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솨아악 사스 락 솨악~'
김영랑 생가의 뒤편 대나무 숲소리가 나무끼리 부딪칠 때마다 여름이지만 시원한 소리를 낸다.
생가 마루에 앉아 있으니 내게도 고향집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포근하고 아늑한 기운이 감돈다.
시인은 이 집에서 45년을 지내면서 '모란이 피기까지' 등의 많은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형제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오메 단풍 들겠네'라는 시도 알았다.
'오메 단풍 들겠네'시도 좋지만 '모란이 피기까지'는 셀리의 시 '겨울이 깊으니 봄이 머쟎네'의 봄 찬양 못지않은 희망을 노래하는 수작인 것 같다
해설의 달인처럼 느껴지는 여 문화해설사가 말해준 김영랑 시인과 무용가 최승희의 사랑이야기도 재밌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지만 평생의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심정이 시의 모티브가 된 것 같다. 시는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으므로 그렇게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봄에 만나 봄에 헤어져서 그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모란의 피기까지'시와 다른 한 편으로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시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을 알았다.
김영랑 생가 뒤편에 가면 세계 모란공원 있다.
여름이라 모란은 지고 없었지만 수국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내내 햇살은 뜨거워도 바람이 간간히 불어와서 걸을만했다.
공원을 내려와 여행의 빠질 수 없는 재미인 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강진 오일 장터로 갔는데 시골장이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매실 개복숭아 특히 바지락이 아주 싱싱했다. 가는 길이 멀어 바지락을 못 사 온 것이 내내 걸렸다.
바지락 칼국수 바지락 넣은 봉골레 스파게티 등 상상을 해봤다.
점심은 병영에 있는 수인관 연탄돼지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목포에서도 못 먹은 홍어삼합까지 남도의 맛을 제대로 느꼈다.
점심을 먹고 월출산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강진 차밭으로 갔다.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제자들과 월출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맘에 들어 들렸다는 백운동 별서 원림 옆 강진 차밭이다.
다산 정약용이 차를 즐기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옆 숲길로 한참 들어가니
비밀의 정원 호남의 삼대 정원인 백운 동 별서 원림이 있었다.
원주 이 씨의 가문인 이담로의 은거를 위한 민간 정원인데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자연관과 철학적의미가 담긴 은밀한 공간이다.
이곳도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다고 했다. 좋은 곳인데 손을제대로 보면 좀더 나은 공간이 될것같았다.
아홉 살 막내 제자 이시헌이 이 집의 6대 손이라고 하는데 정약용의 높은 학식과 인품에 감복하여 예를 갖추어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예전 유배지라 함은 중죄인은 가시나무로 둘러싼 위리안치가 있었고 죄의 중함에 따라 한양에서 먼 제주도나 강원도 호남권으로 추방을 했는데 그지역 사람들은 유배 온 사람들을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다고 한다.
한양에서 추방당해온 죄인들은 유배지에 도착하면 죄인들은 그야말로 불청객들이었다.
그나마 신분이 높거나 학식이 높은 사람들은 글을 배우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았나 싶다.
여행을 다녀오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녀온 곳을 조사하고 되짚어보면서 복습하는 느낌이 든다.
끝으로 정약용 선생의 타고난 재주나 영리함에 의지 하지 말고
'부지런 하라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라'의 문구를
다시 한번 맘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