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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Oct 09. 2018

베이징 한복판에서 만난 마르크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전시회 관람기

베이징에서 ‘마르크스(马克思)’와 마주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마르크스주의 학습이 강조되고 있고, 대학 캠퍼스들을 중심으로 곳곳에 마르크스, 엥겔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내가 자주 가는 건물에도 지난 5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건립됐다. 건물 7층의 ‘마르크스주의학원’(단과대학) 교실 앞에 서 있는 이 동상은 마르크스의 생일을 맞아 치러진 여러 기념사업 중 하나로 세워졌다. 동상이 세워지길 기다렸다가 몰래 구경하러 간 나는 동상을 보고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캠퍼스 안에서 이 동상이 생겼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학원 성원들과 학내의 당원들 정도가 다 아닐까?



나로서는 이곳의 마르크스주의 학습이 얼마나 유의미하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기 어렵다. 아마도 공산당 당원이라면 보다 의무적으로 교육이 이뤄질 테고, 대학 학부생의 경우 거의 의무적으로 토요일마다 마르크스주의 수업이 있다는 점 정도다. 얼마 전 나와 친한 한 중국인 친구는 이 과목의 기말고사를 치렀는데, 외울 게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말을 했다. 짐작컨대 우리로 치면 일종의 ‘윤리’ 과목처럼 여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 내게 ‘윤리’라는 과목은 좋은 말만 왕창 늘어놨음에도 내 삶에 눈꼽만큼도 감흥과 가르침을 주지 않는, 옛날 얘기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중국인 친구들이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 외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언급하는 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중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 학습이 마르크스 원전을 중심으로 이뤄지진 않을 게다. 오히려 학습의 중심은 중국이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는 독특한 변용에 맞춰져 있다. 요컨대 덩샤오핑 이후 추진되어온 ‘사회주의 현대화’, 장쩌민의 ‘3개 대표노선’, 그리고 최근 시진핑이 주창하고 있는 ‘신시대 사상’ 등 일련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말이다.


중국 사회를 과연 여전히 사회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 혹은 완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다름 아니라고 말해도 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하버드대에서 온 미국인 교수는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과연 마르크스가 살아서 지금의 중국을 본다면 비판할까요, 비판하지 않을까요?” 여기엔 무수한 쟁점이 있지만, 대체로 상당수의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에 가깝다고 말하는 편에 속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혁명운동의 당이기보다는 집정당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으며, 계급투쟁을 촉진하기보다는 억압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이 있다. 이런 강력한 집정력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부상시키는데 큰 힘을 발휘해왔다.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오늘날의 중국에 대해 다양한 논평을 할 것이다. 서구 자유주의의 비판이 있다면, 중국 주변국가의 비판도 있다. 한편, 사회운동 좌파들의 비판 역시 존재한다. 중국공산당이 노동자계급과 혁명을 배반하고 중국을 소수의 권력자들을 위한 세상으로 재편해왔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중국의 오늘을 손쉽게 비판하고 그저 개혁개방이나 공산당 집정을 물리치면 되는 대상으로 상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와 중국공산당이 처한 모순과 정세를 동시대적이고 역사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 중국공산당이 마주했던 모순을 누군들 돌파 가능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전시’



2018년 6월 초, 중국인 친구 A와 함께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전시’를 다녀왔다. 평소에 A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제 그는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그동안 일하던 곳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가 활동하던 공간을 관리‧감독하던 윗선의 간부들의 지속적인 감시와 간섭에 그는 넌덜머리가 났다고 했다. 확실히 A는 평범한 중국인은 아니었다. 동성애자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공공연히 중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출했으며, 최근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조직적 파업 소식을 SNS 상에 공유하는 등 활발한 의견 개진을 해왔다. 이런 ‘모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로 느껴졌을 것이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전시’는 베이징 천안문광장 동편에 있는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베이징에서는 가장 큰 박물관이다. 이 전시는 2018년 4월 경 시작해 8월 6일에 폐막했다.


중국국가박물관은 주말이 아니라도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공간이다. 다른 곳과 달리 외국인 관광객이 적은데 비해, 내국인 방문객들이 엄청나게 많다. 내가 간 날은 가만히 서 있어도 5초만에 땀이 줄줄 흘리는 날이었다. 인파를 뚫고 천안문광장 입구의 검사대를 통과해 200미터 쯤 걸어가니, 앞선 인파의 10배가 넘는 인파가 박물관 앞에 줄이어 서있었다. 1시간 쯤 기다리니 마침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여전히 사람은 쏟아질 듯 많았다. 평일 대낮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마르크스’를 찾은 공산당원들


이 박물관은 정말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의 모든 것이 거대하긴 하지만, 가본 박물관들 중에서 가장 거대했다. 물어물어 마르크스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 입구에 가니 A를 만날 수 있었다. 약속대로 A는 거대한 마르크스‧엥겔스 동상 앞에 서 있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단체로 방문한 것처럼 보였는데, 유난히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공산당 당원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들은 대체로 단체 사진을 찍는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시는 3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1구역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주요 장면들 속에 위치한 마르크스의 생애와 저작들이 있었고, 2구역엔 마르크스의 삶을 그림으로 그린 미술 작품들이 소개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3구역에는 중국에서의 마르크스 수용사가 소개돼 있었다.



