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의 가치 (5)
첫날 이후 아웃도어와 싱글팬을 번갈아 가며 일했다. 해처리가 제일 편한 곳이라는 걸 며칠 일을 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첫날 해처리에 간 건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신입들이 첫날부터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라면 배려였던 것이다. 온종일 싱글팬에 갇힌 악어들에게 닭 먹이를 주고 수거하는 일을 했다. 보통 한 줄에 200개의 싱글팬이 있는데 인당 열다섯 줄 정도 관리했다. 악어 농장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앞발 가락이 5개 뒷발가락이 4개인 악어는 볼수록 매력적인 동물이었다. 히틀러도 악어를 키웠다는데 독일 동물원이 폭격 되자 히틀러의 악어는 모스크바 동물원에 이송됐다. 새턴(토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악어는 83세까지 살았고 죽어서는 박제되었다. 둔하고 무섭게 생긴 외모와 달리 악어는 모성애가 강하고 개보다 지능이 높다.
“오늘 내 생일이다. 퇴근하고 바로 여기 탈출이야!”
도현은 자신의 생일에 다윈 시내로 가자고 일주일 전부터 고지했다. 주말에도 일을 하면 휴일 수당이 있어 일당이 높아 웬만하면 주말에 외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월급도 들어왔고 한 달 동안 고생한 몸과 마음을 풀어주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금요일 저녁 다섯 명 모두 다윈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내가 오기 전부터도 월말의 외출은 사나이들에게 종교의식과도 같았다. 주말 내내 진탕 마시고 노래방과 클럽에 가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폭발하고 와야 그다음 달을 버틸 수 있었다.
삼겹살, 불고기, 스시 등 저녁 메뉴를 생각하고 있는데 도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또 죽었어?”
나는 도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웅덩이에 악어 사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왜 죽었어요?”
나는 커다란 악어가 자연사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병으로 죽었을 거야. 악어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물속에 죽은 악어 사체 썩는 냄새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코끼리도 잡아먹을 수 있는 악어가 스트레스 때문에 죽다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 사는 악어들은 어떤 마음일까? 내가 고약한 냄새를 힘들어하듯 이 녀석들도 마찬가질까? 미국에서 독방에 감금된 수감자들이 석방된 후에 종종 우울증, 환각, 공황 발작, 편집증 등 여러 정신 건강 문제가 관찰되었다는 연구가 있다. 독방에 수감된 사람들은 자해율과 자살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악어도 어쩌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닐까? 죽은 악어의 잔상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저녁에 다윈 시내로 탈출했다. 호주 북쪽 끝에 있는 다윈이란 도시는 인구가 15만 명밖에 안 됐다. 서울시 종로구 인구가 14만 명 정도라고 하니 다윈은 서울의 한 구보다도 인구가 적었다. 다윈은 톱 엔드(Top end)로 불릴 정도로 호주 내에서도 꽤 오지에 속한다. 우리가 선택한 다윈의 초밥 뷔페식당은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해 빈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오늘 악어 새끼한테 물렸다.”
영호는 팔에 물린 상처를 보여줬다. 꽤 상처가 깊어 보였다. 악어 턱은 호랑이보다 무는 힘이 3배나 더 강하다. 아무리 새끼 악어여도 물리면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악어 사체를 본 이후 술이 더 당긴 나는 맥주를 세 병째 마시는 중이다.
“오늘 또 악어 사체 봤다.”
도현도 악어 사체 이야기를 꺼냈다. 나만 신경 쓰인 게 아닌가 보다.
“그래도 악어 농장이 소 도축장보다 백배 낫다. 여기 오기 전에 나 소꼬리 잘랐잖아. 한 달 만에 도망 나왔지만.”
도현은 한국 자돈 농장에서 일하고 호주 와서는 정육점 도살 공장에서 일했다. 열한 살 때 도현의 부모는 이혼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몇 달씩 일하다 와서 도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중학생 때부터 돈을 벌었고 대학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도현은 늘 한국 사회가 답답했고 세계 여행을 꿈꿨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이태원 술집에서 일하며 영어를 익혔고 귀동냥으로 5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의 육계 농장, 자돈 농장, 개 농장에서 몇 년을 일했다. 헬조선 탈출을 목표로 이 악물고 버텼다.
도현은 호주의 첫 워홀로 소 도축장을 선택했다. 이미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소를 도축하는 일은 지옥이었다. 덩치가 큰 놈은 죽지 않고 발버둥 치는 경우도 있었다. 총으로 소 대가리를 쏘고 거꾸로 매달았다. 도현이 꼬리를 자르는 일을 맡았다.
도축장에 일하는 사람들은 한 집안의 가장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돈을 벌려는 청년들이었다. 돈도 경험도 없으면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고 도축업은 돈을 많이 줬다. 한 달 만에 뛰쳐나온 이유는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팔이 잘리는 걸 보고 난 후였다.
“한 번은 운전하다가 내 앞길을 막는 사람을 보고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개처럼 패버릴까는 생각이 들더라.”
도현은 술잔을 기울이며 과거 얘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우리 중에서 가장 험한 꼴을 많이 본 도현이었다. 악어 사체에 눈 하나 깜짝할 리 없었다.
“신경 꺼. 고기는 고기일 뿐이야. 약하면 죽는 거지.”
도현은 나에게 말하는 건지 자신을 향해 말하는지 심하게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생일이라 기분이 좋았는지 도현이 가장 빨리 취해 제일 먼저 인사불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