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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Jun 18. 2018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국제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

윌리엄 J.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

1월 말부터 2월 초 사이 윌리엄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읽었다. 970페이지에 달하는 아주 두꺼운 책으로, 책장을 펼치기 부담스러운 책이다. 읽기 전에는 작정하고 읽지 않으면 끝까지 읽기 어려울 것 같았다. 원래는 베트남 여행 전에 읽어두려고 샀던 책인데, 여행을 떠날 때까지 다 읽지 못했었다. 그래서 1월 25일, 여행 짐을 쌀 때 이 책을 가져가야하나 몇 분은 고민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J. 듀이커는 (책의 날개에 쓰인 소개에 따르면) "베트남 현대사와 호치민의 생이를 깊이 있게 연구해온 예외적인 역사학자"다. 1960년대 중반 미군 장교로서 사이공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호치민이라는 신비한 인물에 매혹된 그는, 이후 30여 년 간 세계 곳곳을 오가며 호치민을 연구했다. 원서가 나온 게 2000년이니, 그렇게 수십 년을 연구한 결과가 이 책과 그가 쓴 10여 권의 베트남 연구서적이다. 그런만큼 이 책은 기나긴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자료를 조사했고, 그의 평생 연구 성과의 집대성인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알고 있던 '호치민'에 대한 어떤 인상은 꽤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까지 내가 베트남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유일한 나라', 그리고 공산당 집권이 유지되면서 개방적인 시장 경제로 전환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 정도였다. 그러니 나는 호치민도 '독립운동과 전쟁의 지도자' 쯤으로 여겼지, 그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소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 했다.


하지만 호치민은 무관이 아닌 '문관'이다. 평생에 걸쳐 글을 썼고, 후배 혁명가들을 끊임없이 교육했으며, 고국으로 돌아가 험난한 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되는 1945년 경 이전까지는 틈만 나면 '신문'을 만들어냈던 편집자이자 비평가였다.


호치민은 또한 탁월한 외교가였다. 살아 생전 그는 프랑스, 소련, 중국, 미국 등과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고, 식민지로 전락한 베트남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주변 강국들의 역량을 견제 혹은 활용해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지, 또 부분적인 독립을 이룬 후에는 어떻게 하면 전쟁을 피하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을지 고뇌하며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의 이런 노력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대의 다른 식민지 국가들이 펼친 외교적 노력들에 비하면 확실히 뛰어난 것이었다. 이는 호치민이 세계 정세에 대해 기민한 감각과 깊이 있는 인식을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가 프랑스어와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기 때문일 게다.


그는 유교적 전통을 계승한 민족주의자이면서도, 20세기 초중반 세계에서 가장 핫한 깃발이었던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치열하게 복무한 혁명가였다. 사실 저자 듀이커도 여러 차례 말하듯, 식민지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이기도 한 것은 그리 특별한 사실은 아니다. 식민국가의 혁명가들은 모국의 '독립'도 쟁취해야 했고, 동시에 봉건 사회의 모순이나 점증하는 자본주의적 모순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호치민은 이런 이중성을 평생에 걸쳐 견지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코민테른이나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민족주의자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평생에 걸쳐 '공산당' 건설을 위한 다양한 노력(조직, 교육 등)을 했던 점이나, 노년 시기 중소 분쟁을 중재하려고 노력했던 점, 베트남 내에서의 사회주의 개혁 조치들에 적극적이었던 측면(물론 항상 그렇진 않았다)에서 볼 때, 그는 프랑스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접한 시점부터 평생에 걸쳐 강고하고 진지한 사회주의자였다. 코민테른의 충실한 요원이었고, 목숨을 걸고 인도차이나 지역의 혁명을 위해 수십년 간 분투했다.


