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놀란 라이언’ 벌랜더의 위대한 도전

by 박민규

저스틴 벌랜더 ⓒ 위키미디어 커먼즈


모든 스포츠 선수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존 경쟁은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라는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2019년 대한체육회가 진행한 은퇴 운동선수 실태조사에는 선수 경력이 3년 이상인 20세 이상 39세 이하 은퇴 선수들의 평균 은퇴 연령이 23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K리그 선수들 또한 평균 활동 기간은 3.6년으로 그 중 국내 선수들은 4.1년에 불과하다. 한편 야구는 비교적 선수 수명이 길다고 알려져 있는데 2015년 조사에 의하면 KBO리그 선수들은 평균 8.3년에 이른다.


그렇다면 북미 프로 스포츠는 어떨까. 가장 격렬한 종목 중 하나인 미식축구의 최상위 프로리그인 NFL 선수들은 평균 3.3년에 그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격의 돌격대장 역할을 하는 러닝백은 2.57년으로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 밖에 NBA와 NHL 역시 4.5년으로 평균 선수 활동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활동 기간 또한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 2007년 콜로라도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 리차드 로저스는 1902년부터 1993년 사이 투수를 제외한 나머지 포지션의 선수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야수들의 평균 선수 활동 기간은 5.6년이었으며 대부분 27세에서 29세 사이에 은퇴를 선택했다. 이는 야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선수 생활을 더 오래 유지할 수는 있으나 최상위 프로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투수의 경우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저명한 트레이너이자 근력 및 컨디셔닝 관리 전문가인 리치 하디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발표된 바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활동 기간은 야수보다 5.37년이 긴 10.97년이었으며 평균 은퇴 연령은 31.74세였다. 해당 연구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활동 기간과 가장 연관이 깊은 변인은 바로 25세 이전에 투구한 이닝수였다.


그렇다고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생존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20시즌부터 25인에서 26인으로 확대된 메이저리그 구단의 로스터는 투수의 최대 정원이 13명으로 제한된다. 때문에 루키 리그, 상위-하위 싱글 A(30인), 더블 A(28인)와 트리플 A(28인)를 거쳐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 그 안에서도 26인 로스터의 13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치열함은 절대 야수의 그것 못지않다.


치열한 경쟁 끝에 현재의 위치에 오른 저스틴 벌랜더에게 올해는 메이저리그 17번째 시즌이었다. 그리고 만 39세 시즌이자 토미존 수술 복귀 후 첫 시즌이기도 했다. 2017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 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벌랜더는 2019시즌 300탈삼진 달성과 함께 개인 통산 두 번째 사이영상을 차지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때문에 과연 벌랜더가 수술 복귀 후 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올 시즌 개막 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토미존 수술을 받고 돌아온 만 39세 투수’라는 문구가 주는 부담감은 벌랜더에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2020시즌은 벌랜더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해 3월, 벌랜더는 오른쪽 서혜부 수술을 받았다. 회복 기간이 6주 정도 소요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개막전 일정에 맞춰 합류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이후 상황은 벌랜더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듯 했다. 전세계에 유행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메이저리그 개막 일정이 늦춰졌고 이로 인해 벌랜더는 충분한 회복 기간을 가지고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산 12번째 개막전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벌랜더에게 또 다른 고난이 닥치고 말았다.


