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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Feb 05. 2019

이력서를 썼다. 하지만 아무곳에도 보내지 않았다.

귀국한 지 6일째, 설 연휴

한국에 온지 6일째다. 한국 오기 전엔 광둥성 여행을 했고, 홍콩에서 바로 귀국했다. 광저우와 선전, 홍콩에 대해선 곧 정리해보려 한다.


약 1년 만에 고향에 오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떠나기 전 한국에 대한 내 마음과 돌아온 후 내 마음은 분명 다르다. 아무리 모순 덩어리 사회일지언정 아시아라는 범주 안에서 아시아의 뭇 시민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기대 혹은 선망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의 근거가 K-pop 같은 껍데기 문화일 때도 있고, 허울뿐인 민주주의일 때도 있지만, 설령 그 껍데기 민주주의조차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동자운동의 분투 속에서 일궈진 것임을 돌아본다면, 이것은 결코 "별 것도 아닌 껍데기"라고만 말할 수 없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아시아의 여느 나라보다 역동적이고 활발하지 않은가.


오자마자 바삐 예정된 일정을 치렀다. 누구는 내게 "넌 어떻게 오자마자 기자회견이냐! 대단하다!"라고 했지만, 실은 나도 90% 정도는 의무감으로 한 것 뿐이다. 살다보면 삶에는 부득이 책임이란 게 생기고, 좋든 싫든 그것을 치뤄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곤 연락 온 분들과 만났고, 그밖에 다른 사람들에겐 굳이 내가 먼저 연락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1년 내내 술자릴 가져도 모자랄 것이다.


어제는 부모님과 역촌에 있는 동생 집엘 갔다. 우리 집은 딱히 명절 같은 걸 챙기지 않아서 그냥 모여서 식사를 하면 그게 명절의 끝이다. 고모나 큰어머니 가족이 모이시면 세배까지도 하지만 올핸 설 다음날 점심 때 잠시 모이기로 했다.


동생 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서울 변두리의 오래되고 값 싼 집을 사서 리모데링했는데 2층 집 같은 복층 구조인데다 부엌과 마당, 드레스룸이 정말 좋았다. 2평 짜리 비좁은 방에 살다가 갑자기 그런 크고 멋진 집에 가니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솔직히 부럽고, 질투심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다 동생이 열심히 일한 댓가이고, 난 이런 삶을 택했으니 내겐 질투할 자격같은 건 없다. 그래도 부러운 건 사실이다.


같이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하며 못 나누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술이 취하자 노래를 불렀다. 마침 동생 집에 노래방 마이크가 있었는데 마이크에서 반주가 나오면 스마트폰 앱의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간이 노래방 기계였다. "서른즈음에"와 어떤 설운도 노래였는데 발성은 좋지만 박자가 엉망이었다. 어쨌든 아빠는 신이 나 노랠 부르셨다. 신기했다. 노래 부르는 걸 처음 봤다.


그래, 돈을 벌어야 해. 나도 일단 돈을 벌어서 부모님에게 첫 월급도 갖다드리고, 책도 맘껏 사고, 하고싶은 일도 해야지.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빠는 부엌에서 못 다 한 술을 혼자 마시셨다. 나는 북에디터나 알바몬 같은 곳을 뒤적이며 일자릴 찾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란 걸 써야 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그런 걸 써봤다. 무려 5시간이 걸렸다. 쓰면서 가슴 한켠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난 할줄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은데 이력서에 쓰기엔 죄다 애매한 것들 뿐이었다. 고집스레 내가 택해온 삶이지만, 이력서란 걸 쓸 때, 이렇게 초라한 기분을 느낄지 몰랐다. 자기소개서는 금방 써버렸다. 솔직하지만, 다소 기만적이었다. 노동운동이나 정치-예술에 대한 고민과 실험, 여러번 잡지를 만들었던 경험이나 신문에 칼럼을 썼던 것들 등은 "다양한 경험"이란 카테고리 하나에 융해되었다.


인문사회과학 관련 책들을 출간하는 조금 큰 출판사들을 찾아봤다. 구인 정보가 그리 많진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저곳들에 이력서를 보낼 순서가 됐다. 한데 난 몇 번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끝내 아무곳에도 이력서를 보내지 않았다. 회사들은 날 붙여줄지 전혀 알 수 없고, 실은 안중에도 없는데 나 혼자 설레발치며 "붙으면 어쩌지" 걱정이 됐다. 내게 이 경로가 꼭 필요한 걸까? 그런데 돈은 어서 벌어야 하는데...


어떤 분은 내게 서울노동권익센터를 소개시켜주었다. 그곳이 원하는 건 몇 가지 업무 기술들과 노동운동 경력 같은 것들이었다. 항상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어서, 무리없이 저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망설이다가 보내지 않았다. 그럴 거면 노동조합에 들어가겠지... 월급을 많이 주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아닐 게다. 하지만 월급은 저 정도 벌고 싶고...


결국 난 5시간 동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텔레그램과 위챗을 확인하니 중국인 친구들로부터 산더미같은 새해 인사가 와 있었다. 너무도 거대한 꿈을 쉽게 쏟아내온 1년이었다. 책임질 수 있을까? 심플하게 살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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