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처학자(梅妻鶴子)

by 노정


매처학자(梅妻鶴子), 이 말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이는 세속의 번잡한 인연을 뒤로하고 자연의 품에서 한가롭게 노닐었던 한 은자(隱者)의 삶을 응축하고 있다.


북송(北宋)의 시인 임포(林逋)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명리와 보신(保身)의 길인 벼슬을 마다하고, 서호 고산(西湖 孤山)에 은거하며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평생 홀로 지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일컬어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이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말은 결코 단순한 기행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꺼려 멀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을 가장 맑고 정순하게 가꾸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다.


매화(梅花)는 한겨울의 끝자락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 추위를 견디며 홀로 향기를 뿜는 존재다. 고난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절개와 고결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학(鶴)은 장수(長壽)라는 시간의 깊이와 선계(仙界)의 신비로움을 품고 있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과 무리 속에서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고고함을 상징한다.


임포(林逋)는 이 두 존재를 생의 동반자처럼 곁에 두었다. 하나는 땅 위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향기였고, 하나는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맑고 고결한 생명이었다. 그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는 그가 영위했던 삶의 풍경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 보인다.


疏影橫斜水清淺 (소영횡사수청천)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스듬히 드리우고

그윽한 향기는 달빛 흐르는 황혼 속에 감도네.


이 시에는 어떠한 과장된 묘사도 없다. 그저 평화로운 풍경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는 이 시의 정취처럼 세상의 번잡함을 걷어내고 삶의 본질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임포(林逋)의 생애와 시를 보며 문득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곁에 두고, 또 붙잡으며 살아간다. 사람, 관계, 책임, 그리고 타인의 기대들. 그것들은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혼을 소리 없이 마모시키는 마른바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수많은 소음 속에서, 과연 나는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가.


내 삶에서 벗해야 할 매화(梅花)는 무엇이며, 곁에 둘 학(鶴)은 무엇인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버티게 하는 힘, 말하지 않아도 내면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향기, 그리고 나만의 자아를 지켜주는 무언가를 나는 진정 가지고 있는가.


임포(林逋)의 삶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삶은 억지로 채우는 데 있지 않고, 끝내 평온한 마음이 향하는 바를 추구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매화(梅花) 한 그루로도 충분히 향기로운 삶이 있고, 학(鶴) 한 마리로도 한가로운 생이 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쥐려 손을 뻗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남는 것은 단 하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을, 나만의 매화(梅花) 한 그루와 학(鶴)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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