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회장 선거 (3)
아직 쌀쌀한 봄바람을 타고 풀 냄새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민아는 오늘도 린과 함께 등교하며 엄마가 만든 에그타르트 얘기를 했다.
“몇 학년 몇 반?”
교문에서 주임 선생님이 민아를 불러 세웠다.
“네? 6학년 2반이요.”
민아는 놀란 표정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너 머리 길이가 왜 이래? 여자가 쇼트커트가 뭐니?”
주임 선생님은 민아 머리를 가리켰다.
“왜요? 이 머리가 엄청 편해요.”
민아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항의했다. 50대인 주임 선생님은 사사건건 아이들 복장과 외모에 트집을 잡는 걸로 유명했다. 옆에 서 있던 린도 거들었다.
“남자들은 머리 짧다고 안 잡잖아요.”
“남자랑 여자가 같니? 야! 거기 꽁지머리!”
주임 선생님은 헤드셋을 끼고 지나가는 홍서준을 불러 세웠다.
“넌 그만 들어가.”
주임 선생님은 민아에게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민아와 린은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교실로 향했다.
“정말 싫어. 왜 머리 갖고 저러니?”
민아는 투덜거리며 교실을 올라갔다.
“그러게. 요즘은 염색 허용하는 학교들도 많다는데. 참! 이따 학교 끝나고 에그타르트 먹으러 갈 거지?”
“당연하지. 이따 끝나고 봐.”
민아는 2반 린은 3반으로 각자 들어갔다.
6학년 2반 교실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했다.
“곧 학생회장 선거인 거 알지? 보나 마나 우리 학교 얼짱인 장미가 이길 테지만 너희들 무조건 장미 뽑아, 알았지? 올해 공약은 화장실에 방향제 설치로 할 거야. 화장실 냄새 넘 심하지 않니?”
항상 장미 곁에 붙어 비굴할 정도로 장미 대변인 노릇을 하는 영희가 큰 소리로 떠들었다. 장미는 늘 거울을 보며 자기 외모를 확인했다. 아이돌 언니들처럼 되는 게 꿈인 장미는 항상 다이어트 중이었고 최신 유행을 제일 먼저 따랐다.
너무도 당당하게 투표 강요 운동을 하는 영희를 보고 민아는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 그때 민아네 반 반장인 서준이가 빈정대며 외쳤다.
“야, 방향제가 뭐냐? 나라면 체육 시간에 매일 축구나 피구하자고 할 거야.”
백장미는 여자 반장, 홍서준은 남자 반장이다. 서준이는 교문에서 꽁지머리 때문에 걸렸었는데 주임 선생님의 훈계를 듣고 막 들어와 기분이 안 좋았다.
“야! 홍서준. 그게 말이 되니? 축구나 피구는 남자들만 좋아하지 여자들은 싫어해!”
장미는 씩씩대며 서준이를 노려봤다. 스포츠 만능인 서준이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반장이 되었다.
“내가 너보다 표 더 많이 나올걸. 내기할래?”
서준이가 약 올리며 장미를 놀려댔다.
아이들은 재미난 구경거리가 난 듯이 장미와 서준이를 지켜봤다.
“보나마나 장미가 이기지. 안 그래 애들아?”
영희는 반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야, 그러지 말고, 우리 블라인드 선거하면 어때? 지금까지 학교 회장은 거의 외모 투표나 다름없었잖아. 결과도 뻔하고, 이번엔 누구든지 나가서 정정당당히 이기는 사람이 회장을 하는 거지!”
민아네 학교는 각 학급 반장만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출마할 수 있는 자격도 제한되어 있었고 공약보다는 매번 가장 인기 있는 학생이 회장으로 선출됐다. 민아 제안에 모두 솔깃해하는 눈치였다.
“요즘 가수들도 블라인드 오디션 하잖아. 우리 학교도 공정하게 실력으로 뽑자고. 꼭 반장만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 법은 없잖아?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민아도 순간 자신이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는 게 당황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래, 블라인드 선거! 재밌겠다.”
“왜 반장들만 나가야 해?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인데.”
반 친구들이 호응해주자 민아는 기분이 좋아졌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선거해도 재미없었어. 공약도 해마다 똑같고. 우리도 이번에 좀 바꿔보자!”
서준이와 절친인 도윤이가 거들었다. 도윤이는 반에서 제법 똑똑하고 논리적인 아이라 의견을 내면 아이들이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윤이가 한발 더 나아가 제안했다.
“우리 다음 다모임 시간에 안건으로 블라인드 선거를 내보는 거 어때?”
다모임 자치 활동은 매달 학교 전반적인 행사나 학생 생활에 관한 문제를 학생 스스로 토의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응, 좋아!”
“지금까지 진짜 불공정했어! 투표 하나 마나였는데. 바뀌면 완전 재밌겠다.”
장미와 서준이는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블라인드 선거에 대한 안건이 학생 다모임에서 논의되었고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기존에 6학년 반장들만 나갈 수 있었던 규정을 수정해 6학년이면 누구든지 후보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세 학급에서 총 11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투표 방법도 작년과 많이 달라졌다. 달라진 회장 선거 방식이 아이들 간에 화제가 되었다.
“야, 이번에는 사전 선거 운동이 없다며? 서로 친한 애들 찍어주는 거 없애려고 그러는 거래. 대신 투표 당일 철저히 얼굴을 가리고 5분 공약 발표로 대신한대.”
“누가 후보인지도 절대 미리 말하면 안 된대.”
“얼굴을 가려도 목소리로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철저히 공약만 보고 뽑는 거네?”
아이들은 좀 낯설긴 하지만 새로워진 회장 선거 방식에 대해 대체로 흥미로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