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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훈 Sep 30. 2023

문경훈의 음주동행(音酒同行) 27

그날은 별들이

  방학을 맞아 몽골을 다녀왔다. 언제나 내 여행 버킷리스트 목록의 1, 2위엔 몽골과 스페인의 산티아고길이 있었다. 가고 싶었던 대단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 은사님께서 '몽골의 밤하늘엔 은하수가 보인다'라고 말씀하셨고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쏟아질 듯 무수히 많은 별을 보고 싶었다. (MBTI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P의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임철우 작가는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모든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 소설을 수도 없이 읽으면서 작 중 배경인 낙일도의 별을 얼마나 상상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별이 빛나는 곳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먼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하다.


  도착한 몽골은 생각 그대로였고 상상 이상이었다. 드넓은 초원, 끝이 없이 펼쳐진 지평선, 높은 하늘, 사람보다 많은 가축들이 있는 곳이라고 분명 알고 떠났고 실제로 다를 것 없었다. 그러나 그 감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드넓은 초원과 높은 하늘이 주는 해방감은 실로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였고 생전 처음 본 수많은 가축의 무리는 자연히 입을 벌리게 했다. 하루에만 차로 평균 대여섯 시간을 이동할 정도로 광활한 땅이었고 그 안엔 350만의 사람과 7,000여만 마리의 가축이 자연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그들의 도시는 우리와 다를 바 없겠지만 초원에선 밤이 깊으면 정말 할 것이 없었다. 다행히 어둠이 한국보다 늦게 찾아왔지만 전기는 가정용 비상 발전기로 겨우 충당했고, 와이파이나 모바일 데이터는 사실상 터지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하늘 아래 존재하는 것이라곤 대지와 풀과 바람, 게르와 사람이 전부였다. 몽골 현지인들은 그래서 밤에 잠을 자거나, 무더운 낮을 피해 밀린 일을 하거나 혹은 삼삼오오 카드게임을 하며 술을 마셨다. 다행히 맛있는 보드카와 맥주가 저렴한 곳이었고 나와 일행은 매일밤을 보드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더욱 깊은 밤이 찾아오면 한 손에 보드카를 넘쳐흐르도록 따르고 게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올려다본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흩뿌려져 있었다. 별들을 세며 고개를 젓다보면 검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우윳빛 은하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은하수는 우윳빛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있었을까. 보드카와 밤하늘에 별, 그 두 가지 만으로도 몽골에 온 모든 당위성이 충족되었다. 문득 노래가 듣고 싶었다. 이 모든 아름다움에 화룡점정 혹은 금상첨화는 좋은 노래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안 터지는 데이터를 어떻게든 연결시키려 용을 쓰고 결국, 마침내 한 곡을 재생할 수 있었다. 

 

  '그날은 별들이', 조동진의 곡이었다.


조동진 6집 '나무가 되어'


  지금은 돌아가신 포크송의 대부, 조동진은 2016년 그의 삶의 마지막 앨범을 발표했다. 어떤날의 조동익은 알았어도 조동진은 몰랐던 난 무언가에 이끌린 듯 그 앨범을 들었다.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충격에 소름이 돋았다. 오랜만에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의 희열이란, 긴 시간땅속을 찾아해맨 광부가 마침내 금광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것이다.  첫 번째 곡인 '그렇게 10년'부터 마지막인 '강의 노래'까지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는 조동진의 노랫말과 이야기하듯 조곤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몽환적이고 풍성한, 닿을 것 같지 않다가 어느새 이 앞에 훌쩍 넘어와있는 절묘한 사운드가 조동진이라는 세계수(世界樹)가 만들어낸 앨범이었다. 그 이후로 빛바랜 사진첩을 뒤지는 설렘으로 그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제비꽃', '행복한 사람', '겨울비', '슬픔이 너의 가슴에', 얘야, 작은 아이야' 뒤늦게 발견한 조동진의 세계는 이제는 아무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서글프게 아름다웠다.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옛 시대의 아름다움이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달할 수 없는 그 거리는 나를 눈물짓게 한다.


   다시 몽골의 밤. 적당히 오른 취기와 시원한 초원의 바람, 대지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했고 제 자리를 찾은 음악은 별과 함께 마음에 박혔다. 

그날은 별들이 쏟아질 듯 머리 위에 닿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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