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05 : 세계관의 아이 - 둘째

by 수안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자기 자신의 세계관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둘째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이 아이는 ‘아이답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과 기준, 고집스러운 질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째를 이해하려고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내 세계관이 먼저 흔들리고, 그 틈으로 오래된 감정과 성향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과정은 어색했고 때론 당황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늘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둘째와 보내는 시간은 그래서 단순한 육아가 아니라 내 마음의 구조를 다시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당연하다고 여겨왔는지, 어떤 기준을 붙잡고 살았는지를 조용히 재정렬하게 만드는 과정.

그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지만 잊고 지냈던 감정의 취향들을 다시 찾아냈고, ‘나’라는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으며,
내 마음을 조금 더 정확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순해 보이지만, 속은 늘 자신만의 결로 움직였다. 말을 적게 해도 생각은 깊었고, 감정은 말이 아니라 이미지로 흘러나왔다. 나는 그걸 아주 이른 시기에 알아차렸다.


둘째가 그린 그림 속에는 늘 큰 눈과 별, 삼각형, 설명되지 않는 기호들이 떠다녔다. 그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번역이었다. 이 아이는 마음을 언어보다 상징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감정을 보여주되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세계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그 감각은 그대로였다. 어느 날 친구가 집에 찾아왔는데, 둘째는 문 앞에서 “안 놀아”라고 차분하게 말해버렸다. 그 말투는 냉정해서가 아니라 솔직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계속 집에 찾아왔다. 둘째의 단순하고 정확한 기준은 종종 오해를 만들었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도 있었다.


중학생이 되자 둘째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두루 잘 지냈다. 그러나 그것은 외향성 때문이 아니라 편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깊게 엮이지 않지만 결코 차갑지 않은, ‘중립적 온기’라고 부르고 싶은 태도였다. 그 시절 둘째를 보면, 다른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균형감이 있었다.


둘째에게는 ‘정의감’이라 부를 만큼의 성숙한 가치 개념은 아직 없었다. 그보다는 ‘억울함에 대한 예민함’이 더 컸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다가도 기준이 깨지는 순간에는 감정이 크게 출렁였다. 억울함은 둘째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답지 않은 단단함이 있었다.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말해주면 말투는 사춘기 특유의 무심함인데, 그 안에 작은 자존심과 섬세한 예민함이 함께 섞여 있었다. 겉은 둥글어도 속은 작은 파동에도 크게 흔들리는 사람들만의 결. 둘째는 그런 결을 선명하게 갖고 있었다.


둘째가 ‘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중요한 이야기조차 당장 닥쳐서야 털어놓곤 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미리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감정의 우선순위 때문이었다. 둘째에게 시간은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을 중심으로 흐른다. 계획보다 오늘의 감정, 미리 대비보다 현재의 리듬. 그 질서는 둘째만의 것이다.


고등학교는 둘째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세상은 경쟁과 성과를 기준으로 움직였고, 둘째의 리듬은 그 구조와 맞지 않았다. 재수 때 종합학원의 강도 높은 패턴과 스스로의 속도가 부딪히며 새벽까지 울기도 했다. 그 밤들을 지나며 나는 이 아이가 세상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둘째는 결국 자기 방식대로 다시 일어섰다. 이 아이의 세계는 언제나 그렇게 다시 조립된다.


둘째는 자연을 좋아하고,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고, 돌을 모아 오던 시절도 있었다. 미래를 미리 준비하기보다 순간의 감각에 더 충실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틈만 나면 집안 거실을 뛰어다닐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뭔가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다가도 막상 하게 되면 누구보다 신나게 경험하는 아이였다. 이 모순 같은 면들이 모두 둘째였다. 하지만 이런 경향성은 고정되어있지 않고 굽이굽이 어떤 계기로 인해 스스로 깨어나며 진화하는 중이다.


나는 둘째를 보며 하나를 깨달았다. 이 아이는 세상에 적응하는 아이가 아니라, 세상을 자기 페이스로 조용히 다시 정의하려는 아이였다. 그 모습이 때로는 미완성처럼 보이고 때로는 불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둘째만의 힘이었다.


둘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를 짓고 있고, 그 미완성의 결이 나는 참 좋다. 그것은 가능성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의외의 질문을 던지고, 진지한 결심을 이야기하는 둘째는 여전히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아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성장의 리듬을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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