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의 역사' MLB 파업과 직장 폐쇄 연대기 (2)

by 박민규

1980년대 들어 구단주들과 선수 노조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1994년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구단주들과 선수 노조의 갈등은 야구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는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었다.


2022년 3월 현재, 메이저리그는 다시 한 번 정규 시즌이 축소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야구를 기다리는 팬들은 또 다시 실망하고 있다. 과연 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과거의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85년 파업

파업을 통해 원하는 바를 선수 노조와는 달리 구단주들은 과거에 비해 그 영향력이 작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선수 노조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수 없었던 구단주들은 새로운 CBA 협상에 앞서 상황을 바꿔보고자 했다. 1974년부터 1983년까지 아메리칸리그 회장을 역임했던 리 맥페일을 협상 대표자로 내세운 구단주들은 현재 메이저리그 팀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선수 노조에 대한 구단주들의 출연금을 줄이고 페이롤이 리그 평균 이상인 팀은 FA 선수와 계약하는 것을 금지하며 연봉 조정 금액에 대한 상한선을 도입해야 한다는 세 가지 협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구단주들의 주장은 오히려 자충수로 작용했다. 메이저리그는 1983년 4월, 여러 방송사와 12억 달러 규모의 TV 중계권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CBA의 규칙에 따라 구단주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재무 자료를 공개해야 했는데 선수 노조가 이를 검토하기 위해 당시 스탠포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던 로저 놀을 고용했던 것이다. 재무 자료를 살펴본 놀 교수는 메이저리그 팀들의 손실이 구단주 측의 주장 만큼 크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선수 노조는 구단주들이 제시한 세 가지 협상안 중 출연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에 동의했지만 나머지 두 방안은 양보할 수 없었다. 선수들은 구단주들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1985년 8월 파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파업은 8월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짧게 끝나면서 정규 시즌에 영향은 미치지 않았다.


1990년 직장 폐쇄

비즈니스 방식으로 치뤄진 1984년 LA 올림픽은 역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LA 올림픽이 2억 달러의 흑자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조직 위원장이었던 피터 유베로스의 역할이 컸다. 1984년 3월 4일, 쿤의 후임으로 선출된 유베로스는 LA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그 해 10월 2일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에 취임했다. 그러나 유베로스의 취임 기간 동안 구단주들과 선수 노조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1989년 3월까지 커미셔너로서 활동한 유베로스는 심판들의 파업을 중재하여 포스트시즌을 진행하고 ESPN과 4억 달러, CBS와 18억 달러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으며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마약 사용 금지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여러 공로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바로 FA 제도를 제한하고 선수들의 연봉을 낮추기 위해 구단주들과 담합을 모의한 것이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의 이적과 2년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1985시즌 후 62명의 선수가 FA 자격을 획득했지만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는 4명에 불과했다. 유베로스와 구단주들의 담합은 1987년 안드레 도슨의 사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도슨은 1986시즌 후 FA 자격을 획득했다. 그러나 도슨에게 계약 제의를 하는 팀은 원 소속팀이었던 몬트리올 뿐이었다. 스프링 트레이닝까지 팀을 찾지 못한 도슨은 결국 1년 전 연봉이었던 104만 7000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70만 달러에 컵스와 계약했다. 이후 선수 노조는 도슨의 사례를 증거로 들어 구단주들을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조정 위원회가 선수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로 인해 구단주들은 4억 340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입게 되면서 양측의 긴장 관계는 더욱 심화되었다.


1990년 CBA 협상을 앞두고 구단주들과 선수 노조는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담합의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구단주들은 각 팀에 다르게 적용되는 샐러리캡을 도입하고 성과급 제도로 연봉 조정을 대신하고자 했다. 당연히 선수 노조는 구단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단주들의 요구에 대해 당시 선수 노조의 전무 이사였던 도널드 페어는 구단주들의 제안이 야구 시장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1990년 2월 16일,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함과 동시에 조정 위원회의 판결이 합당하지 않다고 여긴 구단주들은 직장 폐쇄를 결의했다. 3월 중순까지 계속된 직장 폐쇄로 인해 스프링 트레이닝은 개막조차 하지 못했다. 이에 선수 노조 또한 구단주들의 요구 사항이 CBA 공식 규정으로 제정되는 것이 두려워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1989년 9월,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자리에 오른 페이 빈센트는 오랜 친구이자 전임 커미셔너였던 바트 지아마티와 같이 원칙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한 인물이었다. 구단주들의 담합이 현 상황의 문제점이라 판단한 빈센트는 직장 폐쇄로 정규 시즌이 취소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빈센트는 선수 노조로부터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내어 직장 폐쇄를 마무리했다.


