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매력(1)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여행을 다녀오고 다녔던 흔적을 되짚어 써보면 재밌다. 후에 읽더라도 그때를 더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강진에 가고 싶었다.


모란이 피기까지의 김영랑 생가와 정약용 유배지를 다녀오고 싶었는데 기거하던 집과 사람은 많이 닮아서 두 분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속에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고 기회가 생겨서 가게 돼 있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수첩에 적게 된다.


목포여행을 하고 한 시간 안 걸리게 강진 다산초당에 도착했다.


다산초당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는데

나무뿌리가 드러나있으면서 돌길이고 미끄러워서 조심스러웠다.


머지않은 곳에 작은 초당이 세 채가 있었다.


제자들이 거하는 집과 다산의 집필 초당 등 깊은 산 위에 연못도 있고 차를 덕을 수 있는 널찍한 바윗 돌도 있었다.

초당 마루에 앉아서 천 원 하는 강진 발효차 한잔 하면서 여자 문화해설사 분이 정약용 선생에 대한 걸 설명을 해줘서 잘 들었다.


입에 모터 단것처럼 말을 쉬지 않고 잘하는 분이었다.


다산은 해남 윤 씨의 덕택으로 산속 초당에 머물게 됐는데 집은 산속 깊은 곳이어서 해도 잘 들지 않고 습하고 어두웠다.


앞이 키 큰 나무로 꽉 차 있어서 절벽에 선 듯 절망스러울 것도 같은데 오히려 그 나무를 도서관 면벽처럼 생각하고 집중력 있게 600권 넘게 집필한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절벽에 서 더라도 돌아 앉으면 산다'는 정약용 선생의 말이 다시 생각이 났다.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도 아들에게 힘을 준다.


'집에 책이 없느냐, 몸이 없느냐

가난은 심지를 굳게 한다.'


'나는 나의 삶을 연민한다.'


등 많은 어록 등이 있다.


앞이 턱 막혀 숨이 안 쉬어지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오히려 면벽의 도서관 책상에 앉아 있는 것처럼 몰입을 해서 수많은 책을 집필한 것이다.



깊은 산속에 졸졸 내려오는 물을 받아서 연못도 만들어 잉어도 기르고 강진 차도 넙적한 돌에 덕어서 즐겼다고 하니 절망 속에서도 삶을 즐기신 정약용 선생 철학에 감복스러웠다.천주교를 받아들인것도 그시대에는 혁명적인 일이 었을 것이다.


다산초당을 뒤로하고 강진 고려청자 박물관과 마량항으로 떠났다. 강진은 흙이 좋아 청자를 많이 굽는데 여행 내내 청자 그릇과 욕실 청자 수전까지 귀한 체험이었다.


늦게 도착한 마량항은 아련하게 지난날을 떠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의자에 앉아 한참 있고 싶은 곳이다.


비가 흩뿌려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근처의 가우도 출렁다리도 들리지 못했다. 여행은 꼭 아쉬움을 남긴다.


숙소는 사의재라는 강진 군청에서

운영하는 한옥 숙소로 갔는데 실제로 다산이 사의재 주막에서 사 년간 묵었다고 했다.


추방당해 유배 온 이들중에는 신분이 높거나 학식이 뛰어난 이들은 그고장에서 글을 가르치는경우가 있어서 사의재 주모가 다산에게 허송세월하지말고 후학을 가르치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당을 열어 글을 가르치게 되었고 후에 다산초당에 찿아온 다산제자들이 하나둘씩늘어났다고 전해온다.


사의재에서는 다산이 좋아했던 아욱국을 판다.


일행과 저녁으로 모란 한정식에서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는데 반찬이 여러 가지이고 맛도 괜찮았다. 쌀이 좋고 바닷가 근처라서 해산물 이 풍부하기 때문인지 찬 가짓수가 많았다.

다음날 우리는 오케이 식당의 백반을 먹고 김영랑 생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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