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명교 Jun 09. 2017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스토리텔링이 있을까?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 사례를 중심으로

※ 이 글은 2015년, 2016년 금속노조 문화담당자 워크숍에서 발표한 자료를 다소 수정하여 작성했습니다. 2017년 5월 23일 있었던 민주노총 교육원 2017 강좌 ‘조합원을 주체로! 파업‧집회 프로그램 워크샵’에서 발표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딱 3년 전이다. 2014년 5월 17일, 서른네살의 청년 노동자, 하청 수리기사, 국내 최대 기업의 삼성전자를 진짜 사장으로 둔 자회사의 하청센터의 수리기사 염호석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서른두살 에어컨 수리기사 최종범 열사의 죽음 이후 불과 반 년만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시신을 서울로 옮겨 빈소를 차렸지만, 이튿날 경찰의 폭력적 침탈에 의해 시신을 빼앗겼다. 정말 천인공노할 사건이었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일을 저지른 자들을 결코 용서하기 어렵다.


어쨌든 당시 노동자들은 그렇게 해서 전 조합원 상경투쟁 파업을 결의했고, 열사 투쟁 시기 1천여 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41일간 삼성 서초사옥 앞 농성투쟁을 벌였다. 본 사례는 이 41일 간의 투쟁을 중심으로 하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첫 임단투 시기인 2014년 2월 경고 파업부터 같은해 6월까지를 범위로 한다. 



열사 투쟁 시기의 농성장 풍경이다. 팔뚝질, 구호, 피켓팅 등 농성 투쟁의 흔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뭘 하는 걸까? ‘족구’하고, ‘청소’하고, ‘춤’추는 모습이다.



2014년 6월 6일 현충일 오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지하철을 타러 가려 하자, 인도를 막은 경찰. 이에 노동자들은 갑자기 댄스곡을 틀고 춤을


6월 어느 날이었다. 서초동에서 출발해 지하철을 통해 도심 쪽으로 이동하려하자 경찰은 이유 없이 노동자들을 가로막았다. 아시다시피 한국사회 자체가 경찰국가가 되어버린 오늘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위 영상(혹은 영상 연속캡쳐)은 조합원들이 항의를 하다가 앰프로 ‘비’의 노래를 틀고 튀어나와서 춤을 추며 경찰을 조롱하는 모습이다.


까무잡잡한 남자들이 아스팔트에 모여 족구를 하고 하수구 까지 청소를 하고, 경찰 앞에서 춤도 추었다. 다름 아닌 지난 5월 17일 염호석 열사의 자결 이후 5~6월 여름 내 50여일간 지속되었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노숙농성 투쟁 때의 모습이다. 이렇게 월화수목금 평일 간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투쟁을 지속한 조합원들은 주말 정비활동을 한다.


농성투쟁 기간 내내 경찰과 부딪히고 욕지거리 하며 몸싸움도 했던 조합원들은 경찰이 대오를 가로 막을때마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고 싸웠다. 어쩔땐 몸으로 들이받으며 싸워서 뚫어내기도 했지만, 어쩔땐 주위 빌딩을 삥 돌며 침묵행진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렇게 화려한 웨이브까지 선보이며 부비부비 춤을 추고, 매우 독특한 방식의 문화제들을 하기도 했다.


우리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농성 투쟁에서도 이런 ‘정비’와 ‘유희’의 시간은 필요한 것. 그런데 지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에서는 이런 풍경들도 죄다 ‘투쟁’이었고 ‘시위’였다. 일종의 ‘퍼포먼스’로 수행했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신문지상과 인터넷 언론 등에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오늘은 지난 염호석 열사 투쟁 시기 지속된 서초사옥 앞 농성투쟁에 대한 기억을 돌아보며, 그 중에서도 저항의 양식의 문제에 착목해서, 우리 노동조합, 노동자들의 집회시위문화, 혹은 저항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곳에 모이신 동지들은 저보다 더 오래간 투쟁하시면서 깊이 있는 경험들을 갖고 계신 존경스런 선배들이기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파릇파릇한 노동조합 후배가 저간의 갖고 있던 고민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들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집회를 향해 던지는 세 가지 물음


저는 한동안 스스로에게, 혹은 주위 동지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채근하듯 묻기도 한다. “‘집회’는 왜 지루한가?”를.


