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한 조각과 치즈, 그리고 커피. 어디 내놓기도 민망한 단출한 아침상에 우주가 들어 있었다.
먼저 요 빵에 들어간 밀가루. 어느 밀밭에서 자란 밀에서 왔을까. 밀은 직접 본 적이 없지만, 한때 마당에 지겹도록 올라오는 잡초를 뽑느라 이름 모를 잡초는 꽤 봤다. 그런데 그게 인간한테나 잡초고 미운 놈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결이나 구조가 놀랍도록 섬세하고 정교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잡초도 그러한데 맛있는 빵과 국수의 재료가 되는 밀은 오죽하랴.
그 밀이 뿌리내린 땅은 또 어떠할까. 식물 생장에 필수적인 수분과 미네랄의 저장고이자, 뻗어 내린 뿌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지지대이니, 과연 어머니의 품에 비유될만하다.
그 땅에 비를 내리는 구름도 빼놓을 수 없다. 땅의 물과 바다가 증발하여 만들어지는 구름. 거기에는 또 태양과, 구름을 움직이는 바람도 들어간다. 조그마한 밀알 하나에 이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여기에 미생물이나 벌레의 상호작용, 거름이 되는 생명의 순환, 무심한 듯 서로 전부 이어져 있는 생태계의 조화까지.
밀 하나만 생각해도 이렇게 거창한데, 다른 재료는? 치즈 만드는데 쓰인 우유와 내가 마신 커피에 들어간 우유. 또 소부터 시작해서 태양까지 간다.
다 농장에서 사람이 키우는 건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 해도, 사람의 일이야 도구를 이용해 원래부터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재분배, 결합 및 분해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 결과물이야 매우 놀랍지만, 그것도 자연을 벗어나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사람. 사람도 생각해 봐야지. 밀을 키운 농부들과 제빵사들, 소를 키운 낙농업자들, 치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재료와 완제품을 각지로 운반한 사람들 등. 거기에 빵을 놓은 접시와 커피를 담은 컵을 만든 사람들과 그걸 디자인한 사람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사람들의 기술과 아이디어도. 거기에는 그들이 살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배운 것들이 들어 있다. 아마 어떤 농부는 대대로 농장일을 해왔을지도 모를 일이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일을 보고 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사랑을 느꼈을 수도 있고, 원망을 가졌을 수도 있다. 디자이너의 터치 하나에도 그들의 무의식이 담겨 있다. 살면서 받아들인 모든 자극, 그것들이 융합되고 변하면서 디자인 속에 녹아나는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인생이 여기에 있다.
이쯤 되니 복잡 다양한 것들을 다 처리할 재간이 없는 나의 비루한 뇌가 '우주'라는 개념 속에 모든 걸 집어넣어 버렸다. 마치 방안에 어질러져 있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옷장 속에 다 숨기는 것처럼. '우주? 너무 멀리 간 거 아냐?' 그때 화사한 햇빛이 들어와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래, 우주 맞네. 내가 먹은 빵 한 조각과 커피는 우주의 조화로 가능한 현상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습관처럼 생각 없이 먹어 왔으니,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 싶다. 감사와 반성. 단출한 식사에 거창할 정도로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