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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Jan 03. 2019

느리고 불편한 중국 기차여행

중국에서 기차를 처음 탄 건 만18살 때인 2001년이었다. 그땐 한국에서 여행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때였고, 베이징이나 시안, 톈진 등 대도시들도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와 여행을 떠났다. 인천에서 24시간 동안 배를 타고 톈진으로 왔고, 톈진에서 하루이틀 잔 후, 다시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왔다.


당시 베이징에 대한 내 인상은 매우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도시란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역사의 위풍같은 건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구경할 때만 느꼈을 뿐이다. 편견 속에서 기억하는 베이징의 모습을 회상하면, 거리는 지저분했고, 사람들은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질렀으며, 거칠었다. 한동안 중국에 대한 악명 높은 이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벽이 없는 화장실이 가장 끔찍한 악몽이었다.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어떤 장엄한 계곡에서 배를 탔었다. 그리곤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시안에 갔는데, 그 기차가 열여덞 살의 여행 기억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기차 안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당시 유럽인들이 중국에 베낭여행을 오는 게 유행이었었던 것다. 아니면 기차 외에는 별 다른 이동수단이 없어서 였는지도, 혹은 어린 동양인 고딩이 중국에 가서 서양 사람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에 그렇게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억 속에서 내가 탄 열차칸 안에는 중국인보다 노르웨이, 미국 등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았다. 당시 약 20시간 동안 3층 침대 기차를 타고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전에 꽤 긴 미국 여행을 두 번 갔던 기억은 있지만, 조용한 동부 도시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중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게 신기했고, 두렵기도 했더랬다.


그때 이후 중국 기차에 대해 일종의 판타지가 생겼다. 철덕까진 아니지만, 기차를 타고 대륙으로 가는 꿈, 서쪽으로 서쪽으로 떠나버리고 싶은 역마살 종특의 판타지 같은 것 말이다. 드넓은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저 멀리 서쪽으로 향한다는 건 한반도 작은 땅에서 살아온 사람에겐 설레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에 대한 꿈이 있는 건 남북 분단으로 섬이나 다름 없는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특히 중국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열차를 타면 창 밖에 보이는 산, 들, 마을, 강의 풍경이 두 눈을 사로잡고 놔주질 않는다. 마을을 지나 끝없는 벌판이 펼쳐지고, 다시 또 마을을 지나면 끝없는 산이, 강이,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그래서 10개월 전 베이징에 올 때 반드시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획 중 하나가 기차 여행이었다.


최근 1~2년 사이 나는 여러 차례 기차 여행을 했다. 3주 후에는 광둥성을 향해 기차를 타고 떠난다. 며칠 전 이 루트를 기록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글맵을 이용해 루트를 그렸다. 2017년 5월부터 2019년 1월 사이의 여행 루트니, 18년 전 여행은 제외했다.



상하이-쑤저우-구이린-광저우 여행은 2017년 5월 7박8일 간 갔던 여행이다. 이땐 니하오(你好)랑 뚜어샤오치엔(多少钱?) 외에는 중국어가 거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내 긴장하며 기차를 탔지만 손짓발짓 파파고 구글번역 다 써가며 여행을 잘도 다녔다. 당시 이미 중국엔 곳곳에 고속철도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고속철도와 일반 기차의 가격차를 보고는 일반 기차만 탔다. 아무리 한국보다 물가가 싼 중국이라 하더라도, 장거리 고속철도의 삯은 부담스러웠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가난한 운동권이 탈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니, 한 달에 3000위안(50만원) 남짓 버는 중국의 농민공들이야 당연히 못 탈 것이다. 나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중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타는 기차가 바로 '녹색 기차'(绿皮火车)다. 보통 그냥 '화차'(火车; 기차라는 뜻. 고속철도는 기차라고 부르지 않는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기차 표면을 녹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고속철도(高铁)보다 3배 이상 느리고, 좀 더 불편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탄다. 과거와 달리 녹색 기차엔 외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고, 10대~20대 젊은 학생이거나, 농촌에 살고 있거나, 농촌 출신 대도시 이주노동자인 농민공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오늘날 중국에 사는 인간군상의 진면모를 보려면 대도시의 유명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보단 녹색 기차를 타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중국에서 고속철도 앞엔 G와 D가 붙고, 일반 기차는 K, T, Z가 붙는다. 일반적으로 G가 D보단 빠르고, Z가 T, K보단 빠르다. 가장 느린 건 K다. 그러니까 속도 순으로 따지면 G-D-T-Z-K라고 할 수 있다. T-Z-K 사이에 이렇게 급이 나눠지는 건 문제라기보단 운행 방식이나 거쳐가는 역들의 숫자 때문인 것 같다.