2020시즌 개막전 당시 벌랜더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그의 이름에 걸맞는 투구를 펼쳤다. 6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잡으며 2실점으로 틀어막고 통산 226번째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경기 종료 후 오른쪽 팔꿈치 척골 측부 인대 손상이 발견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벌랜더는 수술을 피하기 위해 재활을 선택했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패스트볼 구속은 89, 90mph에 불과했고 팔꿈치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해졌다. 투수의 경우 토미존 수술을 받는다면 약 18개월 가량의 재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야구선수로는 황혼기에 접어드는 벌랜더로서는 복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ESPN의 제프 파산에 따르면 벌랜더는 특히 아내 케이트 업튼 그리고 3살된 딸 제네비브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했기 때문에 은퇴를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시점에서 벌랜더는 이미 명예의 전당에 걸맞는 커리어를 가진 투수였다. 2017시즌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우승에 대한 긴 숙원을 푼 벌랜더는 신인왕과 사이영상 그리고 MVP를 모두 석권한 역대 두 명 중 한 명이자 통산 200승과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역대 18명 중 한 명이었다(현재는 맥스 슈어저를 포함해 19명). 이대로 은퇴 선언을 한다 해도 박수 받아 마땅한 벌랜더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SNS에 토미존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는 소식을 알리며 복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4월 10일, 벌랜더는 마침내 빅리그 마운드에 복귀했다. 지난 2020년 10월 1일(한국시간), 토미존 수술을 받은 지 18개월 만이었다. 첫 8경기에서 6승 평균자책점 1.22와 함께 탈삼진 49개를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벌랜더는 5월 28일 시애틀을 상대로 4피홈런 6실점을 허용하는 부침이 있었지만 이후 19경기에서 4자책점 이상 내준 경기는 6월 19일 화이트삭스전(3.2이닝 7실점 4자책) 뿐으로 휴스턴의 에이스로서 압도적이면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벌랜더는 불혹을 앞둔 투수로서 올 시즌 손에 꼽을 만한 활약을 펼쳤다. 8월말에 당한 종아리 부상으로 그의 상징과도 같은 200이닝-200탈삼진 달성에는 실패했지만(175이닝-185탈삼진) 18승 평균자책점 1.75의 성적을 거두고 통산 세 번째 사이영상과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벌랜더의 조정 평균자책점은 220. 라이브볼 시대 이후 벌랜더보다 더 높은 조정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35세 이상 선발투수는 2005시즌 로저 클레멘스(226)가 유일하다.


35세 이상 선발투수 단일시즌 조정 평균자책점

226 : 2005 로저 클레멘스(42세)

220 : 2022 저스틴 벌랜더(39세)

198 : 1943 스퍼드 챈들러(35세)

195 : 2002 랜디 존슨(38세)

190 : 1928 대지 밴스(37세)


이처럼 벌랜더가 성공적인 복귀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패스트볼이 큰 역할을 했다. 올 시즌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5mph로 2018시즌(95mph) 이후 제일 빠른 공을 던진 벌랜더가 들고 나온 전략은 ‘하이 패스트볼’. 올 시즌 벌랜더가 스트라이크 존 높은 코스로 던진 포심 패스트볼은 32.8%로 2010시즌(34.6%) 이후 가장 많았다. 타자들은 벌랜더의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을 상대로 타율 .144 장타율 .200에 그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벌랜더의 포심 패스트볼은 2008시즌 PITCH f/x 도입 이후 가장 낮은 피안타율(.194)과 피장타율(.285), 가장 적은 피홈런(6)을 허용한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비록 탈삼진(50)과 헛스윙 비율(18.1%)은 2019시즌(104탈삼진, 31.0%)에 비해 눈에 띄게 감소했지만 올 시즌 포심 득점 가치 1위에 오른 투수는 다름 아닌 -24를 기록한 벌랜더였다.


‘하이 패스트볼’ 전략이 성공하자 떨어지는 변화구가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 올 시즌 벌랜더의 슬라이더는 여전한 날카로움을 과시했다. 피안타율은 .188에 불과했고 헛스윙 비율 34.6%와 탈삼진 비율 39.6%는 2018시즌(39.1%/40.0%)과 2019시즌(39.9%/41.1%)과 비교해도 그리 뒤처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 벌랜더의 ‘높낮이 피칭’을 완성한 구종은 바로 커브였다. 올 시즌 피안타율이 .158로 메이저리그에서 11번째(100타석 이상)로 낮았던 벌랜더의 커브는 특히 낮은 코스에 구사되었을 때 더 큰 위력을 보였다. 올 시즌 벌랜더가 커브를 낮은 코스로 던졌을 때 내준 피안타는 단 4개에 불과했다(피안타율 .087, 피장타율 .109).


