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입니다
내가 졸업하기 몇 년 전,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IT붐이 강하게 일었다.
기업들은 갑자기 IT부서를 신설하거나 급증시켰고, 지독한 취업난 속에서 그나마 취업이 잘 되는 학과 - 컴퓨터, 기계, 전자 중에서도 컴공은 독보적으로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이 되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런 이유로 학기마다 F를 놓치지 않던 나의 동기도, 그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아직도 주말마다 학교 인근에 술을 마시러 온다는 꼴통 선배도, 조별 과제를 할 때 자기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며 잠수를 타던 후배도 알만한 기업으로 순조롭게 취직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정말로 운이 좋은 케이스이며, 이들 역시 내가 모르는 어떤 분야에서 굉장히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일 것이다. 같은 과 내에서도 제대로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이러나 저러나 그 사실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컴퓨터 학원에서 코딩을 배워온 사람들, 컴퓨터를 복수 전공하는 친구들이 등장하고 기업들도 입사 체계를 개편하면서 '괜찮은 취업'의 문은 다시 바늘구멍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나 때는 그랬다.
그런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는 조금 다른 길을 가고 싶었더랬다. 마침 마케팅 공모전에서 대상도 두 번이나 해 먹었고... 이만하면 경쟁력 있지 않나 싶어서 들어간 광고회사에서 남들보다 안타까운 월급을 받으며 남들의 두 배로 일을 하면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다가 출근하는 아버지를 마주칠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나는 코딩에서 너무 멀어져 있었고 위에서 말했듯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어디 하나 자리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런 젠장할.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그냥 그때 저렇게 잘 모르는 사람이 오지랖을 부릴 때 듣기라도 할 걸, 그래도 다른 애들보다 코딩은 잘한다는 이야기 들으면서 학교 다녔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때의 선택이 만들어낸 후회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