당시 항저우(杭州)에서 구이린(桂林)행 기차를 탄 시간은 16시간 남짓이었다. 그때 함께 여행했던 여자친구는 다시는 그렇게 오랫동안 기차를 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하룻밤을 기차 침대에서 자야하는데, 이때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사람들은 잠에서 잘 깨기 쉽기 때문이다. 밤 10시에 모든 열차칸을 소등하긴 하지만, 옆 칸에서 카드놀이를 하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있고, 한밤중에 작은 역에 서면 들락날락하는 승객들도 있어 소음이 꽤 있는 편이다. 게다가 여성들은 더 불안할 것이다. 워낙 낯선 이국 땅인데다, 인상이 험악한 사람들도 보이고, 밤에는 더더욱 심리적 두려움이 커지니까 말이다. 잠이 제대로 올리만무하다.


소등하기 전의 침대칸.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인상이 험악하고 씻지 않은 사람들은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들이며, 평생 힘들게 일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지, 우리보다 순수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여행이 익숙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비교적 낫고, 동행이 더 많다면 좀 더 나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가 공포가 없으니까 쉽게 할 수 있는 말에 불과하다.)


침대칸은 딱딱한 침대와 푹신한 침대가 있는데 이 역시 각격이 다르다. 하지만 푹신한 침대가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 정도로 푹신하진 않고, 딱딱한 침대가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충분히 잘만 하다.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푹신한 침대는 별도의 VIP침대칸에 있고 한 구역에 네 자리가 같이 있고, 구역마다 문도 달려 있다는 점이다. 만약 4명이 같이 여행을 한다면 푹신한 침대의 이점이 극대화된다. 게다가 3층으로 된 딱딱한 침대칸과 달리, 윗층 사람도 침대에 걸터 앉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동행이 1~2명이라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른다. 다른 중국인 승객과 같은 방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매너없는 사람이 걸리면 담배 냄새나 고약한 잠버릇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내 입장에선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체력의 부담이 조금 있긴 하지만 내내 편안하고 즐거웠다. 밤 기차의 적막한 시간, 대낮에 산과 들을 지나는 풍경이 참 좋았다. 다만 20시간이나 30시간은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게 17시간을 달려 구이린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수십여 명의 호객꾼들이었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내가 어눌한 중국어로 대답했을 때, 다들 깔깔대며 웃었다. 광시 사투리도, 정확한 보통화도 아닌 외국인의 중국어 발음이라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으로 기차를 탄 건 지난 봄인 2018년 5월. 베이징에서 칭하이성 시닝(西宁)까지 가는 여행에서였다. 5명의 인도네시아 화교 친구들과 3명의 한국인들이 함께 간 여행이었는데, 중국 서부 사막 한복판에 있는 시닝에 들렸다가, 칭하이성의 유명한 관광지들과 차카옌호에 들리고, 중국에서 가장 큰 칭하이 호수에서 하룻밤 자고,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시안(西安) 여행도 하고, 화산(华山)에도 올라갔다오는 무려 7일에 이르는 코스였다. 베이징에서 시닝까지 기차는 22시간에 달한다. 이미 장시간 기차 여행의 경험이 있는 난 별 걱정이 없었다. 낮 즈음 기차에 올라, 함께 이런저런 군것질을 먹고, 카드게임도 하고, 잡담도 하고, 저녁엔 맥주 한 캔씩 마시고 나니 어느덧 잘 시간이 다 됐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아침이 되고나니 어느덧 기차는 간쑤성의 황색 사막 위를 달리고 있었다.



2018년 5월 13일 새벽 5시 즈음. 샨시성(陕西省) 서쪽 사막 어디쯤을 달리고 있었을 때였다. 모든 칸에는 그 칸을 관리하는 승무원의 방이 있는데, 쭈그려 앉아 자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들은 이렇게 1년 내내 장시간 기차를 타면서 승객들을 안내하고, 열차 안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모두들 자고 있었고, 나는 일찍 깨어나 창밖을 내다봤다. 그때 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아 새벽녘의 어스름이 깔려있었고, 반경 10km 안팎으론 아무것도 없는 벌판을 달리는 기차 옆 도로엔 차 한 대가 보였다. 이 새벽에 어디를 가는 걸까. 이런 들판을 자동차 한 대로 달리는 건 얼마나 심심한 일일까.  



