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가볼까"
남편과 청양에 들러 시누이 부부와 같이 가기로 했다.
봄나들이 간다고 약속을 해놨는데 주말마다 비가 온다. 그래도 약속을 취소할 수 없으니 여행 목적지인 고창 선운사로 향했다.
절로 들어가는 길에 웬 장어집이 그리 많은지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무소유와 절제를 바라는 절로 가는 길에 장어와 복분자라니 어느 시인이 말한 통속한 잡지 속 같은 인생이다.
그래도 열심히 장어 구우며 삶을 살아가는 인생을 그린 김사인의 시가 생각이 났다.
선운사 풍천 장어집
김 씨는 촘촘히 잘도 묶은 싸리비와 부삽으로
오늘도 가게 안팎을 정갈하니 쓸고 손님을 기다린다
새남 방을 입고 가게 앞 의자에 앉은 김 씨가 고요하고 환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도커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 년 삼십 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우주의 한 귀퉁이를
얼마나 잘 지키는 일인가
부처님의 직무를 얼마나 잘 도와 들이는 일인가
풀들이 그렇듯이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시인 김사인 -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선운사를 향하여 우산 쓰고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비바람이 불어 우산은 쓰나 마나고 시야도 흐릿하다.
남편은 신발이 새서 양말이 빗물에 젖으니 유쾌하지 않은 발걸음이 돼버렸다. 또 절에 입장료까지 받으니 아무리 시설 유지비라 해도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평평한 도솔천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 문색이 일품인 파란 만세루를 보니 젊은 날에 친구들과 사진 찍었던 어느 여름이 기억이 났다.
예전 갔었던 장소를 다시 찾으면 오래된 친구 만난 기분이 든다.
"반갑다 만세루야 몇십 년 만이냐 잘 있었어?"
남편은 신발이 젖어서인지 별로 걷고 싶지 않아 해서 만세루에 앉아 있기로 하고 시누이네와 대웅전 뒤편의 동백숲으로 갔다.
뒤뜰로 올라가서 동백꽃을 찍었는데 빗물 때문에 꽃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동백꽃이 만발하고 비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후드득하고 꽃잎이 통째로 떨어진다.
선운사의 동백꽃 시도 있고 노래도 있지만
내게는 여름의 배롱나무가 강렬해서 선운사에 동백이 어디 있었지? 하고 생각하고는 했었다.
지금 비 내리는 선운사에 오니 동백꽃이 울고 있는 모습이다. 꽃 하나하나에 사연이 깃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났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
시누 부부가 하나의 우산을 쓰고 다정하게 빗속을 뚫고 걷고 있는데 상대 어깨 비안 젖게 꼭 붙어 걷는다.
하지만 들이치는 비를 피할 수 없어 옷이 흠뻑 젖듯이 살다 보면 어차피 홀로 비바람을 맞고 가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도 상대가 다 막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길에 어떤 이유가 생겨서 한 사람만 남는 순간이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서글픈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기대어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시인 최영미-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도 오고 동백꽃잎에 출출히 비가 내리듯 남겨진 사람 마음에도 빗줄기가 내리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울적해졌다.
"날씨 탓이야 뭔 놈의 비가 계속 오냐"
더 둘러보기에는 날씨가 안 좋아서 절을 되돌아 나서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선운사에서 가까운 정읍 쌍화탕 거리에서 견과류 가득한 쌍화 탕을 먹으니 온몸의 한기가 나가는 것같이 좋다.
집에 돌아와 사진첩을 들여다보니 35여 년 전 선운사에 갔을 때는 배롱나무에 꽃이 활짝 핀 여름이었다. 그때 사진을 들여다보니 친구들도 활짝 웃고 있다. 선운사의 가을과 겨울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