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를 살다 간 천재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아래는 "팡세(Pensées: '생각'이라는 프랑스 어)"로 잘 알려진 그의 유고집 중 한 구절이다.
"인간은 한 줄기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온 우주가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 증기나 한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충분히 그를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우주가 쉽게 그를 부술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존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고에 있다."
파스칼은 사유와 이성적 사고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 존재의 유약함과 유한성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우주와 대조되는 인간은 그렇게 하찮을 수가 없다. 어떻게 살아 있나 싶을 정도로.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싶을 정도다.
"인간은 양 극단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사물의 종말과 시원(始原)은 알 수 없는 비밀로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다. 인간은 그가 만들어진 무도, 그가 삼키어진 무한도 인지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위대한 사고라는 것도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 우리는 그저 언젠가 끝이 찾아오리란 것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그것에 다다르는 동안 어떤 길을 걷게 될지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불안한 존재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왜?
그런 얘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한 남루한 행색의 여인이 아기를 등에 업고 장사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지나가던 행인 둘 중 한 명이 그랬답니다. "아이고, 힘들게 애를 업고... 아기만 없었어도 사는 게 훨씬 수월했을 텐데."
그러자 다른 한 명이 그랬다죠. "아니야. 저 사람은 저 애가 있어서 살 수 있는 거네."
여러분은 사람이 죽는 때가 언제라고 보십니까? 심장이 멎을 때? 뇌 기능이 정지했을 때? 아마 "틀려! 사람들에게 잊혔을 때다!"라고 하실 분도 몇 분 계실 텐데요. 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저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다했을 때."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괜히 있는 말이 아니죠. 인간은 몸과 마음 이 두 가지가 온전할 때 최상의 상태가 되고, 몸이 불편해도 마음이 건강하면 살 방법을 찾습니다. 몸 상태가 마음까지 병들게 하거나, 몸은 멀쩡해도 마음이 죽어 있으면 사람은 '생존'은 하고 있으되 '삶'을 누리고 있다고 보기 힘들지요.
끝이 예정된 인생. 의미를 알 수 없는 부조리적인 인생. 그럼에도 당신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품는 것은, 삶에 대한 희망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본능인가요? 두려움인가요? 아니면 욕망?
그것도 아니면, 당신 곁의 누구 때문인가요.
온 우주가 거대한 중력으로 당신을 내리누르는 것 같을 때조차 당신이 버티는 것은, 혹 당신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 아닌가요?
의미 없이 텅 비어 있는 삶이 그의 숨결로 채워져서, 두렵고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있어서, 그저 존재만으로 날 일으키는 이가 있어서, 그래서 당신은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비참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기분을 달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비참함의 최대치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를 잘 모르는 사이에 멸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가 우리와 같은 동료와 함께 있으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비참하고 우리처럼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 죽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을 싫어한다. 어둠이 내리면 활개 치는 야행성 괴수처럼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과 불안함이 그의 내면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을 소모할만한 것, 기분전환거리를 찾는다. 인간관계도 그중 하나다. 파스칼에 의하면 같은 인간에게 기대는 것은 그저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이러한 피상적 위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였고, 하나님 없는 인간은 비참할 뿐이라 했다.
위대한 통찰력을 가진 파스칼이 인간관계 자체를 불필요하게 여겼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종교인으로서 인간중심적으로 살지 말라고, 실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말라고 경고했을 뿐. 애초에 인간이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왜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명하셨겠는가.
사랑. 그것이야말로 무한하고 무기질적인 우주 속에서 유한하고 유기질적인, 결국 썩어 문드러질 인간이 별보다 빛나는 이유이다.
혹 지금 당신 곁에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없다면, 지금껏 당신을 일으켜 주는 이가 없었다면..
그럼에도 당신이 가라앉지 않고 늪 진창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은 민들레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홑씨만큼 가벼운 온정 때문이리라.
그것이 비록 당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어도, 당신이 그들을, 그들이 당신을 모른다 해도.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하나의 민들레 씨앗이 되어 아주 먼 인연으로, 우주에서 가장 약한 힘으로 서로를 잡아끌고 있다.
이 또한 기적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흔한, 기적.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부디 가라앉지 말고 버텨 달라고.
그럼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올 거예요. 당신은 고운 연꽃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