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고난을 내리는 것은 그에게 큰일을 맡기려 함이다. '맹자'의 "고자장(告子章)"이 전하는 메시지다.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고,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사람의 그릇을 키우는 것이다.
신체에 비유하자면 근력을 키우기 위해 먼저 근육이 찢어지는 과정이 필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연, 포기하지 않고 산을 오르다 보면 조금 더 강해진 다리로 정상에 우뚝 서서, 땀을 흩뿌려온 길을 내려다보며 아름답다 감탄할 날이 오겠지.
그러나 너무 큰 충격이 가해지면 강해지기 전에 쓰러져 버릴 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선 고난이 닥치면 힘줄이 턱 끊어진 사지처럼 사람은 맥없이 주저앉아 버릴 거다.
누가 신은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하던데,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신 건 아닌가 하는 불만이 발끈 올라올 때가 있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재밌다는 인생은 매 순간이 즐거울 수 없는 것이 함정이다. 역사도 인생도 결국 승자의 편, 위풍당당한 기록도 아름다운 추억도 살아남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달콤함일까.
나의 20-30대는 이미 0도 아래로 떨어진 잔잔한 호수 같았다. 누가 작은 자갈 하나라도 던지면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릴 상태였다. 다만 언제 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진작에 얼음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측정하지 않은 마음의 온도는 점점 내려갔고, 개구리가 맞아 죽을 만한 돌이 첨벙! 떨어진 순간 얼어붙었다. 회복은 아직도 더디기만 하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한심하다 비난할 것이다. "고작 그렇게 되려고 그렇게 살았냐?"며. "그냥 콱 죽지 그랬냐."며. 독설과 저주의 비 속에서 나는 쭈글쭈글 젖어들 테다. 하지만 이런 나도 고개를 들 수 있는 자랑거리가 있다.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요, 대단한 지식도 아니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다.
자랑이라 하니 애들이 뭐 특출 나서 그런가 하시겠지만, 전혀 아니다. 잘하는 건 잘하고 못하는 건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뭐가 자랑이냐면, 그냥 존재 그 자체가 자랑이다. 내가 꾸역꾸역 죽지 않고 살아온 이유가 이 애들에게 이어지기 위해서였나 싶을 정도로 그저 사랑스럽다.
이쯤 오면 '아 지겨워. 또 애 낳으라는 소리인가.' 하고 오해하실 수 있는데,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난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인 당신에게 전하고자 한다. 뒤늦게 깨달은 어리석은 어미가 보니 자식은 부모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이더라고. 내게서 나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나보다 낫고, 감히 내가 꿈도 못 꿀 정도의 존재들이라고. 혹시 당신이 여태껏 그걸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면 지금이라도 알아주기를, 과거의 나처럼 모르셨거나 미처 전하시지 못한 당신의 부모님 대신 내가 전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식에게 어미인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일단은 별 탈 없이 살아 주었으면 한다. 아프지 않고, 배고프면 괴로우니까 어디 가서 굶지 않고, 그렇게만. 남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못된 짓만 안 하면 뭘 하고 먹고살아도 상관없다. 제 가족도 배곯지 않게 하고 살고 있다면 아이고, 감사 감사. 더는 바라는 거 없다. 혹 여유가 되어 다른 사람도 좀 돕고 살고 있다? 그럼 난 자식에게 고맙다 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마음대로 되던가. 내가 그러했듯이 자식도 살다 보면 넘어지고 구르고 할 텐데, 그럴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괜찮다. 넘어지고 배우는 게 있고, 드러누움으로써 깨닫는 것도 있더라. 벌떡 일어날 기운이 있으면 다행이고, 못 일어나겠으면 잠시 쉬어 가도 무리 없다. 인생 빨리 간다고 좋을 것 없고 멀리만 간다고 좋을 것 없으니. 그저 올곧은 마음으로 살아만 있으면 다 괜찮다."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된다고, 넘어지면 그걸로 끝이라고, 혹 당신이 그렇게 알고 있다면 당신에게도 말해주련다.
"그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