올 시즌 벌랜더의 구위는 팔꿈치 수술을 받고 돌아온 만 39세 투수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존 로겔의 자료에 따르면 토미존 수술이 처음 이루어진 1974년 이후 해당 수술을 받은 만 36세 이상 투수는 벌랜더를 포함해 모두 13명. 그 중 수술 전후의 구속 정보가 확인 가능한 투수는 7명으로 복귀 시즌 혹은 그 이듬해 시즌에 구속이 증가한 투수는 벌랜더와 빌리 와그너 뿐이다. 이는 비록 적은 샘플이긴 하지만 벌랜더와 복귀 이듬해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94.7mph에서 96.2mph로 증가한 와그너가 특별한 경우일 뿐 30대 중반의 베테랑 투수가 토미존 수술을 받고 구속이 증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벌랜더는 올 시즌 활약을 통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며 뉴욕 메츠로 둥지를 옮겼다. 스티브 코헨 구단주는 벌랜더에게 2년 8666만 달러를 안겨주며 메츠의 선발 마운드를 이끌어줄 것을 주문했다. 이로써 벌랜더는 9년 만에 팀 동료로 재회한 맥스 슈어저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가장 많은 연봉을 받게 되었다. 사이영상 수상 3회에 빛나는 두 투수가 같은 로테이션에 존재한다는 것은 높은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내년 시즌 벌랜더가 만 40세, 슈어저가 만 38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투수의 어깨와 팔꿈치는 분필과도 같다. 때문에 많은 공을 던질수록 어깨와 팔꿈치에는 그에 비례하는 피로가 누적된다. 하지만 이 이론은 비단 어깨와 팔꿈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투수의 투구폼은 인체역학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특히 어깨와 팔꿈치가 더 많은 부담을 받을 뿐 투구 동작은 그 자체로 전신에 피로를 누적하며 이는 곧 높은 부상 위험성을 내포한다. 더불어 프로 리그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공을 던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는데 두 투수의 통산 누적 이닝은 무려 5845이닝에 달한다(벌랜더 3163이닝, 슈어저 2682이닝).


긍정적인 점은 지난 2년간 벌랜더에게 충분한 휴식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의 강도 높은 움직임으로 누적된 피로를 해소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방법은 바로 휴식이다. 하물며 벌랜더는 비록 부상과 수술로 인해 경기에 등판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지만 단 한 경기만 등판했던 2020시즌과 2021시즌은 어깨와 팔꿈치를 비롯한 전신을 충분히 쉬게 할 수 있는 안식년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987시즌 34경기에 등판한 놀란 라이언은 8승 16패에 그쳤다. 형편없는 득점 지원과 저지력 없는 불펜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라이언은 평균자책점 2.70으로 해당 부문 2위인 마이크 던(3.03)과 큰 차이를 보이며 1위에 올랐고 더불어 270탈삼진을 기록하며 1979시즌(223탈삼진) 이후 8년 만에 탈삼진 타이틀을 되찾았다. 이렇게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낸 라이언은 당시 만 40세였다. 이후 라이언은 46세까지 6시즌을 더 뛰었다.


벌랜더는 지난 메츠 입단 기자 회견에서 젊었던 시절을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였다고 회상했다. 젊었던 시절에는 배짱과 재능으로 승부했지만 지금은 노련함과 성숙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것은 40세 시즌을 앞둔 벌랜더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과연 벌랜더는 40대의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우리 시대의 놀란 라이언’을 원하는 상황에서 벌랜더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2023시즌이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조정 평균자책점 140 이상 40대 투수 시즌(라이브볼 시대 이후)

1927 피트 알렉산더(40세) : 2.52 / 160

1942 테드 라이언스(41세) : 2.10 / 171

1944 자니 니글링(40세) : 2.32 / 141

1987 놀란 라이언(40세) : 2.76 / 142

1991 놀란 라이언(44세) : 2.91 / 140

1995 데니스 마르티네스(41세) : 3.08 / 152

2004 로저 클레멘스(41세) : 2.98 / 145

2004 랜디 존슨(40세) : 2.60 / 176

2005 로저 클레멘스(42세) : 1.87 / 226

2007 존 스몰츠(40세) : 3.11 / 140

2013 바톨로 콜론(40세) : 2.65 / 147


기록 참조 : 베이스볼 레퍼런스, 팬그래프, 베이스볼 서번트, 스포트랙

기사 참조 : 디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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