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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

by Outis

1. Monologue; 독백


엄마가 많이 힘들어해. 나라도 엄마를 편하게 해 주자.

말이 없고 얌전해서 좋아? 그럼 안 까불게.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을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엄마가 말하면 무조건 "응, 알았어"라고 대답해.

나 신경 안 써도 돼. 집에 오면 알아서 숙제하고, 알아서 티비 보고, 알아서 다 해. 밥은 걱정 마. 알아서 생라면 꺼내 먹었으니까.

엄마가 그 방에서 안 나와도, 이거 봐,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엄마는 기뻐하지 않지.


내가 엄마를 안 닮아서 '좋다'며. 그런데 왜 금방 웃다가 말아? 왜 날 똑바로 못 쳐다봐?

내가 엄마 자식이라 '사랑한다'며. 그런데 왜 제대로 꼭 안아 주지를 않아?

왜 날 보는 눈이 떨려? 내가... 무서워?


내 탓인가.

내가 공부를 잘 못해서. 내가 예쁘지 않아서.

아니야? 그 정도면 괜찮다고? 그럼 뭐지?


...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나 때문에 아빠랑 이혼을 못해서 엄마가 점점 망가져 가는 거다.

'자식 버리고 나간 어미'란 말 안 들으려고 저 어두컴컴한 방에서 썩어가는 거다.


그렇구나. 엄마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거였구나.

나한테는 사랑할 만한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던 거구나.

날 보고서라도 힘을 낼 만큼 내가, 내가..


거짓말쟁이. 다 거짓말이었어.

사랑한다는 말도, 그만하면 잘한다는 말도, 전부.


믿을 수 없어. 아무도. 그 어떤 말도.

나 같은 게 누군가의 호감을 받을 수 있을 리 없어. 다들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속고 있는 건가? 그럼 언젠가 깨닫고서 실망하겠지?


이럴 바엔 차라리 디스토피아적 시설 같은 곳에서 냉정하게 판단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야.

"너는 몇 점. 고로 쓸모없음. '폐기'."

이런 선고를 맞아버리면 차라리 속이 시원하겠어.



'내 자식이니까',

'같은 인간이니까',

'그러니까 버리지 말고 키워야지'. '존엄성을 갖고 대해야지'.


어쩌면 나는 이런 '인간의 도리'에 편승하고 있는 기생충인지도 몰라.

남에게 해악만 끼치는.



글도 그만 쓸까.

괜히 다른 사람들 시간만 뺏지 말고...




2. Mono; 혼자


"그러다 보면 OO 씨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거예요."


알아요 선생님.

그런데, 그게 맞지 않을까요. 누구한테 피해를 줄 바에는...


그랬어야 했어요. 선생님.

저는, 그랬어야 했어요.




"결혼하면 나중에 헤어져요."


혼인신고까지 마치고 출국만 앞두고 있는 내게 친구는 자기가 아는 역술가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아마도 날 위해 좋은 덕담 혹은 조심해야 할 점 등을 알려줄 거라 기대한 거겠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넌 결혼하면 분명 헤어진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확신을 넘어서 날 질책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에이, 그럴 일 없어요. 양쪽 집 분위기가 되게 보수적이어서."


당황한 친구가 나서자 그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사별하겠네요."


그 말의 중압감에 압도당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그 시점에서 묘한 신빙성마저 느끼고 말았다. 어지간히 확실하지 않은 한 이제 막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은 새신부한테 보통 저런 소리를 하지 않을 테니까.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그가 매우 오만하고 무례한 역술가이거나, 아니면 그가 말한 게 맞거나.


"... 그게, 언제인데요?"


"40대요."


난데없이 내 결혼생활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서,


"나랑 살지 않으면... 그 사람 안 죽나요?"


이렇게 물어보기까지 해 놓고, 정작 그의 대답을 기억하지 못한다.


심상치 않았던 내 상태를 걱정한 친구는 그 후 자기 나름 다른 방법으로 알아 보고서 '그 말은 헛소리였다. 그런 자리를 마련해서 미안하다. 잊어버려라.'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날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나는 생판 남인 그 역술가의 폭탄발언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그래서였다.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견딘 것은.

그렇게라도 해서 죄책감과 불안감을 덜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40대가 된 바로 그해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했다.


그때 이혼을 했어야 하나 싶다.

그때 이혼을 하지 않아서 만약에.. 그럼 어떡하지?


역시 나는 누구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행복을 꿈꾸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찮아. 잘하고 있어."


날 잘 알고, 가까우며, 위로가 되는 몇 안 되는 사람.

내가 그를 힘들게 해서 그렇게 되나? 내가 우울증 같은 거에 시달려서 스트레스를 주나..


나만 없으면 되나.

그래, 나만 없어지면 되는 거 아냐?


또 모든 감각이 멀어진다. 머리가 반쯤 먹힌 기분이다.

내가 왜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는지. 나 스스로가 생소하다.

땅이 꺼진다. 무너진다.



잠시만.

이런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휘둘리는 거, 웃기잖아.

진짜 무슨 큰일이 일어나든,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40대를 넘기든, 불안과 우울로 하루하루를 허비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그래. 내일 무슨 일이 생겨도 오늘을 살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봐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다 너 때문이잖아. 엄마도 남편도, 그리고 애들도.]


[행복하지 마라. 피해 주지 말고 사라져라. 너 혼자 불행해져라.]


[너만 없어지면 돼.]



저 소리를 막을 힘이 나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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