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의 가치 (4)
오후의 아웃도어 업무는 먹이 주는 것보다 어려웠다. 성체 악어는 거대했다. 태곳적 공룡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육중한 몸이지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4~5년 된 악어를 싱글팬으로 옮기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전기 총으로 악어를 기절시키고 남자 3명이 악어를 들어 옮겼다. 4미터 넘는 악어는 평균 150킬로다. 대만에서 온 청년 지아하오와 도현과 나는 오후 내내 악어를 기절시키고 독방으로 옮기는 업무를 했다.
악어가죽에 흠집이 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니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했다. 악어 세 마리의 가죽으로 최고급 핸드백을 만든다. 좁고 답답한 환경에서 악어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도 틀어주고 악어의 손톱과 이빨 손질도 했다. 악어의 평균 수명은 70~80년이라는데 농장에서는 악어가 일정한 길이로 자라면 바로 도살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효율성이란 빠른 시간 내에 동물을 살찌우고 죽이는 방식이라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잔인함과 효율성은 동전의 한 면이 아닐까. 생명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악어 공장에서는 최소한의 접촉만 허용해 교감을 차단한다. 이 지구상의 어떤 동물이 한꺼번에 다량의 동물을 살육할까? 그것도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악어가 서식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철제 우리에 살아있는 반달곰을 가두고 담낭에 고무호스를 꽂아 고통을 주는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는 나라가 한국이다.
“첫날에 이 정도면 양호하지. 금방 익숙해져. 일은 힘들어도 저녁에 맥주 한 잔과 달빛 아래 수영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
도현은 베테랑답게 힘든 기색 없이 입을 쉼 없이 움직였다. 가끔 지아하오와도 중국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 같았다. 도현은 세계 여행 중이었고 태국에서 돈을 다 써 호주에서 6개월 일해 돈을 모아 미국으로 건너간다고 했다. 나는 대화에 끼어들 기운이 없었다. 전신을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온몸이 땀에 절고 퀴퀴한 썩은 내가 땀방울로 배출되는 것 같아 숨이 턱 막혔다. 악어 농장에서 겨우 하루 일하고 기진맥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 씻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기숙사에서 잠깐 쉬고 나니 이대로 첫날을 보내기가 뭔가 아쉬웠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경쾌한 팝 음악이 흘러나오고 마당에는 바비큐를 구워 먹고 있는 무리와 수영장에서 배구 시합을 하는 무리로 나뉘었다. 모두 아시아인이었다. 마당 끝 원탁에 앉아있는 도현을 발견하고 그리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이, 뉴비! 안 올 줄 알았는데. 인사해. 여기는 박서준, 최영호, 이완.”
도현은 병맥주로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어제 들어온 신민재입니다.”
나는 도현과 박서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박서준은 키가 제일 크고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게 인상적이었다.
“맥주 마시지?”
박서준이 포엑스 라거 병을 집어 들어 나에게 건넸다.
“고향은?”
“강릉입니다.”
박서준과 최영호는 호주에서 세컨드 비자를 받으러 악어 농장에 지원했다. 세컨드 비자를 받으려면 도시가 아닌 지방의 공장이나 농장에서 88일 이상 일해야 했다. 이완도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 악어 농장에 취업하게 된 경우다.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악어 농장에서 일한 기간은 도현이 가장 오래됐고 나머지 세 명은 온 지 세 달도 안 되었다.
“여기 오기 전에 다들 어디 계셨어요?”
나는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을까?
“난 퀸즐랜드 야채 공장에서 일했어. 야채를 골라내고 소독물에 씻고 포장하는 일만 죽어라 하다 왔지. 작년에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워홀을 왔고.”
스물아홉의 박서준은 우리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다. 경험도 많고 걱정도 많아 보였다. 늦은 나이에 워홀을 온 만큼 호주에서 영주권을 취득할 계획이었다.
이어서 살집이 있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최영호가 말했다.
“시드니에서 몇 개월 어학연수 다니다 스시집에서 알바하고, 빵 공장도 조금 다녔어. 아, 음식 공장에서 패킹 작업도 좀 했다.”
부산 사나이 최영호는 친구와 워홀 왔다가 친구는 부산으로 돌아가고 자신만 세컨드 비자 때문에 남았다고 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이완은 캐나다에서 워홀을 하고 호주로 넘어왔다. 최대한 많은 나라에서 워홀을 해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토론토 카페에서 접시만 닦다 왔어요. 캐나다보다 호주가 인종 차별이 더 심해요. 호주 다음으로 영국 워홀을 신청하려고요.”
도현은 별다른 말 없이 맥주만 마셨다. 해외 경험이 처음인 나와 다르게 전 세계를 안방처럼 누비는 형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괜히 주눅이 들었다. 취기가 살짝 올라오자 수영장에 들어갔다. 물에 둥둥 떠서 호주의 광활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강릉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별똥별을 한참 동안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