그러면 우리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거나, ‘후지기 때문’이라고 쉽게 말해버린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후진 것’의 문제로 몽매하게 다뤄버리는 이런 빈약한 논리에 대해서는 그리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중요한 것은 후지거나 세련된 것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말 후지기만 한 것의 문제라면 최신 유행하는 춤을 배우고 아이돌가수의 유행가 가사를 바꿔 부르며 집회를 진행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



놀라운 풍경이다. 한국노총 산하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9월 3일에 열린 임단투 승리 결의대회에서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아이돌그룹 크레용팝을 섭외했다. 이런 양상은 단지 민주노총 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드러난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라고 다를까? 이렇게 노골적이지 않을뿐,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노동자문화가 사라지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 자체가 노조 활동가 안에서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문화는 “노동자들의 삶의 방식에서 나오는 대안적이며 집단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 속에서 결속력을 다지고, 노동자계급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즉 문화는 “개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며, 각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것이 뭔가 가치있는 것임을 인식하게 하는 인간의 행위, 제도의 총체”다.


노동자 문화운동의 영역은 작업장에서의 기업문화전략과 이데올로기적 관리와 효과, 노동조합에서 이루어지는 문화활동, 노동자의 문화소비와 여가활동, 가족관계 및 가족생활 등을 다루어야 한다. 단순히 재미있거나 사람들이 더 집중할 수 있으면 된다는 식의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접근은 오히려 우리 노동자문화의 토양을 빈약하게 만들 수 있다. 앞서 크레용팝이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상 오늘날 노동자계급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은 상품화된 대중문화에 의해서 침식되고 희석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노동자의 계급적 조직적 결속을 와해시킬 수 있다. 이제 노동자 문화는 집회시위라는 공간을 벗어나,노동자의 생활공간에 물리적 토대를 마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노동자 문화운동을 조직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이렇게 우리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시민들이 한군데 쫌 모인다 싶으면 이렇게 닭장차를 둘러 에워싸고, 여러 시선들로부터 가리고, 시민과 우리를 유리시켜버리곤 한다. 사방이 빽빽하게 닭장차로 둘러막힌 광장, 그 너머에서 버스 차창으로 외계인 보듯이 우릴 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기 지나가는 저 시민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자본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경찰의 저러한 차단과 분리의 전략은 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꽤나 성공적인 것이 사실이다. 사회 안에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시선 밖으로 내모는 것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이런 차단벽이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빙 둘러싸고 ‘세계’로부터 그들을 유리시키고 일종의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장벽이다. 얼마전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민중 사이의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은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을 포함해 1천여 명을 학살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산 바 있다.



브래드 피트가 나온 영화 <월드워Z>에도 이 장벽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내몰고 가두며 자신들이 침략해 만든 ‘문명세계’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쌓은 장벽 밖 세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되려 좀비가 되어버리고, 이들이 장벽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달려오는 장면에서 적나라한 반문을 던진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경찰 차벽은 저 팔레스타인 장벽에 의해 분리된 팔레스타인 민중들처럼 지배계급의 ‘세계’로부터 차단시키고, 시선 자체를 가로막기 위한건 아닐까? 그래서 더더욱 처량하고 막막해지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세계로부터 분리된 우리의 이야기, 잘못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디어에 표출시킬까?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즉, “어떻게 해야 언론에 나올까?”


왜냐하면 오늘날 매스미디어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좀처럼 관심도 없고 세상에 알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세상 곳곳의 사건을 응시하고 전달해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투정만 부리고 앉아 있을 순 없다. 어떻게든 우리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퍼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 퍼뜨려야 한다. 특히 파업이나 절박한 사안 앞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그렇다.


