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 수가 없다>: ‘나’가 나아가야할 길

어쩔 수 없는 시대에 ‘나’가 나아가야 할 길

by 수나로이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이 질문이 오래 남는다.


주인공 만수(이병헌 분)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삶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러나 구조 조정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한 개인의 판단을 통해, 시스템이 인간을 어떻게 시험하는지 비춘다.


동시에 관객들은 의문을 품는다.

‘아무리 그래도 꼭 죽여야 하는 걸까?’ ‘개연성이 없다’ ‘죽이는 이유가 와닿지 않는다’

실제 영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의 평이다.


하지만 이 지점이 바로, 영화의 본질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출처=모호필림, CJ ENM 스튜디오스



[‘왜’ 어쩔 수가 없을까 ]


이 영화에 악역은 없다. 오히려 진짜 악역은 시스템이다.

AI, 자동화, 효율, 비용 절감 같은 단어들이 그의 실직을 정당화한다. 만수는 그 흐름을 제어할 힘이 전혀 없는 개인으로 그려진다.


이는 AI가 도래한 현시대에 평범한 인간은 안전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비춘다.

여기서 살인은, 이를 더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즉, 영화의 주제가 두드러지게끔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표현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 감독 특유의 표현법과 상업적 영화로서의 지향점을 버무리다 보니, 그 의도가 일부 관객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출처=모호필림, CJ ENM 스튜디오스



[도덕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개인은 왜 흔들리는가]


만수의 선택은 단순히 일자리를 잃은 개인의 불운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길은 결코 단순한 재취업이 아니다. 결국 그는 경쟁자를 제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이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경쟁 구조 속에서 도덕은 점점 밀려나고 있는 세태를 대변한다.


미국의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그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은 언제든 비도덕적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영화 속 세계가 바로 그렇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닮은꼴이었다.

학교의 왕따, 직장 내 괴롭힘, 경쟁으로 포장된 폭력. 시스템은 늘 개인의 도덕보다 한발 앞서 비도덕적으로 움직여왔다.


그 안에 던져진 개인은, 도덕적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기 어렵다.


이 지점은 지금 우리가 사는 AI 사회의 딜레마와 맞닿아 있다.


AI는 효율과 데이터 논리로 움직인다.


하지만 인간의 윤리는 존엄, 책임, 공정성 위에 세워져 왔다.

그래서 오늘날 논쟁은 이렇게 정리된다.


'AI 사회에서 기존의 윤리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혹은
'사회에 맞는 새로운 도덕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가?'


만수의 살인은 비도덕적 사회가 개인을 몰아붙인 끝에 나온 비극이다.


AI 시대의 경쟁 구조는 한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를 좁혀놓는다.


혹자는 얘기한다. 도덕적 신념만으로 이 험난한 사회를 살아내기 힘들다.


그러나 도덕 없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운용될 수 있을까.

출처=모호필림, CJ ENM 스튜디오스


[전문가의 시대 (1%만이 남는 이유)]


AI 시대의 핵심은 분명하다.


‘어중간하게 해내는 사람’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 AI가 다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간보다 더 저렴하고 빠르게 해낸다. AGI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한다.


남은 건 단 하나다. 껌팔이든, 코딩이든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경험, 그것 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이 흐름은 인플루언서의 미래에서도 드러난다.


지금까지는 단순한 대중성, 팔로워 수로 유지되던 영향력은 이제 흔들리고 있다. AI가 일상 콘텐츠를 대량 복제·배포하면서, ‘보여지는 사람’보다 ‘해석하는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다.


실제 데이터도 이 변화를 뒷받침한다.


맥킨지(McKinsey)의 분석에 따르면, AI가 콘텐츠 생산을 대체할수록, 신뢰 가능한 전문 지식 기반 크리에이터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다. 더불어 인플루언서 마케팅 방면에서는 의사·변호사·기자 출신 등의 한 분야에서 일반 사람들의 지식 깊이보다 많이 아는, 인플루언서 계정의 팔로워 충성도가 일반 계정보다 2배 이상 높다는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즉, 경력과 '높은' 전문성이 뒷받침된 사람만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신뢰와 해석력을 보장하고 있기에, 이와 같은 사람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과거에는 없었던, 오진승 정신과 의사가 유튜버로서 인기를 얻는 것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물론 인간은 여전히 사람의 매력과 서사에 끌린다.

따라서 빠니보틀, 곽튜브, 미미미누처럼 ‘고유한 인간성’을 가진 일부는 남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 전체의 방향은 이미 바뀌고 있다.


‘팔로워가 많아서 영향력이 있다’에서

'높은 전문성과 신뢰가 있어서 팔로워가 따른다’로.


아프지만,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냉혹하다.



AI 사회에서 결국 남는 것은 높은 전문성과 인간성이라는 이중의 안전망이다.



출처=모호필림, CJ ENM 스튜디오스



[연출의 아이러니-절박함과 웃음 사이]



만수는 절박하다. 끝까지 발버둥치며, 점점 더 집요하고 대담한 인간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결국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의 잔혹함이다.


그러나 박 감독은 이 이야기를 무겁게만 담아내지 않는다.〈어쩔 수가 없다〉의 연출은 비극적인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비춘다.


관객이 피식 웃게 되는 순간들, 블랙 코미디적 장치들은 인물의 태도가 아니라 감독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죄책감을 잊어야만 움직이는 만수와 그것을 웃음 섞인 잔혹극으로 보여주는 연출. 이 두 겹이 만나면서 영화는 더욱 서늘해진다.



출처=모호필림, CJ ENM 스튜디오스


[어쩔 수 없는 시대 속, ‘나’는 어떻게 남을 수 있을까]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해고 이후 만수의 이야기를 빌려, 결국 인간과 시스템의 관계를 묻는다.

개인의 의지나 성격이 아니라, 구조가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붙이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영화 속 만수에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온다.


지금의 도덕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전문성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실 속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시대 속에서,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를 묻게 하는 영화 <어쩔 수가 없다>였다.

이전 06화드라마〈은중과 상연〉: 삶의 방향을 비추는 나침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