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믘제옹 Jul 24. 2024

행정학으로 배운 이론이 현실에 대입되다

아직 덜 익은 공무원의 끄적임(1)

아직 공무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공부했었던 내용들이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물론 엄청난 암기량의 역효과로, 최종 합격 후 공부했던 대부분의 내용들은 신속하게 비워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학습의 힘은 대단했고, 몸으로 익히는 학습 효과는 매우 뛰어났습니다. 수험생 때 행정학이라는 과목에서 나왔던 아담스의 '형평성 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다른 이론들은 그냥 이론일 뿐인 것 같지만 '형평성 이론'만큼은 정말 정확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설을 직접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아담스의 '형평성 이론'은 사회적 비교이론에 기초를 두고, 자신이 기울인 노력(투입)과 돌아올 결과(산출)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 차이를 줄이려는 동기가 생긴다는 이론입니다. 개인이 자신이 쏟은 노력, 시간, 기술과 그에 따른 결과, 예를 들어 급여나 승진과 같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비교한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합니다. 타인과 공평하게 보상된다고 믿을 때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형평성). 그러나 내가 남들과 비교하여 더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타인보다 보상이 더 적다고 느끼게 되면 불만을 가지게 되고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하게 됩니다(과소 보상 불평). 반면 남들과 비교하여 내가 지나치게 보상을 받는다고 느끼면 죄책감을 가지고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과다 보상 불평등). 어쨌든 이론의 핵심은, 상황이 합당하다고 느끼면 만족을, 합당하지 못하다고 느끼면 불만족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조직론에서 나온 이 이론을 현재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무원이 체감하고 있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 봅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사고만 치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 사고는 생각보다 더 커야 하긴 합니다만). 결국 공무원이 성취동기를 얻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승진입니다. 그러다 보니 승진을 위해 다소 무리하는 분들도 꽤 있으시고, 결과적으로 그 직급에서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공무원 선발하는 규모가 커지면서, 승진이라는 타이틀이 하위 직급에서도 더 치열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이 항상 저희를 보며 "우리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말을 하십니다. 9급에서 8급, 8급에서 7급으로 올라가는 그 경쟁이 더 치열해진 요즘입니다. '관운'이라는 말이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죠. 덜 익은 공무원들은 이 상황에 대해 조기교육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직급 간 불평등, 세대 간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점점 더 확대되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똑같이 시험을 봤음에도 누구는 승진을 하고, 누구는 승진을 못하는 상황, 예전에는 승진을 빨리 했었을 시기에 승진을 못하는 상황에 경력이 짧은 공무원들은 한숨을 내쉬곤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시시비비를 가릴 만한 내용으로 보기는 당연히 힘듭니다. 선배님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부조리가 심한 시절에 힘들게 직장생활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동기들 중에도 타이밍이 맞아 운 좋게 혼자 승진하는 경우도 당연히 발생하니까요. 인사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내용이 좌우되다 보니 조직의 일원인 공무원은 그 상황에 따를 수밖에 하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음에 좌절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들 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업무를 보는 직원은 있으니까요.


물론 이론의 맹점은 있습니다. '과다 보상 불평등'이라는 게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본인이 남들보다 능력에 비해 승진을 빨리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할 용기가 생기기는 힘드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불편한 상황이 어디 있을까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과소 보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타 부서, 타 부처, 심지어 민간과 비교하면서 나의 상황을 '과소 보상'으로 끌어내리게 됩니다. 이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나와의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 또는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가까운 지인들이 그들의 새로운 비교대상입니다. 이렇게 불평등한 위치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그들은 이전까지 달려온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누구나 직장을 다니면서 보게 되고, 또 스스로도 직접 경험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담스가 주창한 '형평성 이론'은 '내가 왜 조직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려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보이네요. 그러고 보니 '이 상황이 평등하고, 그래서 나는 만족스러워'라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간혹 발견되긴 하지만 대부분은 '과소 보상 불평등'에 기반을 다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고, 저 역시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좋고 나쁜 건 상대적이지만, 굳이 나쁘게 볼 필요는 또 없을 것 같네요. 좌절감을 극복하면 발전이라는 열매가 보상으로 돌아오듯, 상황에 비추어 스스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든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아담스의 신봉자가 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과소 보상 불평등'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벌써, 또는 고작 공무원 5년 차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