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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Mar 01. 2019

아이폰 만드는 어느 여공의 이야기

"이곳은 사람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에요"

이 글은 뤼투의 저서《중국 신노동자의 미래》 1장 왕미려 이야기에 대한 발제문이다. 이 짧은 글에 대한 내 생각과 경험을 덧붙여 작성했다.


저자 뤼투(吕涂)가 왕메이리(王美丽)를 만난 건 2011년 10월, 폭스콘 충칭공단 안의 한 외주 식당에서 였다. 인터뷰에서 왕메이리는 뤼투에게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삶과 노동, 현재의 생활과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1994년생 왕메이리는 봉절현에 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 직업학교에 들어갔는데 위염을 앓아 1년 넘게 쉬어야 했다. 그리고 병이 낫자, 바로 충칭(重庆)의 폭스콘(Foxconn; 富士康) 공장에 취직했다.


인터뷰 당시 그녀는 이미 폭스콘에서 일한 지 반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왕메이리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토로한다. 임금이 지극히 적은데다 하루 10시간 넘게 매일 같이 쉬지 않고 일해야 하고, 800위안 짜리 물품 하나가 불량이 나거나 파손되면 노동자가 물어줘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데 공장에서 부품 불량이 나는 게 순전히 노동자의 잘못일까? 그렇지 않다. 기계가 오래되었거나, 그 자체의 결함으로도 제품 불량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물론 공정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한국의 경우 공정 과정에서의 '불량'에 따른 손해를 노동자에게 물리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사실 한국의 제조업 공장에서도 제품 불량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물리는 일은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현장 주임 왕메이리는 수당은 낮은데 반해 신경 쓸 일은 많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토로한다. 하급 관리직은 이처럼 이중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많다.


왕메이리가 공장에서 일한지 반년이 넘었다. 하지만 폭스콘 공장에선 수습기간이 9개월이기 때문에 2011년 당시 그녀의 월급은 고작 2000위안 남짓(한화로 약 34만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이 되더라도 한 달 내내 꼬박 쉬지 않고 일해야 3000위안(한화로 약 50만원)이라고 하니, 아무리 중국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저임금임에 분명하다. "그나마 괜찮은 공장"인 폭스콘이 이러하니 다른 곳은 어떨까 싶다. 게다가 식비와 기숙사비 까지 공제하면 생활비는 아주 빠듯할 거다. 다른 복지나 노동조건도 아주 열악한데, 기숙사는 4인실이나 8인실이고, 퇴사 절차도 쉽지 않아서 불만이 생기면 그냥 임금도 못 받고 떠나야 한다고 한다. 연차도 1년에 3일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나라면 이런 곳에서 절대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왕메이리는 폭스콘에서는 절대 계속 일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곳에서 오래 일해봤자 사람대접 못 받는다는 게 그녀의 확고한 생각이다. 2010년 봄, 저자 뤼투가 쑤저우(苏州)에서 조사한 '신노동자 정신문화 생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민공들의 일에 대한 생각은 불만으로 가득하다. "임금이 너무 적"고, 일에 대한 만족이 없으며, 근무 시간이 길어 "머리 쓸 필요가 없"고, 그러다보니 "모두 바보가 된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신노동자들이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족과 생존을 위해서"다. 실제로 노동이란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을 건사"하며, "학습과 자기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주지 않는다.


일이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일과 삶의 의의가 단절되거나 모순되면 큰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잦은 이직을 통해 현실의 고난에서 도피하려 한다. 뤼투의 조사 결과 신노동자들이 이직하는 주된 이유는 낮은 수입과 고된 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가 보기에 이런 이직은 신노동자 전반의 상황을 바꾸지 못하며, 출로도 아니다. 진정한 출로는 "노동 자체와 제도적 문화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다.