난생 처음 보는 서부 사막의 풍경을 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왔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영화를 보듯 시간 가는줄 모른다. 그러다보면 이내 도착 안내 방송이 들리고, 낯선 사막 위의 도시에 도착하는 것이 그때의 22시간짜리 기차 여행이었다.


물론 당시 나는 '22시간이 내 한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친구들과 함께이긴 해도 그렇게 긴 시간 운송수단을 타는 게 썩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나 7월 즈음이 되자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냐는듯 싹 잊어버리고 새로운 여행읠 떠날 준비를 했다. 베이징에서 윈난성 쿤밍에 다다르는 34시간 짜리 침대 기차였다. 이땐 중국에서 처음으로 혼자 타는 기차였는데, 7월 말에 시작해 9월 초까지 약 37일 동안 중국 서남부의 윈난성과 구이저우성, 쓰촨성 청두 여행을 떠난 거였다. 이 긴 여행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 계속 올리려 한다.


34시간 동안 혼자 뭘 할까. 다행히 기차 여행을 떠나기 전에 베이징에 놀러온 친구가 책을 건네줬었다. 연광석 선생님이 쓴 《사상의 분단》이라는 책이었는데, 이 두껍고 흥미진진한 책 한 권이 있으니 잠 자고 밥 먹은 시간을 제외한 약 24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그러니 장시간 녹색 기차를 탄다면 좋은 책 몇 권을 챙겨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이 책은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상당히 읽기 어려운 책이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친구들과 함께 이 책을 한 번 더 읽고, 서평을 써보려고 한다.) 



여기까진 꽤 낭만적이다. 하지만 녹색기차 실패담도 적지 않다. 한 번은 쿤밍에서 다리까지 기차를 탈 때였다. 아슬아슬하게 기차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택시 아저씨를 재촉해서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표를 끊을 때 뒤늦게 확인했다. 내가 표를 예매할 때 여권번호를 잘못 입력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매시에 잘못 입력하면 그 표는 미리 환불을 하고, 다시 예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출발 10분 전이 되었고, 예매 환불은 불가능했다. 진짜 돈 빠듯하게 아껴가면서 다니고 있었는데 눈물을 삼키며 기차를 포기했다. (그리곤 어떤 암표 장수에게 속아서 미등록 택시를 타고 납치됐는데...)


또 다른 힘들었던 기억은 쿤밍에서 청두로 가는 기차였다. 기차 타기 열흘 전쯤까지 나는 예매를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쿤밍에서 언제까지 머무를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유자적 살고 있었고, 쿤밍 같은 곳에서 청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생각에 방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쿤밍시내의 윈난대학 근방 도미토리에서 이미 열흘 정도 혼자 머무르고 있었다. 도미토리에서 같이 지내는 윈난대학 4학년 애들이 내게 너무 잘 해줬고, 윈난대학 앞의 아름다운 풍경과 북카페를 돌아다니는 게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쿤밍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표를 끊으려고 했는데, 침대칸은 이미 매진돼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열흘 전에 매진되다니... 이런 건 베이징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하긴, 쿤밍도 700만 명이 사는 대도시니까... 별 수 없이 녹색 기차 좌석을 예매했다. 다행이 좌석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입석이었으면 정말 더 큰일날 뻔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녹색기차를 18시간 동안 타고 간다는 건 거의 극기훈련에 가깝다는 걸 몰랐었다. 나는 침대 열차칸의 여유로움만 생각했지, 좌석칸에 사람들이 그렇게 바글바글하다는 걸 몰랐었다. 놀랍게도 좌석칸에는 빡빡하게 앉아 있는 승객들만이 아니라, 입석으로 타서 복도에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 화장실 앞에서 돗자리를 깐 일가족, 남의 자리 모서리에 걸터 앉는 아주머니, 좌석 옆에서 담배 피는 아저씨 등등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나는 이 험난한 여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 했어서 너무 놀랐고, 또 열차 안의 에어컨이 너무 쌔서 두 번 놀랐다.



