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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요?

feat. 7세 고시

by Outis

요새 못 보던 태그가 있길래 뭔가 했더니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4월 23일)을 기념하여 브런치에서 '저작권 글 공모전'을 열었군요. 포용적인 참여 자격 및 방법 덕분에 다수의 좋은 작품들이 응모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저작권이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의 발전으로 특히 요새 많이들 우려하시는 부분이죠. AI가 이제 단순한 지적 활동을 넘어 인간의 창작 활동까지 모방하고 있는 만큼, '창작물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AI의 성장 속도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개발자들 스스로도 놀라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제시간 안에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저작권'이라는 말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거의 안 계시겠지만, 일단 그 정의부터 짚고 넘어갈까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e배움터'에 아주 쉽게 잘 설명되어 있는데요[https://edu-copyright.or.kr/user/schl/selectYothInfo.do],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결과물에 대하여 그 표현한 사람에게 주는 권리"입니다.


지금껏 지구상에 나타난 생물 중 '창작'이라 불릴만한 행위를 한 것은 아마 인간을 뜻하는 '호모(Homo)'라는 말이 붙은 이름을 가진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와 그 친척 정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슬기로운 사람'이란 타이틀을 가진 만큼 현생인류인 우리가 그 분야에서는 월등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위의 정의에서도 저작자를 '사람'에 한정하고 있죠.


그러나 지금, 인간의 창작 능력에 도전하는 막강한 상대가 나타났으니 바로 AI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죠. AI가 제작한 작품의 저작권은 어떻게 될까요? 현행 저작권법 상 '인간의 창작물'만이 저작물로 인정되어 '권리능력을 가진 자연인 또는 법인’만이 저작자로 인정된다 합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https://www.korea.kr/multi/visualNewsView.do?newsId=148927815)] 즉 인간의 개입 없이 생성형 AI가 혼자 만든 것은 저작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죠.


참으로 다행입니다만,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깁니다. 현재는 AI가 저작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과연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요? 정답은 시간이 차차 보여주겠지요. 비관론자인 제 어쭙잖은 예상으론 '인간의 개입'을 증명하기 껄끄러워 현행법이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결국 AI 시장의 자본에 밀려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그래도 창작자인 우리가 똘똘 뭉쳐 권리를 지켜내야겠죠!



그런데 이쯤 오면 말입니다, 조금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한국이 많이 걱정이 되는데요. 뭐가 걱정이고 하필 왜 한국이냐고요? 지금부터는 주제넘게 쓴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린 지금 저작자가 자기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건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예요. 권리를 지키려면 우선 의지가 있어야 하며,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 지금 한국은 이런 창작자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인가요?


'7세 고시'라는 말이 있죠.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뭔 소린가 했습니다. 그래서 순진하게 생각했죠. '아, 7 앞에 1이 빠졌나 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정말 7세, 일곱 살이더군요. '말도 안 돼. 무슨 일곱 살이 고시를 쳐?' 대충 상황을 알아보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보내려고 그 난리를 친다고요? 웃음도 안 나옵니다. 제대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가진, 이렇게 말해서 미안합니다만, 제정신 아닌 부모들이 안 그래도 얼마 없는 애들을 정신병자 만들고 있는 이 기현상에요.


글이 자꾸 길어지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한국은 지금 AI에게 절대 못 이길 종목에 애들을 올인하고 있어요. 인간은 더 이상 지식, 논리적 사고 측면에서는 AI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돈 잘 벌고 유망해 보이는 대부분의 직업은 AI가 대체할 겁니다. 게다가 원래 의사란 직업도 돈 잘 벌기 위해 가질 직업은 아닌데 말이죠. 여러모로 사회가 병들 수밖에요.


그럼 어쩌라는 거냐고요? 전부 다 AI가 채갈 거라는 소리만 하고, 심지어 AI가 창작 분야에도 뛰어드는데? 맞습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미래 전망이 암울하다 하는 거고요. 하지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그나마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걸어볼 만한 것이 무엇인지. AI에게는 없고 인간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요.


그건 바로 육체입니다.


갑자기 뭔 헛소린가 싶으신가요?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말 많이 들어보셨지요? 그럼 창의성이 뭘 뜻하는지 아시나요? 찾아보니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발견하거나,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들을 조합하여 새로이 생각해 내는 특성'이라 합니다. 그런 건 AI에게도 식은 죽 먹기 아니냐 하실 텐데, 맞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인간이 AI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확실합니다.


인간에게는 감각을 느끼고 인지하는 육체가 있지요. 우리는 이를 통해서 외부자극을 받아들이고, 경험이란 것을 합니다. AI에게 인간이 하는 수준의 경험은 불가능해요. 그저 인간이 느끼고 받아들이고 해석한 것을 수동적으로 배울 뿐이죠.


가령 여러분이 뛰다가 넘어졌다 가정해 보세요. 무릎이 까졌어요. 피가 나요. 따끔따끔한 통증, 얼얼한 느낌, 빨간 피와 쇠 냄새, 송골송골 맺힌 땀의 열기와 끈적임. 넘어진 곳은 어딘가요? 까슬까슬한 아스팔트 바닥인가요, 울퉁불퉁 돌바닥인가요, 아니면 낙엽이 쌓인 흙바닥인가요? 계절은요? 날씨는요? 주변에 누가 같이 있나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총체적인 경험의 한 순간이 쌓이고 쌓여 복잡한 기억의 군집을 만들고, 의식과 무의식, 취향과 경향성, 개성을 형성합니다. 이건 AI가 인간만큼 정교한 육체를 가지기 전까진 불가능하죠. 즉, 창작 능력에 있어 인간이 AI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셈입니다.


이렇게 말해 봤자 별 효과도 없겠다 싶어서, 여러분께서 좋아하시는 외국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선 공부만 잘해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힘듭니다. 그래서 애들 어릴 때부터 부모들이 기를 쓰고 예체능을 가르칩니다. 특히 스포츠, 팀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은 높은 가산점을 받습니다. 타인과 협력하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경험을 한 학생을 선호하죠.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요? 충분히 이런 풍부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 학교 끝나면 학원 1, 2, 3... 매일 보는 얼굴에 매번 보는 차창 밖 풍경. 하얀 종이와 까만 글자에 그나마 삽화 정도가 산뜻한 자극이겠군요. 이렇게 한정된 경험에 갇힌 아이들이 과연 AI에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레 포기한 대로 창작에서도 AI에게 밥그릇은 물론 권리까지 빼앗길지도 모르죠. 어려서는 부모의 불안에 휘둘리고, 커서는 AI에게 밀리고,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울긋불긋 꽃도 피었고요. 밥도 차에서 대충 때우고 비밀요원처럼 까만 옷 입고 애들 미행하실 체력과 열정이 있다면, 불안한 마음 훌훌 털어버리시고 오늘은 애들 손잡고 어디 경치 좋은 데 놀러 가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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