전시물들은 마르크스 생전의 출판물들이나 관련한 사진‧영상이나 회화와 판화 등 미술작품, 그리고 전시 내용을 설명하는 그래프와 도판 디스플레이로 이뤄져 있었는데, 적은 수의 출판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곳 중국에서 그린 그림이 많았다. 마르크스의 삶이나 국제 공산주의 운동 역사의 주요한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었는데, 어떤 그림은 웅장하고 멋있었지만, 어떤 그림들은 조야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별로였다. 개중엔 중국식 전통화풍으로 그린 그림도 있었고, 마르크스를 아이돌처럼 잘 생기게 그린 기괴한 그림도 있었다.


대부분의 단체 관광객들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했다. 공산당원, 경찰, 군인 등 다양한 그룹이 있었는데, 대체로 큐레이터의 말을 묵묵히 듣는 편에 가까웠다. 나는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이 풍경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9천만 명에 달한다는 중국공산당 당원들이 이런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A에게 물었다. 이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얼마나 될까? 있긴 할까? A는 웃기만 했다.



마르크스 그림을 ‘지키는’ 임시직 노동자


2구역의 풍경은 특히나 어색했는데, 거대한 폭의 그림마다 지키고 있는 보안 노동자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시꺼먼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림 사이를 이리저리 걷기만 하는 그들의 표정은 확실히 활짝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는 공산당원들과는 달랐다. 마르크스가 제1인터내셔널로 짐작되는 어느 회의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먹을 이용해 그린 한 거대한 그림 앞에 다다랐을 때, A가 내게 말했다. “저 보안원들은 다들 임시직일거야.”, “아마 그렇겠지?” 중국 사회를 덮은 거대한 모순이 이 풍경 안에 다 섞여 있는 것 같았다.

3구역 끝자락에는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의 국가주석 역임 당시 사진들이 연이어 있었는데, 예리한 A는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사진이 2장씩만 있지만, 시진핑 사진은 5장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코너를 돌자, 작년 《习近平谈治国理政(시진핑, 국정을 논하다)》이란 제목의 선문집이 수십개 언어로 번역된 책들이 전시돼 있었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전시의 마무리가 이 책이라는 점이 참 애석하게 느껴졌다.


톈진에 가면 화려하고 스텍타클하게 설계돼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빈하이도서관이 있다. 개관 당시 도서관 측에서 배포한 사진에는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도서관에 들어가서 보면 그게 다 책이 아니라 껍데기 사진을 붙인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당시 나는 도서관에 카메라를 들고 가지 못 하게 해서 의아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헌데 이 도서관에도 같은 책이 수백 권씩 꽂혀 있는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시진핑 선문집이었다.



임시직 노동자는 고개를 떨궈 서 있고, 당원들은 단체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이번 마르크스 전시에서도 나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모순이 가득 차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데, 그걸 스펙타클한 포장지로 덕지덕지 붙인 중국 사회의 어떤 모습 말이다. 과연 계속 덮여질 수 있을까?


스펙타클한 기획전시보다 큰 역사의 힘


하지만 이런 중국 사회를 버티게 하는 어떤 강한 힘 역시 존재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중국 경제의 무서운 발전, 첨단 IT산업의 속도전, 거대한 땅과 가난하지만 불굴의 투지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중국 혁명의 역사가 축적해온 힘 말이다. 당장 박물관 안 또 다른 공간에만 들어가도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마르크스 200주년 전시와는 달리 상설 전시로 이뤄진 이곳은 중국 대장정 시기의 영웅들과 투쟁들을 그림과 조각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작품 하나하나가 역사의 무게와 동력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이름 없는 여성, 이름 없는 아이, 이름 없는 농민의 동상들. 금방이라도 살아 돌아올 것처럼 생동감 있는 작품들이었다.



세계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가장 스펙타클하게 전시하고 있는 중국. 대학마다 ‘중국식 마르크스주의 학습’은 의무화되어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강좌가 나온다. 중국 정부는 마르크스의 고향인 독일의 소도시 트리어에도 마르크스 동상을 세워 기증하기도 했다. 트리어 시정부가 마을의 풍경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 거대한 동상을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하나다. 소비력이 높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사상은 죽고, 스펙타클한 허장성세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하다. 마르크스와 삶과 사상을 진정으로 잘 계승하고 전화하는 것은 독일이든 중국이든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A와 한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일터를 나온 A는 이제 뭘 할까. 농민공 노동자를 돕는 변호사를 하고 싶기도 하고, 아니면 이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활동을 하고 싶기도 하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는 A가 다른 어떤 관료들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자에 가깝다고 느꼈다. 제한적으로 표현하지만, 그는 동시대의 모순 앞에서 급진적 이상을 갖고 있었고, 또 진정성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비판적 사회주의자들을 억압하는 일에 보다 높은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남은 당원들은 대체 어떤 사회주의자들일까? 마르크스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 찍을 때만 사회주의자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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