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안

가죽의 가치 (6)

by 나호란

도현은 그 후 주말마다 다윈에 갔다. 카지노에 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미쳤지. 어떻게 번 돈인데! 미국 갈 돈 다 날렸다.”


도현은 머리를 싸매며 한탄했다. 도박의 ‘도’자도 몰랐던 젊은이들이 워홀 와서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고자 가는 곳이 카지노다. 쉽게 카지노에 들어갈 수 있고 돈 같지도 않은 칩으로 베팅하다 보면 현실감각이 사라진다. 워홀러 중에서 도박 때문에 인생 망치고 빈털터리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1시간 만에 주급을 다 날렸다. 내일부터 악어가죽 벗기는 일 하기로 했다. 시급을 두 배로 더 준대.”


도현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세계 여행에 대한 꿈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몇 번이고 도현이 주말에 카지노에 가는 것을 말려봤지만 내 눈을 속이면서까지 가곤 했다. 한 번 도현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무료로 카지노 카드를 만들면 음료수 두 잔을 서비스로 줬다. 가벼운 마음으로 빅 휠이라는 게임을 했는데 백 달러를 금세 잃었다. 그 후 도현이 같이 가자고 하면 거절했다.


“악어가죽? 그거 형 시켜준대요?”


“나 작년에 소 도축장에서 일했잖아. 그 경력을 쳐준대.”


한 달 만에 소 도축장을 뛰쳐나온 도현이 다시 악어 도살장을 제 발로 들어간다고 했다. 도현은 그다음 날부터 악어 도살장에 출근했다. 그리고 카지노에 가는 횟수도 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내가 악어 농장을 뛰쳐나오게 되었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끼었다. 오후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마철의 한국이 생각나는 장대비였다. 아홉 살 때 비가 눈 앞을 가리던 날, 엄마와 슈퍼를 가다 골목에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작은 생명은 사람을 피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내린 비를 맞았는지 떨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는데 가련한 생명은 그냥 쳐다만 봤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이대로 뒀다간 배고픔과 저체온증으로 죽을 것 같았다. 개를 조심스럽게 안고 엄마와 병원으로 갔다. 이후 행복이와 십 년을 동고동락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돌아간 해에 행복이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도현은 갈아입을 바지를 부탁했다. 예상하지 못한 비 때문에 바지가 젖었다고 했다. 퇴근하고 바로 카지노로 향할 모양이다. 카지노의 복장 규정은 엄격했다. 모자를 쓰거나 슬리퍼를 신으면 입장이 불가능했다. 반바지도 종종 걸려서 여름에도 긴 바지를 준비해야 했다.


도살장 밖에서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도살장은 해처리 옆 건물이었다. 우산을 접고 조심스럽게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병원 복도처럼 흰 벽지로 되어 있었고 양옆으로 문이 있었다. 도현이 있는 방은 복도 맨 끝에 있었다. 문밖에서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있었다. 방 안에는 스테인리스로 된 여러 대의 탁자 위에 악어 다섯 마리 정도 누워있었다.


흰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악어의 입과 몸을 묶어 고정시켰다. 작업복을 입고 있어 누가 도현인지 알 수 없었다. 전기 총을 맞은 악어 중에 몇 마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몸부림치는 악어를 한 명이 붙잡았다. 다른 한 명은 손에 긴 쇠꼬챙이를 들고 있었다. 그 쇠꼬챙이를 발버둥 치는 악어의 목 뒷부분에 푹 찔렀다. 순식간에 목과 척수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악어는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쳤다. 검붉은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은 듯 숨을 멈춘 채 서 있었다. 악어의 눈과 마주쳤다. 아니 그 눈은 이미 생명이 사그라졌다. 악어는 눈을 뜬 채 무기력하게 탁자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뒤돌아 복도를 가로질렀다. 구역질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도살장 밖으로 뛰쳐나가 위 속 음식물을 모조리 게워 냈다. 비는 목과 머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기숙사로 돌아가 비에 젖은 옷을 벗고 몸을 빡빡 문질렀다. 악어의 피가 내 몸에 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악어는 완전히 죽기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느낄까? 스위스에서는 살아있는 생선이나 갑각류를 조리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물며 생선도 고통을 느끼는데 모성애가 뛰어나고 지능이 높은 악어가 느끼는 고통은 사람 못지않을 것이다.


낮에 본 장면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차라리 스트레스로 죽은 악어가 존엄해 보였다. 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척수에 쇠꼬챙이를 찌르는 것보다 덜 잔인할 것 같진 않았다. 주말 내내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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