하지만 내게 특히 매력적이고 인상적으로 느껴진 것은 젊은 시절 그가 내내 열정적인 논평가, 동포들을 향한 가장 성실한 '칼럼리스트'로 살았다는 점이다. 그는 쉴 새 없이 글을 썼고, 이를 위해 때로는 언론을 창간했으며, 프랑스와 소련 등에서 저명한 저술가로 활약했다. 그가 처음으로 정기 간행물의 편집자가 됐던 것은 1922년 4월 1일 프랑스에서 <르 파리아(Le Paria)>를 창간했을 때인데, 이때 당시 '응우옌 아이 쿠옥'(호치민이 베트남으로 돌아온 1940년경 전까지 사용했던 활동명)은 대부분의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삽화도 그렸고, 편집도 직접했으며, 포장과 배포를 책임지고 독자들에게 직접 배달을 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프랑스어로 인쇄됐지만, 제목엔 한자와 아랍어도 적혀 있었다.

이밖에도 그는 <린카익멘(혁명전사)>, <비엣남티엔퐁(베트남 선봉)>,  <비엣남 독랍> 등 다양한 잡지들을 만들었었고, 또 프랑스와 소련, 중국 등의 여러 매체들에 기고했다. 이 점에서 보면 확실히 그는 우리가 아는 다른 혁명가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활동했는데, 그의 이런 평생에 걸친 선전선동 활동이 그가 축적한 조직적 역량의 밑거름이 됐음은 두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호치민 평전>은 호치민 개인의 생애만을 추적하지 않는다. 그의 삶을 둘러싼 역사와 세계 정세, 다른 세력들과의 권력관계, 소련과 코민테른, 중국공산당의 상황, 호치민 주위 인물들에 대한 해설 등 다양한 맥락들을 소개하고, 이것이 호치민의 선택과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아가 한 개인의 삶이 이런 세계적 맥락들과 어떤 연관을 맺고 변화했는지에 대해 풍부하게 설명한다. 그 때문에 <호치민 평전>을 읽고 나면, 그의 삶 자체가 역동적이고 국제주의적이었다는 점, 동시에 저자가 그런 역사적/세계적 맥락들을 잘 엮고 있다는 점 때문에 20세기 세계사의 어떤 중요한 측면을 깊이 있게 마주쳤다는 생각이 든다.

호치민의 삶을 둘러싼 딜레마와 아포리아는 "총을 든 간디"라는 모순적인 묘사만으로 설명 가능하지 않다. 그는 '최고의 전략가'이기도 했지만, 불가피한 패배들 속에서 후퇴를 거듭한 처절한 좌절의 삶을 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이런 좌절들에도 불구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인고의 세월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고, 그뿐만 아니라 독립과 통일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그가 겪은 무수한 고난들은 오늘날 우리가 '고난'으로 여기는 많은 고난들보다도 더 고통스러웠으리라 짐작되는데, 저자가 그저 '경탄'해마지 않았던 그런 궤적이, 우리에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될 때, 호치민이 견지하고 거쳐온 어떤 원칙과 역경의 세월이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평전으로서의 객관성, 어떤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우려는 태도를 비교적 충실하게 갖추고 있고, 논평을 아끼지 않되, 원칙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저자는 역사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손 쉽게 평가하려 들지도 않고, 동시에 그것에 대해 호치민이 갖고 있던 열정과도 거리를 두려 한다. 또, 사회주의 이념의 쟁점에서도 어느 정도 비켜서 있다. 단지 역사적 사실 관계들 속에서 판단할 따름이다. 그 때문에 현실 사회주의의 질곡과 모순, 진정한 의의와 정치철학적으로 평가할 점 등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이는 호치민 스스로 대체로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태도가 오늘날 베트남 사회의 현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돌아봐야 하는 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서구적인 편견에 갇혀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시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지도 않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동아시아적 지평 안에서, 혹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의 측면에서 호치민과 베트남 혁명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코민테른 동아시아국'의 역할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이를 둘러싼 한반도와의 관계는 또 어떠했고, 한반도 내외의 혁명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동아시아국'과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동아시아국'의 비전이란 무엇이었는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구체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의 어떤 이념을 전파하려 했는지도 물음표로 남는다. 물론 당시의 한계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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