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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곶사슴 Jun 07. 2019

꿈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퇴사 후에 오는 것들 #15

노는 것이 진짜 세상에서 제일 좋지만 이런 삶을 오래도록 지속하기에 나는 돈 걱정을 안 할 정도로 풍족한 집안의 아들내미가 아니었다.


나이가 30이 넘어가 애매하게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가 늘 돈문제로 향하게 된다. 모아놓은 돈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식으로 굴리고 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벌이와 능력이 꽤 괜찮다는 것을 어필하는 고도의 대화전략인데, 나는 모으기는커녕 이미 모아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친구들을 만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돈만큼이나 흘러가는 시간도 문제였다. 정치인들은 자연인 한답시고 산에 들어가 아무것도 안 하다가 선거철 즈음에 기어 나와도 드디어 잠룡이 움직이네 어쩌네 주목해 주지만 나 같은 퇴사자는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저 게으르고 태만한, 또는 그럴만한 안 좋은 이유가 있어서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위의 두 문단에서 추측이 가능하듯, 나의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카페 창업을 비롯해 퇴사 후에 해보겠다고 한 모든 일들이 채 도전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을 테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꿈을 좇는 사람들을 멋있게 그리곤 하는 작가 천명관은 그의 작품 '나의 삼촌 부루스 리'에서는 실패해서 고꾸라져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 대사를 적어두었다.


세상에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래서 꿈은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에만 행복한 거야.
꿈이 현실이 되고 나면 그것은 별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거든.
그러니까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정말 창피한 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는 거야.

천명관 - 나의 삼촌 부루스 리


꽤 멋진 대사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패는 뼈아프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꿈이 없다는 사실보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려 나락에 빠져있다는 사실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나는 나의 상황이 정말이지 너무 창피하고 비참했다.

나름 열심히 일하면서 인정받길 바랬던 회사에서 뒤통수를 거하게 맞고 내 일과 사람들을 빼앗겨버린 현실이, 그 뒤로 멋지게 재기하지 못하고 고꾸라져 있는 내 모습이.

하지만 내가 부끄러워하든,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내가 걸어온 길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살면서 꾸었던 수많은 꿈들과 흘려버린 기회들, 꽤 괜찮은 아이디어 조각들을 되짚어보면 헨젤과 그레텔처럼 돌아가야 할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겨났다.


대학시절부터 버리지 않고 모아둔 자료들을 열심히 뒤져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마땅히 기회로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는데, 내가 발견했던 것들은 모두 그 타이밍이 한참 지나간 것들 뿐이었다. 그때 이것들을 했다면 지금 정말 대박이 났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무엇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이제 와서 하기에도 지나가버린 꿈의 기억은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어떤 것들은 한참을 봐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을 통조림에 담을 수 있다면 기한을 만 년으로 할 텐데...



대학시절에는 나름 IT 창업동아리의 기획파트장이었다. 교육 성격이 강했던 동아리였기 때문에, 기획파트장이라 함은 동아리 활동의 기획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기획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직무를 담당하는, 이를테면 선생님 같은 것이었다.

활동기간 동안 매주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에게 기획이니 마케팅이니 이것저것 주워들은 지식을 최대한 있어 보이게 포장해 전달해야 했다.


어쩌면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중 나보다 더 많이 알고 경험도 많은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굴 가르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어리고 지식이 부족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면 내가 사기에 재능이 있거나.


어찌 되었건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자료도 많이 찾아봐야 했다. 그 경험이 어찌어찌 지금까지 밥벌이를 하던 밑천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기획과 마케팅은 내가 '그나마 잘하는 척'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의 기획들, 내가 했거나 다른 친구들이 했던 자료들을 보다가,

서비스를 만들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보다 허황된 꿈같지만 적은 자본으로 시작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개발 도구라던가 서비스를 보조하는 시스템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대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고 싶던 나에게는 퍽 아름다운 미래,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무슨 서비스를 만들까? 스마트폰이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 이미 별별 서비스가 다 나왔는데 이미 있는 서비스에 도전하기에 기술력도, 인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침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자주 가시는 산악회의 가입 나이 제한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신도 이제 나가야 하나 걱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은퇴를 맞이한 큰아버지께서는 도무지 할 일이 없어 아침 일찍 무료 지하철을 타고 어느 노선의 종점을 찍고 돌아오는 것이 삶의 낙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은퇴를 맞이한 중년들이 딱히 할 일이 없다."

라는 매력적인 문장이 완성되고 있었다. 중년들에게 취미활동을 찾아준다는 것을 빌미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사이에서 수수료를 빨아먹어보자는 야심차고 허황된 꿈.


나는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개발도구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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