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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Jun 13. 2020

정의당이 지닌 모순이 ‘1호 법안 논란’에서 드러났다

어제 정의당 혁신위원회 오프라인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장혜영 의원 등 대부분 처음 뵙는 분들이었고,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출범과 함께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혁신안’ 도출의 과정을 크게 넷으로 나누고,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한 의견 수렴’, ‘소위 구성과 토론을 통해 초안 작성’, ‘최종적인 혁신안 작성’, ‘안에 대한 의견 청취 및 대의원대회’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긴 시간이었지만 충분치는 못했다. 그만큼 다뤄야 할 문제와 내용이 산적하기 때문이다. 혁신 과제로는 당의 비전을 새롭게 수립하고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 정책 역량을 높이기 위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지역운동을 강화하고 지역위원회 강화함으로써 지역 선거 전략을 혁신해야 한다는 점, 원내-원외의 연계를 강화하고, 원내 중심성에서 탈피해 원외 전략에 대한 고민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 지방의회 의원단의 활동과 지역 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 전국위원회 및 대의원대회 등 의결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는 점, 당원 교육 혁신과 강화, 당원 민주주의의 확대와 소통 채널 혁신 등 여러 주제의 토론이 이뤄졌다. 다음주부터는 어제 워크숍에서 제기된 혁신 의제와 쟁점을 분류한 후, 이를 바탕으로 3~4개의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소위원회 내에서 분야별 초안을 작성해나갈 예정이다. 각 소위원회는 쟁점들에 대해 깊이 토론하고, 혁신안 초안은 혁신위원회 전체가 모였을 때 성안하기로 했고, 초안에 대한 당원과 전문가 의견을 청취한 뒤, 이 혁신안을 8월 16일 전국위원회에 보고하고, 8월 말 대의원대회에서 최종 통과시키는 과정이다.


오전 10시부터 점심 전까지 혁신위 운용에 대한 논의와 지금까지 수렴된 의견들을 공유하고, 오후 5시까지는 조직의 상황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문제의식을 나누고, 그에 대해 각각이 갖고 있는 대안을 이야기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나온 이야기들의 6~70퍼센트는 공감됐고, 일부는 고민이 남았으며, 일부는 전혀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다.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을 정정하기도 하고, 나아가 더 나은 대안을 도출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당내에서 “혁신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거나, “혁신위원들이 시끌벅쩍하게 문제 제기를 해줘야 논의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이 있다. 어제 워크숍은 이런 목소리를 인정하여, 쟁점을 꺼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이뤄졌다. 혁신위원들이 각자 갖고있는 문제의식과 대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혁신위원회는 시끄러워야 하고, 각각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전국 곳곳에 퍼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지역과 부문에서부터 중앙, 의원단까지 혁신의 방향을 제기하고 설파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보름남짓은 상당히 그 역할이 모호했는데, 추가 선임까지 끝난 앞으로는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


물론 정의당이라는 조직 내부를 둘러보면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정의당의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평가부터, ‘혁신위원회가 뭘 바꿀 수 있겠냐’는 냉소, 선장이 없는 난파선처럼 제각각 흘러가는 모습, 43억 원이라는 막대한 빚까지 어느 하나 낙관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어제 정의당 내의 주요한 사건은 혁신위원회 워크숍이 아니었다. 정의당 의원단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정했다고 밝히면서 당내에서 여러 비판이 일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나쁜 법안이거나, 부차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 정세에서 보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을 위한 활동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한데 문제는 정의당 지도부가 이미 “차별금지법을 1호 법안으로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던데 있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추진특별위원회 김조광수 위원장은 의원단이 자신에게 아무런 언급도 해주지 않고 갑자기 1호 법안을 바꿔버린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차별금지법 사이의 우위를 구분하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1호 법안’을 바꾼 것에 대해 자신에게 아무 양해나 설명도 없었다는 때문에 분노한 것이다.


