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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훈 Mar 06. 2023

문경훈의 음주동행(音酒同行) 23

시인의 마을

  박재범의 원소주나 백종원의 백걸리를 통해 전통주에 처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우리 술을 계속 찾아 마신다면 십중팔구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술이 있었어?’라며 놀랄 것이다. 서울의 장수막걸리처럼 각 지역에 유통되고 있는 지역 막걸리들은 논외로 치고서도 새로운 막걸리들이 어림잡아 달에 한 개쯤은 세상에 첫 선을 보이고 있는 요즘이다. 개 중에는 눈이 뜨일정도로 새로운 맛과 멋으로 감탄을 불러내는 술들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라벨만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수준으로 단맛 일색의 몰개성한 경우가 많아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름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오히려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맥이 끊긴 우리 술이 다시 관심을 받고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아 내심 반갑다. 아닌 게 아니라 인류 역사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훨씬 전이겠지만 적어도 삼국시대부턴 술을 빚었던 게 확실한 이 땅에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양조장의 수가 적어도 너무 적은 게 현실이다. 백련막걸리로 유명한 당진의 신평양조장, 경북 영양의 영양탁주, 충북 진천의 세왕주조, 배다리막걸리로 유명한 고양의 배다리(능곡)양조장 그리고 충북 옥천의 이원양조장이 당장 떠오르는 정도다.


  그중에서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술은 옥천의 이원양조장의 제품이다. 사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세월과 맛은 정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오래된 양조장이라고 반드시 뛰어난 술을 생산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이제는 스탠다드가 되어버렸기에 고리타분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옛 맛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더 많다. 그러나 무섭게 발전하는 과학기술력의 힘 앞에서도 클래식카는 그만의 멋을 뽐내고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은 디지털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로버트 존슨이 에릭 클랩튼보다 기타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겠지만 그는 에릭 클랩튼이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이며, 현재 대한민국에 이제는 노쇠한 신중현 선생보다 기타를 잘 치는 기타리스트는 어디에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선생처럼 기타를 칠 수 있는 기타리스트는 없다. 무릇 옛 것에는 켜켜이 쌓아온 세월의 멋이 녹아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원양조장의 술도 그랬다. 밀 막걸리인 ‘향수’를 처음 마셨을 때 그 거칠고 진득하니 단맛 가득한 투박함에 놀랐지만 맛을 넘어 그려지던 옛 풍경에 전율했다. 어쩌면 향수라는 이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내 머릿속엔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던’ 그곳이 자동재생 되고 있었으니까. 고향의 풍경을 담담하게 읊조리던 정지용의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여 얼마 전 작고하신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89년 발표한 향수는 개인적으로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의 perhaps love에 전혀 밀리지 않는 명곡이라고 본다. 동 양조장의 쌀 막걸리인 ‘시인의 마을’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10도로 알콜 도수는 향수보다 조금 높지만 마시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며 가벼운 청량감까지 더해져 향수보다 편해졌다. 그리고 이 역시 자연스레 78년 가수 정태춘이 발표한 곡 시인의 마을을 연상시킨다. 노래만 놓고 비교해 봐도 시인의 마을이 향수보다 담담하고 듣기 편하니 걸맞은 이름을 붙인 듯싶다.


  詩人의 마을은 정태춘의 데뷔앨범 명이자 수록곡 명이다. 밥 딜런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정태춘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뿐이지 정태춘은 밥 딜런에 뒤지지 않을 뮤지션이자 시인이다. 아니 그 삶의 궤적을 총체적으로 논해보자면 정태춘은 밥 딜런과 또 다른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데뷔앨범 시인의 마을이 말해주듯 그는 시처럼 아름다운 노랫말을 쓰는 사람이었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도 좋겠오(시인의 마을 中)’라는 노랫말을 그대로 따라간 사람이었다. 그의 영혼의 동반자인 박은옥도 처음 정태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그의 노랫말을 듣고 ‘산문처럼 노랫말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감탄하게 돼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그에게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데뷔 앨범의 촛불(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이나 2집의 양단 몇 마름과 탁발승의 새벽노래, 4집의 떠나가는 배(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와 5집의 북한강에서(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힌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그리고 아내 박은옥이 부른 회상(그대 내 생각 잊었나 우리 사랑 잊었나 그대 노랫소리  파도에 부서지며 내 가슴 적시던 날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등 그의 디스코그래피엔 한 편의 문학작품이라고 불러야 할 보석 같은 작품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가 활동하던 70·80년대의 대한민국은 그의 노랫말처럼 아름답기만한 곳은 전혀 아니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배불리 먹는 자들이 늘어났지만 모순적이게도 경제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신음하며 고통받던 이들 역시 늘던 시기였다. 도시의 성장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정태춘이 사랑하던 자연은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그리고 정태춘은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만 노래하는 가수가 전혀 아니었다. 그는 기타를 메고 전국을 돌며 대중을 만났다. 88년 청계피복노조가 주최한 집회에 돌연 얼굴을 내밀고 노래를 했던 그는 이후 적극적으로 고통받는 대중과 소통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또 힘을 북돋아주었다. 이러한 활동은 지극히 현실고발적이며 비판적인 노랫말로 이어졌다.


  1990년 정태춘은 사실상 검열이었던 공윤(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아, 대한민국...>을 발표하였다. 아, 대한민국...(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이나 90년 3월 망원동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주제로 한 우리들의 죽음에서처럼 무섭도록 직설적이며 현실 비판적인 가사와 5번째 앨범을 발표하던 프로 뮤지션의 음악적 성취가 어우러진 예술성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의 방향성과 음악성은 결국 6집 <92년, 장마 종로에서>에서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의 음악적 투쟁은 결국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사전심의제도를 폐지시키는 쾌거를 이룩했다. 세상이 변하자 음악을 접고 고향에 은거하며 농촌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도 직접 나섰던 그는 2012년 세상에 돌아와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서울역 이씨, 날자 오리배와 같은 곡을 선보이며 그가 왜 훌륭한 뮤지션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는 78년 자신 꿈꾸던 시인의 마을을 위해 40년을 한결같이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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