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사는맛 레시피(상큼한맛)

by 달삣

살다 보면 나를 일깨우고 싶은 날이 있다.


"아이유 ~상큼해"하고 TV나 라디오에서 레몬 음료나 라임 음료 선전처럼 톡 쏘는 맛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믿었던 사람의 속마음 알았을 때 나

가까운 지인이 떠났을 때나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할 때다.


질척이는 마음을 말리러 기차역으로 향한다.

강릉 경포대라도 가서 파도의 포말을 보면 시원하고 새콤한 탄산 맛을 느낄까 해서이다.


이때는 혼자여야 한다.


제대로 신맛을 맛보기 위해서다.

혼자 하는 여행은 산자도 죽은 자도 아닌 중간자라는 느낌을 오롯이 받는다.


그 느낌이 좋다.

혼자 밥을 먹고 다른 여행자 속의 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당일여행 일정으로 강릉행 KTX 기차를 탔다. 창가 쪽 자리였다.

옆자리가 비어서 내심 누가 탈까? 궁금했다.


나란히 가는 옆좌석 건너편에는 역방향의 의자 두 개를 70년대 다방처럼 마주 보게 앉은 오십 대 아저씨들이 미리 타서 수다하는 중이다.


아줌마들 저리 가라고 수다를 풀고 있다. 대화 내용은 아저씨들 목소리가 커서 억지로 들을 수밖에 없다.


"야! 개 아주 싹수없더라. 내가 뒤집어엎으려다 몇 번 참았다."무슨 일인지 몰라도 일행들은 낄낄 거리며 웃는다.



뒷좌석은 노부부가 병원비 때문에 수다가 길고

그 건너편은 아이들이 엄마와 햄버거와 콜라 먹는 중이다."쩝쩝 아 엄마 그만 좀 먹어"


아이고 시끄러웠지만 참고 갈 수밖에 없었다.

참견하고 싶지 않었다.


조용히 사색하며 여행하려던 맘을 일찍 감치 접었다. 시골 가는 완행 기차가 따로 없다.


양평쯤 왔을까 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할머니가 옆 빈 좌석에 앉았다.


지도를 꺼내더니 중등 영어로 서울 전철 지도 동대문역을 물어본다."뭐야 이 할머니?"생각했는데 홍콩 사람이었다.


잠시 후 역무원 승차권 검사 왔을 때 중국말로 역무원과 뭐라 뭐라 하고 중국말이 서툰 역무원을 난감하게 만든다.


"자리를 잘못 앉은 걸까?"

난계 속 눈을 감고 있었다. 할머니도 당황스럽게 말이 빨라졌다.


낯선 곳에서 말까지 안 통하니 얼마나 갑갑할까?

저 할머니도 중간자의 입장에서 여행 중일 텐데 말이다.


강릉 바다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연쟎게도 아까 봤던 수다 떠는 아저씨들을 또 만났다. 아저씨 들은 은연중에 아는 체를 하는 것 같았지만

반갑지 않았다.


어김없이 시골 다방 분위기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그 자식 말이야 내가 키웠는데 요즘 안면 까는 것 봤지"로 시작을 한다. 역시 좌석 두 개는 역방향 좌석이 있다.


마주 앉은 네 좌석 중 한 좌석이 비었는데 90년 대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탔다. "좌석을 기차 진행 방향으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마주 보며 갈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요"


레몬주스 같이 깔끔한 자기표현에 "이 자식아 저자 식아 "하던 아저씨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네~"하며 역방향 좌석을 정방향 좌석으로 옮긴다.


심심한 아저씨들은 그 대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잔다. 그래도 좋다. 경포대 바다의 파도 포말 보다 더 상큼 청년의 말로 소음은 평정 됐고 그나마 조용히 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상큼함은 바다의 포말에도 있지만 자기표현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말에 있는듯하다.스트레스받지 말고 할말하고 살자.


상큼함을 마시고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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