아마도 1호 법안이 바뀐 것은 법안을 실제 통과시키기 위한 디테일한 준비 과정(가령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모은다던지), 정세에 대한 판단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정작 스스로는 전혀 주도할 생각도 없으면서, 정의당이 진보적 의제를 주도해 상정한 법안을 결코 흔쾌하게 동의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정당이 의회 내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민주당의 ‘빅텐트’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맥락이나 과정,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의원단이 자기들 맘대로 그렇게 결정한 것은 매우 문제가 크다. 나는 이 문제가 단지 ‘관심 여부’로 판단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정의당의 의원단이나 중앙이 원외의 역할과 원내-원외 시너지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일에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6개의 의원실들은 각각의 생존만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고, 의정 활동에 대해서만 긴장감을 갖고 있을 뿐, 원외 영역이 훨씬 큰 정의당 전체의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는 게 이번에 명백하게 드러났다.


입법 과정도 운동 전술이다. 원외 조직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런 원내 중심성은 6석 소수정당이 ‘주제파악도 못하는’ 조야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원외를 하나의 날개로 여기는 게 아니라, 박수부대 쯤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정의당에 150개의 지역위원회가 있다고 치자. 이 중 고양갑 지역위원회를 제외하면 나머지 149개 99.3%의 지역위원회는 모두 원외 조직이다. 이 원외 조직들은 대체 왜 존재하는가? 의원단이 ‘입법 투쟁’을 벌인다면 이 입법 투쟁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는 지역운동 전술이 나와야 하지 않나? 국회의원 6명 짜리 정당, 입법 발의를 위한 10명을 모으기도 어려운 악조건에서 초보 정치인 5명으로 이뤄진 의원단이 원내 전략만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얘긴가? 국회 안에서 대가리 박는다고 성과를 낼 수 있나? 그 사이 99.3%의 원외 조직들은 의원단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멀뚱히 지켜보고 있으면 되는 걸까?


결코 없다. 정의당 국회의원 당선자 6인은 지난 5월 26일 “불평등·양극화 심화 저지 및 사회공공성 강화, 기후위기의 정의로운 극복, 차별금지 및 젠더 폭력 근절”을 3대 핵심과제로 선정하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전국민고용보험제 도입, 그린뉴딜 추진 특별법, 차별금지법, 비동의 강간죄 개정 등을 5대 우선 법안으로 정했다. 이 5개의 법안에 1위부터 5위까지의 순서를 매기는 것은 무용한 일이지만, 전술을 재편한다고 했을 때 원외 전술을 어떻게 구사할지, 사회운동적 기획은 무엇인지, 중앙당의 역할은 무엇이고 지역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즉, 1호 법안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바꾼다고 해도, 이를 위한 원외 전략은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지난 ‘1호 법안’ 약속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인권운동의 전선은 어떻게 참여 및 조직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에는 어떻게 참여할지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고, 나아가 본부 및 부문위원회들과 원할하게 소통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의원단과 당대표는 이런 결과에 대해 피상적인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 왜 자꾸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 원내 중심성의 폐해가 정의당이라는 5만 조직을 어떻게 망가뜨려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의당이 혁신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20~30대 초선 의원이라고 해도 빗겨가지 않는다. 심상정식의 리더쉽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은 쉽지만, 그걸 실제로 다른 관점으로 시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관점이 바뀌지 않고, 사회운동/원외/지역을 중심에 놓지 못하면 무용하다. 국회의원 한 명이 당의 모든 걸 챙길 순 없지만, 관점 자체를 당 전체의 발전과 사회운동의 발전, 자신이 속한 국회 부문과 관련 사회운동의 연결 속에서 움직이고 사고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의원들이 제발 “나도 심상정 같은 정치인이 되어야지”라거나, “초능력자가 되어야지”가 아니라, 조직과 사회운동을 중심에 놓고 사고했으면 좋겠다. 심상정에게는 심상정의 역사가 있고, 우리는 초능력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즉, 심상정 같은 또 다른 막강 리더가 필요한 게 아니라, 더 조직적이고 민주적이며, 사회운동적으로 소통하고 움직이는 리더가 필요하다.


불행 속에도 다행인 사실이 하나 있다면, 어제 논란을 통해 정의당 당원들은 정의당의 총체적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의원단은 임기 시작과 함께 혁신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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