보통 사회운동은 어떤 사건들을 펼쳐놓고 왜 우리 이야기는 담지 않느냐고 항변을 하기는 한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 그것의 다각성과 심층적인 부분에 대해 파헤치고 진실을 캐내기 위해 언론인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분명히, 우리를 둘러싼 객관적인 악조건이 있다. 이를 담담히 인정하고, 어떻게 쫌 더 노력해서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투쟁, 우리의 집회, 시위는 결코 미디어와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미디어와 연결지어 생각해야 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노조를 만들어 투쟁하는 우리의 숙명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집회라는 것을 고민할 때 나는 항상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첫째, 집회란 왜 지루해지기 십상인가. 둘째, 저기 지나가는 저 시민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셋째, 어떻게 해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투쟁을 알리고 공감을 얻을 수 있나? 이 세 가지에 대해 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집회시위문화’, 혹은 노동자 저항문화라는 것의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의 ‘노동자 투쟁’


몇몇 진보적인 언론들에는 노동 담당기자들이 있다. ‘노동’ 파트에 대해 전담하는 기자도 있고, 혹은 사회부 기자이면서 노동쟁의 관련 사건들에 대해서도 취재를 맡기는 곳들도 있다. 예를 들면 <한겨레>의 노동담당 기자는 노동만 맡아서 보도하고, <서울신문>의 노동담당 기자는 노동 뿐만 아니라 몇몇 행정기관에 대해서도 같이 다룬다. 같은 <한겨레>에서도 고용노동부 기자실에 붙어서 취재를 하는 기자가 있고, 곳곳의 투쟁 현장들에 돌아다니는 기자도 있다. 그 언론사에서는 영역을 정해주고 ‘너는 여기, 너는 저기서 취재해라’ 정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동담당 기자들에게도 고충은 있다고 한다. 종종 노동자 투쟁에 대해 취재하고 다루고자 할 때 겪는 어려움, 토로하는 하소연이다. 노동 관련 뉴스는 천편일률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 ○○공장의 노동자들이 '어떤 탄압'을 당했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저항했고, 사측은 굉장히 악독하게 대응했다. 노동자들은 농성 투쟁을 전개했다. 혹은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또는, 천막을 치려고 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천막도 못치고 풍찬노숙하고 있다.


주어만 바꾼다면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리 다를 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은 그 안에는 매우 구체적이며 눈물겨운 사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들의 투쟁에 대해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이며 감성적으로 ‘스토리텔링’할 필요가 있다. 혹은, 우리의 투쟁 하나하나를 사건화 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고민과 노력 하나하나가 민주노조운동 안의 집회시위문화를 변화시키고 노동자문화를 아름답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렇게 실리적으로 생각하다보면 놓치는 원칙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점을 조율하고 집회시위 문화 혁신의 측면에서 투쟁 전술을 세우고, 하나하나의 투쟁들을 사건화 시키는 과정에서 일정한 ‘밀당’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에 있어 이런 고민은 원칙과 실리적인 차원의 고민 사이의 밀당이기도 했으며, 객관적인 악조건과 투쟁 주체들의 주관적인 인식 사이를 오가는 긴장관계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체로 젊고,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세상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론에 휩싸여 있는 조합원들의 입장에서, 몇 가지 기준을 정해서, 그 기준 하에서 파업 투쟁 전술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다섯 가지 기준

1.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을 하자. 즉, 우리 자신을 바꾸고 벅찬 감동의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는 싸움을 고민하자.

2. 매일매일 다르게 싸우자

3. 시민들과 마주하며 노동자 투쟁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지지자들을 모으는 투쟁을 하자

예측 불가능한 것을 하자!
4. 적이 예측하지 못한 것을 하자

5. 우리만의 이야기(story-telling)를 만들자.


집회시위를 기획할 때 위의 다섯 가지 기준을 정립하고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 답을 구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 때문에 이상의 것들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그 일곱가지를 견지할 수 있는 전술을 고민해야 했고, 가급적이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에는 그런 고민들을 녹여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 대해서는 부족한 점들이 있었고, 아쉬운 점도 있었다. 결코 완벽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기본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매일매일 다르게, 예측불가능하게 싸워나가고, 동시에 이 투쟁 속에서 우리 지부, 지회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면, 자본과 매스미디어가 놓는 함정에 그리 쉽게 빠지진 않지 않을까.