2010년 중국 광둥성 포산시 혼다자동차 파업에 가담했던 어느 여공에 따르면, 당시 그들은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공장 문화에 분노해 파업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중국의 파업 형태나 전개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은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노동조합이 사측과 교섭을 하고, 그 교섭이 여러 차례 열렸음에도 의견접근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기관인 노동위원회에 쟁의 조정 신청을 하고, 이에 따라 쟁의권(파업권)을 얻게 된다. 그러니 이런 절차를 밟으면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을 획득해 합법적인 파업을 하는 게 일반적인 경로다. 하지만 중국에서 '파업'은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 그러니 모든 파업이란 건 우발적이거나 제도 바깥에서 이뤄진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뜻을 모으고, 이 노동자들의 리더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앞장 서서 공장 라인을 멈춘 후, 공장 바깥으로 함께 행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표면적 이유가 '임금 체불' 같은 것일지라도 실제론 그 이면에는 '사랍 대접'의 문제가 숨겨져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본문 속 왕메이리와 량샤오화에게 일은 그 자체로 고통이었다. 파손에 대한 배상의 스트레스, 긴 노동시간과 피로의 누적, 상실감, 극심한 노동 강도 등 18살, 23살의 두 여성노동자들은 공장에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단 하나 남은 목적은 '돈' 뿐이다. 이렇게 일의 목적이 가족 생계로 바뀌면 자아의 존재 가치와 사회적 의의 추구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저자가 언급하는 신노동자들의 심리가 바로 '과객 심리'다. '과객 심리'는 신노동자, 즉 품팔이 집단에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문화적 상태다. 노동자들은 공장 내 기숙사가 매우 열억함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딘다. 그곳이 임시적 거처이며 곧 이직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불만은 있어도 쟁취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품팔이 집단이 응집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여러 사측이나 이익 집단에 의해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 저자 뤼투가 해석하는 개념은 그람시식의 문화 헤게모니론이다. 자본주의 문화에 대해 노동자들은 '저항하지 않음', '억압의 내면화', '억압의 대리인 되기'로 대응하는데, 이에 따라 오늘날 자본가들은 전면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정치 사회와 시민 사회는 "모두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


자본 확장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그 파괴성과 후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자본은 표면적으로 사회를 번영시키지만, 끊임 없이 더 좋은 이윤율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서유럽과 남한으로, 남한과 서유럽에서 다시 중국 연안으로, 중국 연안에서 동남아나 중국 서부로 옮겨다니면서 그 자리엔 실업과 폐허만 남게 된다. 요컨대 디트로이트의 수많은 실업자들과 텅 빈 공장, 구미와 반월, 구로공단의 지속되는 대량 실업의 행렬이 그녀가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일 거다. 이런 현실이 큰 걸림돌 없이 관철된다는 점으로 볼 때, 품팔이의 '과객 심리'는 무기력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본 헤게모니의 승리다. 즉, 품팔이의 과객 심리는 자본의 논리에 완벽하게 부합해 자본의 확장과 도주에 협조하게 되는 셈이다.


폭스콘의 높은 임금은 엄청난 노동시간과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가능했다. 중국 당국이나 사측이 얘기하듯, 혹은 원청인 애플이 이야기하듯 폭스콘이 정말 좋은 일자리라면 이직률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폭스콘의 비인간성은 이미 수차례 드러난 바 있다.


보통 회사는 노동자들이 서로의 임금을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관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 역시

이런 임금 기밀을 강요받은 적 있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할 때였는데, 관리자인 A과장은 라인의 노동자들이 서로 서로 임금 정보를 공유하는 걸 못하게 했다. 회사의 기밀이란 소리까지 했다. 사실 터무니 없는 얘기다.


뤼투 역시 이런 임금 기밀의 강요가 자본의 기만성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이는 사생활 보호라기보다는 착취를 은폐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임금 기밀'이란 원칙을 만들고, 노동자들을 흩어진 개체들로 분할해서 통치하고, 서로 연대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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