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과 bravo, my life!
또 한 번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다. 연말(年末)은 곧 연초(年初), 지난 시간을 돌아봄과 동시에 다가올 다음을 다짐하게 된다. 올 한 해를 돌이켜보자면 열심히는 살았는데 잘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행복한 일은 많이 만들었지만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인생에 답이 정해져 있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살기 쉬웠을까. 분명 하루하루 나이는 먹고 있는데 삶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인생이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는 많은 노래들이 있지만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가 요즘 특히 많은 위로를 준다. 노랫말처럼 10년이나 지난 지금에 보면 힘들었던 순간이나 외로웠던 순간들도 결국 지나가 버린 일이었고, 내겐 더 많은 날이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년 전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동안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故 김현식의 백 밴드로 밴드명이 동명의 곡에서 나왔다. 김종진과 故 전태관을 고정으로 유재하, 박성식, 장기호라는 쟁쟁한 인물들이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김현식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김현식 사후 김종진과 전태관은 김현식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앞으로 다른 가수의 세션(백밴드)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1988년 2인조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이 세상에 나왔다.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반인데 리쌍이 다시 부르기도 했던 명곡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비롯해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 ‘12월 31일’ 등이 수록돼 있다. 각각이 봄(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여름(거리의 악사), 가을(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겨울(12월 31일)의 사계절을 상징하며 이 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제외하면 모두 연주곡이다. 당시 연주곡이 수록돼 있는, 심지어 타이틀로 내세운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는데 이 사실만으로 김종진과 전태관의 음악적 자존심을 잘 보여준다. 1집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둬 수록곡들이 큰 인기를 얻으니 대한민국 퓨전재즈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시작은 이러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적 성취는 1집에 그치지 않았다.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에서도 1집과 동일하게 3곡의 연주곡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못 다한 내 마음을’이 수록됐으며 ‘쓸쓸한 오후’나 ‘봄여름가을겨울’처럼 김현식과 함께 하던 시절의 곡들도 포함됐다. 특히 ‘열일곱 스물넷’이나 ‘어떤이의 꿈’이 크게 히트하여 불후의 명곡으로 남게 되었다. 92년에 발매한 3집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은 퓨전 재즈보다는 록의 요소가 더 짙어졌는데 ‘아웃사이더’나 위에 언급한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가 3집의 수록곡이다. 4집 이후로는 침체를 겪다가 2002년 7집 ‘Bravo, My life’로 그간의 침체기를 한 방에 날려버렸고 타이틀 곡인 ‘bravo, my life’는 공전의 히트곡이 되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만루홈런을 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면 전통주 업계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명작의 반열에 들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만찬주로 선정되었던 풍정사계 ‘춘’이 그 주인공이다. 풍정사계의 술들은 찹쌀과 녹두를 이용한 전통 누룩 향온곡을 이용해 빚어지는데 당시만 해도 직접 디딘 전통 누룩으로 만든 술은 드물었다. 풍정사계는 양조장이 위치해 있는 마을 ‘풍정’의 사계(봄여름가을겨울)를 의미하는데 그 이름답게 춘하추동의 이름을 딴 네 종의 술이 생산 중이다. 만찬주로 선정되었던 ‘춘’은 약주고 ‘하’는 과하주(過夏酒), ‘추’는 탁주, ‘동’은 증류주다. 한 양조장에서 사계절, 춘하추동의 훌륭한 전통주들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약주인 춘의 만찬주 선정은 매체에 대서특필되었고 매출 폭등에 품절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중은 더욱이 풍정사계를 궁금해했고 이는 당연히 전통주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니 전통주 업계에 흔히 말하듯 ‘스노우 볼’이 굴러간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이때 풍정사계란 이름을 처음 접하고 전통주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렇게 봄여름가을겨울은 귀로, 그리고 입으로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기쁨을 주었다. 좋은 술은 먹어도 질리지 않고 해가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데, 좋은 음악도 그런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옛 곡들을 수시로 들으면서도 bravo, my life는 처음 나온 2002년 이후로 거의 듣지 않았다. 너무 유명한 노래고 가사에 멜로디까지 좋은 곡이지만 뻔한(?) 곡이라는 것이 나름의 이유였다. 오만을 넘어 무식한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찾아온 인생의 갈림길 위에서 내가 이 노래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고 있는지, 20년 만에 다시 제대로 되새겨본 노랫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요즘에야 제대로 느끼고 있다. 그래, 2023년도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Bravo, Our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