여기에는 무수한 정치적 노력과 고민이 필요할 게다. 때로는 기자들과의 친밀도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 혹은 매일매일 다르게 싸우기 위해 참조하거나 조사해야할 것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부수적인 노력들을 기울이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소개드릴 몇가지 사례는 그런 고민 끝에 산출된 사소한 아이디어들이고, 투쟁의 결과다. 그 몇 가지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한다.


조합원들의 끼를 이끌어내는 기획



[사례1] 3월 27일 투쟁 문화제에서 분회별 장기자랑

전국에서 전 조합원이 모였더랬다. 당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전국 56개 센터로 흩어져 있었고, 1,2월 경고 파업과 파상 파업을 거치면서 투쟁의 기운을 달구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어느 지역은 파업하고 어느 곳은 잘 하지 못했던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지역 간에 불만, 편차, 온도차가 있었고, 다소 오해와 갈등의 소지도 있었다. 그래서 화합과 단결의 계기가 필요했다. 교섭 국면을 열기 위해 단일한 힘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했다. 3월 27일과 28일 1박 2일간 서울 서초사옥에서의 투쟁은 그런 맥락에 있었다. 문화제를 파격적으로 구성해보려고 노력했다. 투쟁 준비하면서 조합원 자신의 목소리, 공연, 노래를 조직했다. 간부가 아니라 일반 조합원이라면 더 좋았다.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가 분회별 장기자랑이었다. 수십여 개 분회가 공연을 준비하고, 이를 우리끼리 신나게 뽐내면서 놀았다. 그 자체가 단결의 계기였다. 체육대회나 워크숍 때나 하는 걸 상경투쟁 자리에서 했다. 적의 심장부 앞에서 놀았던 셈이다. 이것이 조합원들이 똘똘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례2] 버스킹문화제

염호석 열사 투쟁이 한창인 6월 초였다. 점점 밀려오는 피로감, 생계의 불안 등이 조합원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이 역시 아주 색다르게 기획했다. 우리끼리는 맨날 잘 놀았는데, 이걸 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것도 대낮에,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 강한 2~30대 시민들 앞에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도심에서의 버스킹문화제다. 당시 ‘버스킹’이라는 홍대 앞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는데, 조합원들 중 노래나 랩, 춤 등 장기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끼 발산하는 즐거운 투쟁 기획이었다. 이후 몸짓패 공구가방과 노래패 밧데리 구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걸 대학로 마로니에에서도 했고, 수원에서도 했다. 다른 곳에서 더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대중문화와의 접점을 다양하게.



[사례3]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라디오 방송

대중문화와 다른 노동자들만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배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대중문화의 어떤 요소를 가져와 그것을 우리들의 문화로 배합하는 것도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한 게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라디오 방송 형식의 문화제였다. 전면 파업과 노숙 농성 시기 매일 저녁 7시에 문화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날의 투쟁 일정을 소화하고 조율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 문화제도 매일 하다보면 지겨워지고, 고개 푹 숙이고 핸드폰 보고 있는 조합원들 늘어가고, 졸기도 하고 그런다. 그래서 뭔가 다른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5월 말 어느날 ‘공개라디오 방송’ 형식의 문화제를 기획했다. 사회자도 연대하는 활동가를 섭외하고, 3~4일 이상 준비했다. 결과는 대성공. 문자메시지로 사연을 받고, 그걸 낭독하기도 했으며 실시간으로 퀴즈쇼도 했다. 웃음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맨날 옆에서 차벽 높이 쌓아놓고 우리 막고 있는 경찰한테 가서 인터뷰를 요청하는가 하면, 생전 한번 목소리 들어본 적 없는 수줍고 조용한 조합원들, 스물둘 막내 조합원, 예순살 선배 조합원의 아들 이야기도 들어봤다.


[사례3-1] 팟캐스트 '다 녹아있네' 공개 방송

약 10회에 걸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다 녹아있네> 팟캐스트 공개 방송을 기획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실시간 라이브로 진행하고, 이를 팟캐스트로도 올리는 방식이었다.


