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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훈 Mar 10. 2023

문경훈의 음주동행(音酒同行) 24

안녕

  34년 인생 가장 바쁜 2월을 보냈다. 퇴직과 재취업, 간단한 이사, 그리고 연이은 송별회가 한꺼번에 찾아온 2월이 다른 달보다 짧다는 것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찾아왔다고 표현하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어 보이니 정정하자면 내가 선택한 퇴직과 재취업이었다. 삶과 술이라는 주제가 아니었다면 퇴직의 변과 더불어 혹시 퇴직을 선택할 누군가를 위해 주제넘은 잔소리라도 남기고 싶지만 다른 기회를 노려보도록 하겠다.


  많은 추억과 사람을 그곳에 두고 왔다.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하남2지구의 횟집 만고강산, 해산물과 한라산이 맛있었던 독도, 집밥이 그리울 때 찾아갔던 미가촌의 고등어 무조림, 맵지만 전라도의 손맛이 살아있던 전라도 아구집, 대낮에 찌개와 고기를 구워 낮술에 취하던 우미정, 광주에선 꽤나 유명한 미역국과 간재미 맛집인 양림동의 백수 간재미와 그 주변으로 삼삼오오 모여있는 옛날식 라이브카페들...어느 곳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추억의 책장 한편을 차지할만한 곳들이었다. 그리고 화반, 한국술집 화반(花盤)이야말로 내가 쌓은 책장 그 맨 앞에 위치해야 한다. 전남대 후문 골목 한쪽에 위치한 이 작은 식당엔 광주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전통주들이,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술도 술이지만 어머님의 손맛으로 빚어낸 음식들은 마리아주가 무엇인지 혀끝부터 느끼게 해준다. 처음 광주에 내려오고 술도 술이지만 사람이 그리워 찾아간 이곳에서 참 많은 술을 마셨다. 문래동 날씨양조의 봄비, 오로라, 열대야와 신기루, 방배동 한아양조의 일곱쌀과 아홉쌀 등을 처음 마셨던 것도 화반에서였다. 먼 남쪽 지역이라 의외로 서울에 신상술들은 마시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 갈증을 화반에서 풀 수 있었다. 부재료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려 탁주를 빚는 C막걸리, 삼양춘과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이 협업해 만든 스파클링 약주 오 마이갓, 가히 단양주의 최고인 서막, 누룩장인으로 유명한 한영석 소장님의 청명주, 유자맛의 극치인 구름아 양조장의 유자가 09 등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명주들을 화반에서 함께했다. 무엇보다 화반이 좋은 이유는 그곳에 좋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혼자 술을 마셨지만 외롭지 않았다. 아니 화반에서라면 오히려 혼자가 좋았다. 화반의 주인은 술맛에 냉철한 소믈리에이자, 주린이에겐 친저한 길라잡이였고 음악을 진정 사랑하는 DJ였으며 무엇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말벗이었다. 재즈, 블루스, 락 장르를 불문한 음악과 함께 술을 마시며 그렇게 수많은 밤을 위로받았다.


  그러니까 결국 술도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마시고, 사람과 마시는 것이다. 광주의 수많은 술집과 식당을 추억하는 것도 결국은 음식의 맛을 넘어 함께 했던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웃고 떠들다가도 눈 부릅뜨고 싸웠지만 박노해 시인의 말마따나 ‘사랑하고 실패하고 잘못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분노’했더라도 당신들과 함께라서 좋았다. 사랑하기에 싸우고, 사랑하기에 울고, 사랑하기에 또 화해하고...... 결국 미움도 사랑이라는 것을 왜 떠나기 전엔 생각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그룹사운드 산울림의 11집엔 ‘안녕’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처럼 난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울면서 멀리멀리 가버렸다.


산울림 11집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김창완의 보컬은 삶에 달관한 어른과 천진난만한 아이의 목소리를 오간다. 수록곡 안녕은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그러한 김창완의 특성이 잘 드러난 곡이다. 개인적으로 자주 들으며 자주 부르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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