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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Feb 27. 2019

스벅 바리스타는 왜 내 커피를 빼먹었나

오후에 안국역 근처에서 일이 있어서 미리 근처에 와서 이것저것 일을 하기로 했다. 안국역 근처에 카페가 많지만 그래도 스타벅스가 괜찮아보여서 들어왔다. 평소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한데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내 뒷번호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문한 커피를 받아가고 있는데도 내 커피는 나오지 않았다. 스타벅스 안국점은 3층 짜리 건물에 있는데 점원은 두 분 밖에 없었다. 그래선지 카페 안이 꽤 한삼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바쁘고 정신 없어 보였다. 물었다.


- 제 커피는 왜 안나오나요?

= 네? 몇 번이신데요?

- 32번이요.

= 32번이라고요?

- (영수증 보여주며) 네.

=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바리스타는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매장 내 주문 접수 동선이 아무리 시스템화되어 있어도 저렇게 정신 없이 바쁠 정도로 일하다보면 빼먹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카페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식당이나 음식점에서 점원이나 바리스타라 불리는 서비스 노동자들이 종종 실수를 할 때 우리는 쉽게 짜증을 부린다. 우리는 모두 바쁜 사람들이고, 1분 1초라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실제로 우리 역시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5초만 생각해보자. 이미 알고 있다시피 이런 실수들은 결코 점원들의 잘못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3명이 해야할 일을 2명으로 줄이고, 10명이 해야할 일을 8명으로 줄이려는 자본가, 사장, 혹은 실적 압박으로 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에 있는 매니져나 관리자의 잘못이지.


물론 저 바리스타는 커피도 타고 매장 관리도 하는 점장이나 매니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실적 고과 향상을 위해 스스로를 불가능한 수준까지 착취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또 그렇게 해서 스스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달리 방법이 없다. 숙달된 노동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숙달과 노동에 대한 전력투구는 산재나 근골격계질환, 스트레스 등 또 다른 상처를 남기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점원들이 회사 측에 3명이 할 일은 3명이 하도록, 4명이 할 일은 5명이 하도록 요구하는 것만이 답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요구할까? 그냥 요구해선 방법이 없다. 어쩌면 그 요구는 '모난 사람'만의 요구가 될 지도 모르고, 그는 갑자기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답은 점원들이 하나로 뭉쳐서 요구하거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밖에 없다. 각 지점들 간 경쟁을 타파하기 위해선 전국적으로 다 같이 가입해야 할 거다. 그래야 실적 압박과 경쟁의 사슬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같은 유수의 커피숍 체인망이 기록적인 성공을 이룬데에는 노동시간과 인건비를 둘러싼 "계급투쟁"이 숨어있다. 노조가 파업할 때만 계급투쟁이 아니라, 그 반대도 일종의 계급투쟁이다. 꽤 거친 표현이라 그렇지, 실은 우리는 항상 자본에 의한 계급투쟁, 자기 착취의 강제하라는 공격을 받으며 산다. 야근, 주말 출근, 포괄임금제, 노동강도의 심화... 이런 것들은 죄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이고, 계급투쟁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노동시간은 줄이고 고용은 늘려야 하지만, 기업들은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고용은 줄이면서, 노동강도는 높이려고 한다. 우리는 기업들의 이와 같은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한 이윤 획득을 쉽게 "성공적인 경영"이라고 부르고, 그 사이 벌어지는 여러 사소한 사건들, 무수한 갈등과 고통들에 대해 순전히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대면한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본측을 위한 소비자 불만을 접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어딘가의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수한 점원들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모든 사소한 문제들을 보편적인 범주에서 생각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노동운동가가 아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난 그저, 이런 실수들에 대해 어떤 짜증도 부리지 않고, "아니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라고 말하거나,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세 분이 하셔야 할 일인데 두 분만 계시니 실수 하실 수도 있죠. 왜 더 채용하지 않는 걸까요?"라고 말해주는 것 뿐이다. 이 정도만 해도 평등 사회를 위한 소시민적 미덕을 갖췄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매너'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물론 스타벅스가 커피도 맛있고 매장 분위기도 좋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엔**너스랑 카**네는 정말 별로다.) 할 일은 안 하고 잠시 끄적거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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