[사례4] ‘우리가 남이가’ 족구대회, 연날리기 대회

일요일에 정비 활동을 하다가 그것도 뭔가 변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요일에는 상당수의 조합원들이 지역에 돌아가 휴식을 하고, 일부 50~60여 명의 조합원들만이 농성장에 남아 자리를 지키고, 농성장을 정비한다. 이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뭔가 해야 한다. 이때에는 뭔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꺼리를 찾으려 했다. 그게 부담이 돼서도 안 됐다. 노는 방식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합원들 스스로 족구대회를 열거나, 연날리기 대회를 하거나, 고기를 구워먹거나 했다.


매일매일 다르게 싸우자



[사례5] 2월 테마가 있는 파업

파상 경고파업은 경고파업인데, 조합원들에겐 일종의 훈련이었다. 쟁의권 먼저 따고 치고 나갔던 부산경남지역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파업하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그래서 뭔가 과제부여, 의미부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테마가 있는 파업이었다. 아예 파업 이름도 그렇게 정했다. 춤추는 날, 영화보는 날, 추모의 날. 하루하루가 미션이었고, 큰 의미부여가 됐다. 이때 배운 춤은 이후 투쟁하면서 계속 써먹었다. 마침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산재 노동자 황유미 씨 등의 투쟁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는데 이걸 가족들, 동료들과 함께 본 하루는 우리 투쟁의 사회적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사례6] 3월 상경투쟁단 시기

소수지만 40여 명의 조합원들이 상시적으로 숙식하면서 이슈파이팅 하는 게 목적인 시기였다. 다소 이완된 전국 조합원들의 힘과 의지도 끌어모아야 했다. 그래서 뭐든지 이슈파이팅 되는 것 중심으로 기획했다.


[사례6-1] 삼성미술관 플라토 기습시위


[사례6-2]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스의 시범경기가 열리는 야구장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됐다. 삼성라이온스의 경기가 있는 날 목동 야구장을 찾았다. 상대 팀 펜스에서 상대 팀을 응원하는 컨셉이었다. 삼성 선수가 친 파울볼을 잡아내는 성과도 있었다. 품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조합원들이 흥겹게 움직일 수 있는 기획이었다.


[사례6-3] 이건희 자택 앞 방문

노동자들은 이건희 회장과 그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염호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원청이 관리자로서의 역할도 했고, 노조 죽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이건희 자택 앞을 찾았다. 주택가 시위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무작정 방문했다. 


[사례6-4] 아침, 점심 가리지 않고 서울시내 미조직 삼성전자서비스센터 기습방문


[사례6-5] 청와대, 광화문광장, 총리공관 등 주요 거점 50여 곳 산개 피켓팅


[사례6-6] 삼성전자 본사 지하 기습시위


[사례6-7] 홍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울대 등 주요 대학 방문해서 학생들과 함께 선전전


[사례7] 5~6월 염호석 열사 투쟁시기 매일매일 다른 투쟁

그 전의 경험들이 쌓여 있었고, 조합원들의 기대도 높은 상태였다. 항상 새로운 것을 하긴 어려웠지만 가능한한 항상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조합원들의 빛나는 아이디어들도 힘이 됐다. 매일 조별 평가를 나눌 때 아이디어도 모으고 평가도 모았다. 조합원들 각자가 ‘내일도 이거하는구나’가 아니라, ‘내일은 뭐할까?’, ‘뭐해야 우리 투쟁 알릴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고민했다. 찾아와서 조별 토론에서 수합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조합원들도 많았다. 그래서 아주 많은 걸 했는데 그 중 몇 가지만 떠올려보면 이런 것이었다.


[사례7-1] 시청광장 세월호 추모 및 삼성 고발 퍼포먼스


[사례7-2] 여의도 국회의사당, 청와대 앞, 시진핑-이재용 면담 관련 기습 시위 등


[사례7-3] 신라호텔 기습방문


[사례7-4] 삼성전자 수원사옥 앞 버스킹문화제


[사례7-5] 조합원들이 200개 조로 나뉘어 사회 저명인사 및 단체 200여곳에 직접 편지쓰고, 배달까지

700여 명의 조합원들이 200여 개의 조로 편성됐다. 편지지를 나눠주고, 우리가 찾아가야 할 시민단체, 진보적 교수, 산별노조 중앙 사무실, 국회의원 등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었다. 오전에는 정성스레 편지를 썼고, 오후에는 각자 200여 개의 배송지를 찾아 길을 떠났다. 무작정 가시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쓴 편지를 배달했고,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이는 수백가지의 소중한 연대로 돌아왔다.


