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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Jan 18. 2019

구이저우 산촌에 사는 노부부의 삶과 음악

아마추어 감독의 걸작, 영화《네 번의 봄》

얼마 전 一席(YIXI)에서 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一席는 TED나 한국의 세바시와 비슷한 교양강좌 어플리케이션이다. 그 남자는 이제 막 자신의 첫 번째 영화를 찍은 루칭이(陆庆屹)라는 사람으로 끌리는대로, 내키는대로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45살의 중년남성이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베테랑 북경떠돌이"로, 축구선수, 사진사, 술집 가수, 출판사 편집자, 광부 등 다양한 일을 했었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갑자기 무작정 부모님의 삶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시골 부모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네 번의 봄(四个春天)》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에 걸친 매년 '봄'에 촬영했고, 구이저우성 남부의 작은 마을 마웨이쩐(麻尾镇)을 배경으로 한다. 그의 부모는 평생에 걸쳐 사진을 많이 찍었고, 그 역시 이런 부모 덕에 사진 찍는 일이 습관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마웨이의 고향 집에 가서 카메라를 통해 부모의 일상을 담는 일이 부모에겐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웃으며 "너 우리 찍어서 뭐 할 건데?"라고 물었을 뿐이라고.



마웨이는 등록인구는 2만1천 명이지만, 실제 상주인구는 5천 명 남짓인 작은 마을이다. 감독에 따르면 포의족, 장족, 묘족, 한족이 어울려 사는 산촌인데, 좁은 길 하나가 전부인 정말 작은 협곡 마을이라고 한다. 민족은 달라도, 하나같이 '산가(山歌)'부르는 걸 아주 좋아하고, 음악을 생활화하고 있단다. 바이두 사전에 따르면 '산가'란 "논밭에서 일하거나, 감정을 토로할 때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노래 내용은 광범위 하고, 구조는 짧고 단순하며, 곡조는 경쾌하다. 소박한 감정을 갖고, 세고 높게 부르는데 템포는 자유롭다"고 한다. 영화 내내 이 산가를 들을 수 있다.


루씨 가족은 매년 춘제(중국의 설 연휴)마다 고향 집에서 모인다. 영화는 매해 춘제 즈음 고향집에 내려가는 순간 시작해 성묘를 치르고 다시 고향을 떠나기 까지를 하나의 막으로 삼아, 총 4개의 막으로 구성돼 있다. 비록 1년 중의 짧은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4년에 걸친 이 시간을 통해 두 노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루칭이의 부모는 정말 흥미로운 노인들이다. 감독은 농담처럼 말하길, "어머니는 산가계에서는 명성이 있"을 정도로 산가 선수다. 한데 허무맹랑한 농담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쉴 새 없이 다양한 노래를 부른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삶의 유한함이나 추억을 떠올릴 때, 시도 때도 없이 노랠 부른다. 가히 구이저우의 주크박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는 본래 과학 선생님이었지만 나중엔 영어를 가르쳤던 사람이다. 그는 98년에 이미 교직에서 은퇴했지만 세상 오만가지 일을 정정하게 해낸다. 20여 개의 전통악기를 다룰 줄 알고, 양잠을 하며, 온갖 물건을 만들고, 심지어 컴퓨터로 영상 편집을 배워 뮤직비디오까지 만든다. 마웨이쩐의 '예술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영화다. 두 캐릭터의 힘이 강해 시종일관 유쾌한 감정을 갖고 보다가도, 그 유쾌함이 깊은 지혜와 슬픔을 뒤로 한 힘이란 게 느껴진다. 영화 보는 내내 웃다가, 맞닥뜨리는 상황의 슬픔 때문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영화 보면서 웬만하면 눈물 안 흘리는데, 두 노인이 마주하는 삶의 무게가 슬프고도 아름답단 생각이 들었다.



《네 번의 봄》의 두 번째 매력은 '음악'이다. 어머니는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른다. 추억에 대한 노래, 인생의 유한함, 이별, 산촌에서의 삶, 사랑, 가족 등등. 인생의 모든 것을 노래하려는 것만 같다. 어머니의 찰진 노랫가락에 주름진 표정이 더 해져 소리만이 아니라 이미지까지 장악한다. 아버지 역시 이따금 노래를 부른다. 그는 1954년에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옛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 시절 꿈꿨던 인민 혁명이라는 거대한 꿈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흘러간 옛 노래지만, 그 노랠 부를 때만큼은 그때의 꿈을 상기하는 듯 하다.


대장정을 경과하며 중국 통일과 혁명을 이룬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의 인민들은 '민'이 앞장 서고 주인인 나라를 꿈꿨고, 그 여정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문화대혁명의 비극과 개혁개방 이후의 모순이 겹쳐진 오늘, 그것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부르는 옛 노래 속에서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국에서 도시 곳곳에 있는 공원에 가면 중년 이상의 사람들, 주로 노인들이 모여 함께 합창 연습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나는 쿤밍 취호공원에서, 청두의 인민공원에서, 구이양 갑루 근처의 작은 공원에서 사람들이 합창하는 걸 봤었다. 그 노래들은 대개 옛 혁명가요다. 그 모습을 목격했을 땐 그들이 왜 그 노래들을 여전히 함께 부르려는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데 이 영화 속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구이저우' 그자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결정적 이유도 이 영화가 구이저우의 작은 산촌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지난해 여름 갔던 구이저우 작은 마을의 정취를 다시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싱이 샤나회이촌에 갔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이 마을은 카메라를 아무데나 갖다놔도 그림이겠구나. 아무데나 놓고 찍어도 영화가 되겠네."


《네 번의 봄》도 그렇다. 영화를 배우지 않은 아마추어 감독이 찍어 때론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도 하고, 포커스가 나가는 쇼트도 빈번하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결점들은 단점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노부부가 산에 오를 때의 많은 장면들, 마을 거리에서 불꽃놀이를 할 때의 장면들은 특히 아름답다. 영화 보는 내내 구이저우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럴 것 같지 않다. EBS에서 주최하는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나, 부산과 전주 등 국제영화제에서 특별히 상영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해외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내 개봉하는 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부모님이 생각났다. 노인이 되면 사람이 더 아이같아진다는 얘기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부모님을 볼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나 부모님의 삶을 영화로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가능할까? 어떤 이야기로 보일까? 모두의 이야기가 그렇듯, 내가 아는 우리 부모님의 삶은 참 흥미로운 모던드라마인데... 아래 영상은 이 영화의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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