내 맞은 편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뚝뚝했고, 말이 없었다. 여행보단 일하러 가는 사람들 같았다. 우리 사이엔 아주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는데, 이 테이블에도, 우리 발 아래에도 사람들의 짐으로 가득했다. 간신히 생수 한 통 올려놓을만한 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밤이 되자 모두들 쭈그려 앉아 잠에 들었다. 하지만 서서 가야 하는 사람들은 잠에 들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든 복도에 쭈그려 앉아 잠을 청하려 했다. 다행히 그럴 틈이 있다면 말이다. 한 아주머니는 다리가 불편해서 목발, 아니 쇠발을 짚고 가방 위에 쭈그려 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은 1센티 미터씩이라도 자리를 양보해서 그가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나는 18시간 동안 딱 한 번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화장실 앞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쭈그려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곳을 뚫고 지나가 화장실을 문을 열기란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다. 밤새 소변을 참고 또 참았다. 더구나 냉방이 너무 세서 덜덜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 고통을 생색내며 말하기 어려운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화장실 세면대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소수민족 일가족 때문이었다. 갓난아기와 6살 쯤 되는 여자아이, 그리고 엄마 아빠가 함께 탄 이 일가족은 나시족이 입는 복장을 하고 있었고, 간신히 아기를 달래가며 쭈그려 있었다. 내가 청두에서 내릴 때까지도 그 가족은 계속 있었는데, 아마도 그 기차의 종착역인 시닝까지 가려는 것 같았다. 나시족이 무슨 일로 시닝에 가지? 무슨 볼 일이 있나? 그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웃기는 의문이다. 갈 수도 있지, 알게 뭐니.


이튿날 청두로 다다를 때 얼마나 간절히 빌었는지 모른다.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부처님, 관우장비 장군님, 어서 빨리 도착하게 해주세요..."라고. 한데 기차는 드넓은 청두시 서쪽 외곽을 빙 돌아서 청두시 북쪽의 청두역으로 향하는 노선이었다. 바이두맵으로 보이는 그 빙 돌아가는 1시간 반의 여정이 여행 중 어느때보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이 기차 안의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기차 여정이 매우 익숙한 것 같았다. 익숙하게 쭈그려앉아 잠을 청했고, 복도에 서서 가는 사람들끼리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침대칸도 비싸서 사지 못하고, 좌석이나 입석을 타고 간다는 건 그들이 중국에서 가장 빈곤한 서부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짐작하게 한다. 녹색 기차가 마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기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중국 사회 문제에 대해 그렇게 많은 책이나 논문을 봤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책이나 신문 기사를 통해서만 감지하던 삶의 일부를 잠시 엿본 기분이었다.


한편 이때의 기억은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보던 중국의 상징적인 이미지들과도 대조해보게 한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도 도시의 골목이나 외곽으로 갈수록 도시 빈곤의 일부를 마주칠 수 있지만, 서부에 오면 더더욱 그 격차를 실감케 한다. 예컨대 2017년 기준 상하이의 1인당 GDP는 이미 5만4천 달러에 육박하고, 베이징도 5만 3천 달러다. 한국(약 3만 달러)보다 훨씬 높다. 상하이와 베이징의 집값은 서울보다 비싸기도 하고, 물가는 이제 거의 엇비슷해졌다. 반면 서부지역의 1인당 GDP는 1만불도 되지 않는다. 칭하이성은 7600달러에 불과하고, 윈난성도 1만 달러가 되지 않는다. 동부(도시)와 서부(농촌) 사이의 이런 격차는 기차 안에서도 고스란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대화의 주제 모든 것이 말이다.


얼마전 YIXI(一席)라는 중국 강연 영상 앱(app)에서 "녹색기차를 찍는 사람(拍绿皮火车的人)"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영상에서 사진작가 치엔하이펑(钱海峰)은 자신이 녹색 기차에 올라 사람들을 만나고 촬영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약 10년 동안 400여 번의 기차를 타고, 15만 킬로미터의 여행을 했다. 지구를 4바퀴 도는 길이라고 한다. 나는 그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명을 많이 받았다. 두 발로 대륙을 돌아다니며 미디어나 권력이 비추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사진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의 영상을 번역해서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소개하고 싶다.


钱海峰
钱海峰
钱海峰


3주 후면 나는 다시 기차를 탄다. 이번에는 베이징에서 출발해 광저우로 가는 기차다. 광저우에서 중국인 친구를 만난 후 선전으로 가고, 그리곤 다시 기차를 타고 홍콩으로 갈 예정이다. 실은 홍콩보다는 선전이 더 기대되고, 그보다는 기차 여행이 더 기대되기도 한다. 이젠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졌으니 옆 자리 사람과 이야기라도 나누면서 가볼까 한다. 사투리가 심하지만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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