[사례7-6] 문창극 총리지명자를 삼성장학생으로 규정하고 되는대로 기습시위


[사례7-7] 박근혜 일정 체크해서 쫓아다니기

[사례7-8] 서울투어 시민 선전전 (청계천, 덕수궁, 경복궁, 여의도공원, 홍대 앞 등)

[사례7-9] 미조직 센터 조직하는 날


[사례7-10]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시민들의 인식 개선, 지지를 모으는 사회적 투쟁


[사례8] 시민사회 각계각층에 편지 쓰기

말 그대로 2~300여 곳의 단체, 저명인사들에게 편지를 썼다. 두명 또는 세명이 팀을 짜서 편지를 쓰자고 했고, 오전 내내 정성들여서 편지를 쓴 조합원들이 이걸 들고 직접 편지 배달하러 무작정 찾아갔다. 연락처 알아내서 직접 찾아간 조합원들도 있었고, 무작정 간 조합원들도 있었다. 어쨌든 이것이 큰 힘이 됐다. 이때의 답례로 찾아온 단위들도 많았고, 지원도 많았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힘으로 연대를 조직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사례9] 대학가 방문

대학생들 지지를 얻는 게 원활하다고 느꼈다. 학생운동 단위들과 협의해서 대학가 앞으로 많이 갔다. 간담회도 조직하고, 연대도 조직했다. 그게 또 큰 힘이 됐다. 그걸 하기 위해 대학가에 많이 가려고 했다.


[사례10] 6.4 지방선거 투표하는날

지방선거를 앞두고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사전투표 3일 전에 불현 듯 떠올랐다. 사전투표라는 제도가 익숙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뉴스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그래서 아는 기자 분에게 연락해서 기자들이 취재 가는 곳이 어딘지 알아봤다. 대한상공회의소 지하 투표소란 걸 알게 된 후, 그 바로 옆에 있던 삼성그룹 남대문본사 앞에서 집회신고를 내고 당일 오전에 집회를 한 후, 경찰이나 공무원 아무도 예상 못한 상태에서 그냥 700여 명이 무작정 투표하러 들어갔다. 다들 놀라서 어쩔 줄 모르더라. 그 자체가 우리에겐 쾌감이 됐다. 안에 기자가 너무 많아서 자연스럽게 사진이 많이 찍히고 보도도 됐다.



[사례11] 팟캐스트 제작

원래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당시에 ‘나꼼수’ 등 열풍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도 뭔가 팟캐스트 형식으로 재밌게 만들어서 유포하면 좀 더 친근하고 폭넓게 선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 녹아있네’라는 제목의 팟캐스트였는데, 당시 건당수수료제라는 기형적인 임금제에 녹아있는 노동자들이 빼앗긴 댓가, 피땀어린 노동의 결과, 잉여이윤의 진실을 파헤치는 게 주된 내용이었고, 또 바지사장들 조롱하고 욕하는 속풀이 장이기도 했다. 이걸 10회 했다. 계속했으면 좋았을테지만 준비 자체가 힘들어서 나중에 힘이 좀 빠졌다. 어쨌든 나름 성과가 많았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하자


예측 불가능성이란 게 주는 쾌감이 있다. 때로는 그 쾌감이 사회 속에서 아주 미약한 존재인 개개인에게 ‘내가 주체다’라는 인식을 주기도 하고, 내가 뭔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는 자각을 주기도 한다. 그걸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달라지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자부심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감당 못할 사건이 아니라면, 뭐든 해보려고 했다.


