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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곶사슴 Apr 25. 2019

회사는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퇴사 후에 오는 것들 #3



알람을 꺼 두었는데도 늘 일어나던 시간에 눈을 떴다.


평소대로라면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그라인더로 커피콩을 갈면서 잠을 깨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상이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이 눈을 뜨면서부터 생생하게 느껴졌다.


멍한 상태로 TV를 봤다. 꽤 오랫동안 오전의 TV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당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도, 심지어 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심술을 부리는 모습마저 기억하고 있는 아침 방송의 풍경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달라진 것은 내가 회사를 가지 않고 아침 방송을 보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평소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아침을 먹고 커피도 내려 먹고 뉴스도 보면서 충분히 빈둥거리다가 책상에 앉았는데 회사 출근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평소에 지하철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막상 앉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퇴사 이후 어떻게 놀 것인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급작스럽게 퇴사를 맞이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은 퇴사하면 뭘 한다고 했더라. 대다수는 많아진 시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했었다. 그런데 퇴사일에 맞춰 비행기표를 구매하기에도, 어디를 갈 것인지 생각하기에도 나의 퇴사 준비기간은 너무 짧았다.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퇴사(희망) 계획들을 기억해보다가 첫 직장의 동기가 떠올랐다.

주말도 없이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던 정신 나간 노동강도의 광고대행사에 나와 나란히 입사해버린 그 친구는 퇴사를 하게 된다면 침대 옆에 피자 한 판, 콜라 한 병을 두고 하루 종일 자다가 눈뜨면 피자를 먹고 다시 자다가 눈 뜨면 먹는 일을 반복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렇다. 피자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잠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몸을 넣으니 과연 얼마 안 지나 꿈의 세계에 닿는 듯했다. 그러나 잠들만하니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몇 달 동안 왕래가 없어서 퇴사 소식을 깜빡하고 전달하지 못한 거래처였다. 원래 연락하던 사람이 아니라 새로 담당하게 된 사람이었는데, 몹시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제휴 계약 내용 관련해 문의전화를 했노라고 밝혔다. 그녀의 상사로부터 그 문제를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한 소리 듣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비몽사몽간에 갈라진 목소리로 죄송하지만 퇴사를 하게 되어 그 문제에 대해 알아볼 수 없다고 대답하니, 그녀는 퇴사를 할 거라면 다음 담당자를 연결해주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나에게 화를 냈다.


저도 어쩔 도리가 없었는걸요. 아니 그전에 너네도 담당자 바뀐 거 말 안 해준 것 같은데. 사과는 하기 싫어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말을 고르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바뀐 담당자의 연락처를 물어봤다.

애석하게도 그 업무를 같이 봐주던 사람도 나와 같은 날 퇴사했다.


결국 누가 내 일을 받았는지 나도 알 수 없으니 고객센터로 연락해 보시라며 번호를 불러주는 것으로 통화가 정리되었다. 상대도 나도 황당한 상황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상대는 나를 무책임하게 사표내고 도망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라 생각하니 화가 났다.


내가 하던 일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일에 대한 나의 책임은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뿐만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중 하나는 '책임감'이다. 물론 사람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최고의 원동력은 돈이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그렇게 풍족하게 지원해 줄 수 없으므로 일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을 이용한다.

기업이란 수많은 사람들의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개인에게 제공해야 하는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오랫동안 일한 사람에게 그 기간에 상응하는 퇴직금을 주어야 하며 스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퇴직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법은 기업에게 그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도덕의 문제다.


잘 지켜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 한국 정도면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비교적' 잘 되는 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책상이 치워지는 일은 해외에 비해 덜한 편이라고들 한다. 물론 나는 겪고 말았지만.


그래서 그런지 회사는 주어진 업무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상사가 괜히 집에 가기 싫을 때 같이 사무실에 남거나 술을 같이 마셔주는 등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을 회사에 쏟고 있는데 그 이상의 삶을 회사를 위해 써 주길 아무렇지 않게 요구한다. 그들이 삶을 유지하는 동력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사원의 인생을 책임져주길 기대하는 것은 아이돌에게 팬의 인생을 책임져주길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신기루가 아닐까. 기대와 책임은 방향만 다른 말이 아니다.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은 그들의 1기 (아주 오래전일 것이다) 팬미팅 자리에서 팬들을 향해 '신화는 팬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려서 구설수에 올랐었다. 당시에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거대한 충격이었지만, 아이돌 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지금에 와서는 모두가 맞는 말로 인정하는 희대의 명언이 되었다.


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잊어버리고 기대하고 마는 것이었다.


다음 회사를 빨리 알아보기보다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속하는가 보다 무슨 일을 하는지를 우선 결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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