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안국역 근처에서 일이 있어서 미리 근처에 와서 이것저것 일을 하기로 했다. 안국역 근처에 카페가 많지만 그래도 스타벅스가 괜찮아보여서 들어왔다. 평소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한데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내 뒷번호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문한 커피를 받아가고 있는데도 내 커피는 나오지 않았다. 스타벅스 안국점은 3층 짜리 건물에 있는데 점원은 두 분 밖에 없었다. 그래선지 카페 안이 꽤 한삼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바쁘고 정신 없어 보였다. 물었다.
- 제 커피는 왜 안나오나요?
= 네? 몇 번이신데요?
- 32번이요.
= 32번이라고요?
- (영수증 보여주며) 네.
=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바리스타는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매장 내 주문 접수 동선이 아무리 시스템화되어 있어도 저렇게 정신 없이 바쁠 정도로 일하다보면 빼먹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카페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식당이나 음식점에서 점원이나 바리스타라 불리는 서비스 노동자들이 종종 실수를 할 때 우리는 쉽게 짜증을 부린다. 우리는 모두 바쁜 사람들이고, 1분 1초라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실제로 우리 역시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5초만 생각해보자. 이미 알고 있다시피 이런 실수들은 결코 점원들의 잘못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3명이 해야할 일을 2명으로 줄이고, 10명이 해야할 일을 8명으로 줄이려는 자본가, 사장, 혹은 실적 압박으로 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에 있는 매니져나 관리자의 잘못이지.
물론 저 바리스타는 커피도 타고 매장 관리도 하는 점장이나 매니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실적 고과 향상을 위해 스스로를 불가능한 수준까지 착취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또 그렇게 해서 스스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달리 방법이 없다. 숙달된 노동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숙달과 노동에 대한 전력투구는 산재나 근골격계질환, 스트레스 등 또 다른 상처를 남기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점원들이 회사 측에 3명이 할 일은 3명이 하도록, 4명이 할 일은 5명이 하도록 요구하는 것만이 답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요구할까? 그냥 요구해선 방법이 없다. 어쩌면 그 요구는 '모난 사람'만의 요구가 될 지도 모르고, 그는 갑자기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답은 점원들이 하나로 뭉쳐서 요구하거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밖에 없다. 각 지점들 간 경쟁을 타파하기 위해선 전국적으로 다 같이 가입해야 할 거다. 그래야 실적 압박과 경쟁의 사슬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같은 유수의 커피숍 체인망이 기록적인 성공을 이룬데에는 노동시간과 인건비를 둘러싼 "계급투쟁"이 숨어있다. 노조가 파업할 때만 계급투쟁이 아니라, 그 반대도 일종의 계급투쟁이다. 꽤 거친 표현이라 그렇지, 실은 우리는 항상 자본에 의한 계급투쟁, 자기 착취의 강제하라는 공격을 받으며 산다. 야근, 주말 출근, 포괄임금제, 노동강도의 심화... 이런 것들은 죄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이고, 계급투쟁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노동시간은 줄이고 고용은 늘려야 하지만, 기업들은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고용은 줄이면서, 노동강도는 높이려고 한다. 우리는 기업들의 이와 같은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한 이윤 획득을 쉽게 "성공적인 경영"이라고 부르고, 그 사이 벌어지는 여러 사소한 사건들, 무수한 갈등과 고통들에 대해 순전히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대면한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본측을 위한 소비자 불만을 접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어딘가의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수한 점원들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모든 사소한 문제들을 보편적인 범주에서 생각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노동운동가가 아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난 그저, 이런 실수들에 대해 어떤 짜증도 부리지 않고, "아니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라고 말하거나,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세 분이 하셔야 할 일인데 두 분만 계시니 실수 하실 수도 있죠. 왜 더 채용하지 않는 걸까요?"라고 말해주는 것 뿐이다. 이 정도만 해도 평등 사회를 위한 소시민적 미덕을 갖췄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매너'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물론 스타벅스가 커피도 맛있고 매장 분위기도 좋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엔**너스랑 카**네는 정말 별로다.) 할 일은 안 하고 잠시 끄적거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