[사례12] 우리를 가로막은 경찰 앞에서 갑자기 춤을 추는 노동자들

[사례13] 삼성미술관 플라토 기습방문 시위

[사례14] 시청광장에서 “삼성이 죽였다” 및 ‘노란리본’ 만들기 518명의 퍼포먼스

※ 518은 염호석 열사 시신이 침탈 당한 5월 18일 상징.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자


오늘날 집회나 문화제의 형식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사실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시작되고, 매끈한 말솜씨에 목청도 좋은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와 집회를 이어간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실천이 보다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며, 이전과는 조금씩 다른 양상과 스토리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살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노동자들은, 좋게 말해야, ‘순수’, ‘평범’이다. 적어도 ‘빨갱이’가 아닌 게 어디겠냐마는, 그런 시선에 머무르는 이상 노동자들의 저항문화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 오늘날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처절하고 절박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투쟁에 나설 때, 그 내용을 풀어내는 데에는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조합원 개개인의 사연을 통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장르적인 서사와 판타지, 우화를 통해 풀어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사람들은 그 많은 이야기들 중 매력적인 것을 찾아 헤맨다.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매력이 없지 않다. 다만 그것을 표면화시키고, 이야기로 만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만의 드라마가 필요한 이유다. 그것을 기획하는 것은 집행부와 활동가들의 몫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풀고 쌓는 것은 조합원들의 몫이다.


우리의 틀에 박힌 문화와 형식이 그것에 벽이 되지 않도록, 공간과 기회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문화적 자원도 풍성해지고, 미디어를 통한 대응에도 다른 기회가 생긴다.


보론1 : 장소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연극 연출가 아우구스토 보알은 카페 등 특정한 장소에서 우발적이고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을 기획하고 연출해 대중들의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행동과 연극 공연의 경계 사이를 허무는 실험을 한 바 있다. 오늘날의 ‘장소특정적 연극’이란 이런 실험과 맞닿아 있다. 이진아(숙명여대 교수)는 장소특정적 연극이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에 주목하는 동시에, 해당 장소에서 일상적으로 영위되는 현재의 삶, 소속된 공동체의 특징과 정체성 문제에 관심 갖는다”고 말하는데, 이는 거꾸로 노동자들의 투쟁, 집회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장소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바로 장소특정적 연극이 갖는 ‘공동체 문화’와 ‘현실과 장소의 연결’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집회란 하나의 연극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우발적인 상황에 놀라고,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통념을 깨버리고 새로운 충격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에겐 그런 각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집회는 참가자들의 결의를 다지고 단결을 확인하는 장소이지만, 가끔은 그런 실험과 각성의 장소이기도 해야 한다.


보론2 : ‘경험의 축적’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투쟁도 하나의 사례이지만, 그밖에 무수한 노조들이 가진 더 좋은 사례들이 많을 것이다. 노하우, 실패담, 성공담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을 저 넓은 백사장 같은 현실에서 발견해내는 건 아주 어렵다. 이런 경험들은 보다 가시적인 형태로 축적되어야 한다. 기획자와 실무자들의 기억만이 아니라, 인터넷 등에 데이터베이스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언제든 투쟁의 의지를 갖는 노동자들이 그것을 따라할 수 있다. 흔히 조직되어 있지 않았던 노동자들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이 투쟁할 때 아주 천편일률적으로 피상적인 이미지를 인용해갈 때가 많다. TV드라마 속 파업 노동자의 이미지도 그렇다. 이것을 보다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축적해야 한다. 민주노총에서 그런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좋은 무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결론 : 새로운 도전으로, 막혀있던 고리를 풀자!


사람들은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자신이 알던 기존의 ‘세계’와는 다른 어떤 것을 감지한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의 균열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독서나 소설, 영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알던 세계의 창에 균열을 내고, 그동안 몰랐던 것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는 것은 역시나 집회와 시위다. 공간과 시간의 균열, 다양한 사람들과의 충돌 속에서 미끄러지는 관계들이 중첩되어 발생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일상생활 내내 우리 자신이 매우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그리고 이 세상 누구도 우릴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어떤 집회 공간에서 무수한 사람들과 공동의 것을 외치고 이야기할 때, 내가 그리 고독하지 않은 존재임을, 그리고 진정한 변화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 수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집회시위 문화도 이러한 방향을 추구하는 것을 끊임없이 기획하고,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아이디어들을 수렴하는 것을 그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고 또 그것이 침체에 빠진 노동운동에도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막혀있던 고리들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병한의 《반전의 시대》 서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