤 이유로든 총으로 사람을 쏘는 건 정당화될 수 없어요"
"경찰관들이 나쁜 사람들 잡아쳐넣는 것처럼 나도 인간 말종들 처리한 겁니다"
용두사미? 재미와 교훈을 다 잡았다
'용두사미다'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가 없어진다'
위는 <트리거>를 본 사람 中 부정적 평가를 한 이들의 다수 평이다.
하지만 그 재미없어지는 지점은, 이 드라마가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선명해지는 시점이다.
드라마의 후반이 지난, 6화에서 학교폭력을 당하던 규진의 갈등은 극에 치다른다.
규진은 계속되는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한 채 가해자들에게 총을 겨눌지, 멈출지를 두고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렇게 분노가 만들어낸 ‘정당화의 언어’와 멈춤을 선택하려는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이 작품에선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규진은 가해자에게 총상은 입혔지만, 경찰 이도(김남길 분)의 설득으로 살인은 하지 않았다.
이후 문백은 이도가 아버지처럼 따르는 현식(김원해 분)을 죽인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도가, 아끼는 사람이 죽었을 때도 '인간다움'을 유지하는지, 궁금했던 탓이다. 더 정확히는, 문백이 가식이라 생각하는 '인간다움'을 내려놓고,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이도의 모습을 이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더더욱 선명해진다.
‘총을 쥐었기 때문에 사람이 달라졌다’가 아니라, ‘총이 사람의 속을 드러나게 만든 것'
이도 외에도, 태움 문화의 피해자인 한 간호사 역시 총을 겨누지 않았다. 이는 자기 안에 기준을 세워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업무·외모·학벌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해 보이는 후배를 시기·질투해 허위 소문을 퍼뜨리며 곤경에 몰아넣는 선배,
어떤 이로 받은 상처로 인해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 자신보다 잘난 이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열등감의 언어, 익명 커뮤니티에서 ‘정의 구현’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을 집단 매장하는 댓글 군중, 학연·지연을 내세워 평가 권한을 사적 보복으로 바꾸는 관리자, 의견이 다르면 신고·차단으로 발언권을 박탈하고 끝내 신상털기로 이어지는 커뮤니티 문화, 학폭의 기억을 방패로 삼아 새로운 폭력을 합리화하려는 마음….
트리거는 타인에의해서 눌릴 수 있지만,
그 다음의 행동은 우리가 이미 길들여 둔 ‘정당화의 문법’에서 탄력을 얻는다.
누구에게나 트리거가 있다. 이는 곧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처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복수를 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당했음에도 복수를 멈추고 혹은 아픔을 극복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않는다, 극중 이도와 간호사 같이. 이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사회가 그나마 굴러가는게 아닐까.
<트리거>의 여운은 일상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총을 들지 않았지만 매일 작은 ‘권력’을 쥔다. 익명성 뒤에 숨은 댓글 하나, 회의에서의 한마디 등. 그 순간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강자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약자가 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인간다움'의 기준인, '강강약약'을 실천하고 있는지 묻는다.
트리거는 타인이 누를 수 있지만 복수를 할지(or 상처를 줄 지)인간다움을 유지할지는, 결국 각자의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자에겐 단호함, 약자에겐 따뜻함. 이 간단한 기준이 각자의 보복(or상처)의 트리거를 비활성화하는 비법이다.
'나'는 어떤 태도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 <트리거>였다.
*생각을 읽는 데서 멈추지 마세요.
-> 함께 훈련하며 인사이트를 길러가는 자리, <통찰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