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사람들은 왜 목포로 갈까?
사는 맛 레시피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목포가 늘 궁금했다.
이별한 사람들은 왜 목포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과 목포 하면 떠오르는 바닷가 항구의 게미진맛도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끌린 것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이다.
트로트 노래에 이별의 종착역은 목포가 많다.
대전발 영시 오십 분, 목포행 완행열차
남행열차 등 목포나 남도로 떠나는데
이별하고 가는 기차의 뒷모습은 바라보는 연인의 마음은 안타까울 뿐이었을 것이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 분"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안 가본 곳은 늘 설렌다. 묘하게 상상도 하게 된다. 그지역만의 독특한 사투리도 재밌다.
이상하게 목포 밑 완도 보길도는 갔다 왔어도 목포는 가지 못했었다.
중부지방에서도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니 연고도 없는 목포에 가기는 쉽지가 않았다.
올여름에 시누이 부부와 남편이 목포에 민어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해서 옳다구나 하고 합류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네 시간 반 걸려서 목포에 도착해서 유달산부터 들려서 목포항 쪽을 바라다보았다.
멀리 목포항이 보이고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적산가옥이 군데군데 보였다. 유달산 허리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볏짚으로 착각하게 해서 왜군을 쫄게 했다는 노적봉과 이난영 비가 있다.
'300년 원한 길에 노적봉 밑에~'노래 가사는 300년 전 정유재란부터 시작된 한이다.
단순 사랑의 트롯이 아닌 저항정신이 있는 노래이다.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게 목포사람들이 희생이 많이 되었었다.
일본으로 수탈한 물건과 함께 끌려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목포항 뱃머리에서 얼마나 이별의 아픔으로 울었던가! '부두의 새악시 우는 마음 목포의 설움~ '
맛집으로는 목포의 민어 횟집인 만호 유달 횟집 가서 민어회를 먹고 코럼 방 빵집에 가서 새우 바게트 등과 커피를 먹고 목포항 근처에 숙박을 했다.
다음날 허영만의 백반 여행에 나온 돌집에 갔다. 방송탄 곳은 아무래도 너무 기대를 해서일까 기대만큼은 못 미치는 것 같다. 나쁘지는 않았고 목포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게미의 맛을 느낄 것만 같았다.
목포는 정말 진미가 많다.
점심으로 쑥굴레라는 분식집에서 팥죽 쑥굴레 메밀국수 등을 시켜서 먹고 과식해서 소화제도 먹고 운동시킬 겸 걸으려고
삼학도 공원에 가니 이난 영의 노래가 계속 나온다. 목포의 눈물 가사 속에 목포가 다 들어있는 듯하다.
울며 돌아다니는 눈물의 항구도시이다. 울고 싶은 사람은 목포를 가보라고 하고 싶다. 그냥 거리가 곡비 같다.
'호텔 델 루나'에 나온 근대역사관 1관 뒤편에 반공호는 바위처럼 단단한데 꽤 넓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강제로 끌려온 이들을 생각하니 맘이 짠했다. 바위로 정을 쫄 때마다 울분의 눈물방울이 떨어졌을 것이다.
일제의 수탈로 많이 더 피해본 항구도시 목포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설움의 눈물로 살았을듯하다.
목포 근대역사관 2관은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역시 이난영 노래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달산 산책로의 할아버지 낡은 카세트에서도 목포의 눈물 노래는 되돌이표처럼 흐른다.
삼학도에도 이난영 묘지에도 노래가 계속 흐른다.
위로하는 슬픔의 정령들이 떠도는듯했다.
그래서 이별한 이들은 실 컷 울기 위해서 목포로 향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도 목포에는 이난영'목포의 눈물' 노래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요번 여행은 목포 하면 이난영 노래가 더욱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