새로운 합의한 CBA에서는 양측의 명암이 갈렸다. 선수 노조는 최저 연봉과 구단주들의 출연금을 각각 10만 달러와 5500만 달러로 인상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구단주들은 지역 중계 수입의 48%를 선수 연봉과 연금으로 지불하는 것을 제안하며 샐러리캡과 성과급 제도를 CBA 규정에 추가하고자 했지만 수익 분배 시스템(Revenue Sharing)을 위한 위원회 구성이라는 작은 소득만을 얻는데 그쳤다.


1994-1995년 파업

1994년 8월 13일에 시작되어 이듬해 4월 1일에 종료된 선수 노조의 파업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선수 노조의 1994년 파업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진행됐던 월드시리즈가 취소되었을 만큼 이례적인 것이었다.


1990년 11월, 구단주들은 3년에 걸친 FA 담합 사건에 대해 선수 노조에 2억 80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배상했다. 또한 1976년 FA 제도가 탄생한 이후 선수들의 연봉이 치솟는 속도는 구단주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1985년 2억 6500만 달러와 1019만 달러였던 리그 전체 페이롤과 팀당 페이롤은 1993년에 9억 310만 달러, 3315만 달러에 달했다.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어 구단 재정이 어려워졌으며 스몰마켓 팀들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구단주들은 새로운 협상에서 반드시 샐러리캡과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다. 한편 빈센트 커미셔너는 후일 구단주들의 배상액이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리그와 구단 재정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손해액을 메꾸기 위해 리그 확장을 승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CBA 협상을 앞두고 변수가 발생했다. 커미셔너 자리가 공석이 된 것이다. 새로운 협상에 앞서 구단주들은 빈센트 커미셔너를 걸림돌로 판단했다. 1990년 당시 빈센트 커미셔너가 구단주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선수 노조로부터 파업 금지 서약을 받고 직장 폐쇄를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었다. 구단주들은 친 선수 노조 성향을 보인 빈센트 커미셔너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밀워키의 구단주였던 버드 셀릭을 앞세워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단주들의 신임 투표에서 18-9로 신임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받은 빈센트 커미셔너는 1992년 9월, 사임하고 말았고 셀릭 구단주가 권한 대행으로서 역할을 이어받았다.


1994년 1월, 구단주들은 새로운 수익 분배 시스템을 승인했다. 그리고 셀릭 권한 대행에게 CBA 협상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다. 그리고 이는 애초에 샐리러캡에 동의할 리 없었던 선수 노조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되었다. 셀릭 권한 대행이 여전히 밀워키의 구단주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1980년대에 벌어진 FA 담합 사건을 주도한 주요 인물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빈센트 전임 커미셔너에 따르면 당시 구단들의 FA 담합 사건을 주도한 인물은 바로 셀릭 권한 대행과 화이트삭스의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였다. 페어 선수 노조 전무 이사는 이에 대해 ‘야구 안에서 벌어진 노동 관계에 대한 오염이며 셀릭 권한 대행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구단주들의 결정은 양측의 서로에 대한 불신과 함께 협상에 악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낳았다.


1994년 6월, 구단주측 협상진들은 선수 노조에게 샐러리캡 도입과 연봉 조정 제도 폐지에 대한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리고 이듬달 선수 노조는 구단주들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분노한 구단주들은 선수 연금에 대한 지원을 끊었고 올스타전 수익금 가운데 선수들의 몫이었던 780만 달러의 보상금 또한 보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구단주들의 이러한 보복은 오히려 선수 노조의 결속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뿐이었다. 결국 선수 노조는 8월 13일을 기점으로 경기장에 나서지 않았다.


파업 시작 후 양측은 포스트시즌의 취소를 막기 위해 연방 중재 및 조정 기관의 도움을 받아 협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설전만이 오갈 뿐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았다. 선수 노조가 파업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9월 초, 셀릭 권한 대행은 남은 정규 시즌과 포스트시즌의 취소를 선언했다. 특히 1904년 이후 처음이었던 월드시리즈 취소는 야구팬들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역에 큰 충격을 남겼다.


1994년 말, 자체 투표를 진행해 일방적으로 샐러리캡을 승인했던 구단주들은 선수 노조와의 협상 이후 본격적으로 샐러리캡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선수 노조는 이에 맞서 당시 메이저리그에 등록한 모든 선수가 FA가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양측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파업은 끝내 해를 넘겼고 1995년 정규 시즌의 개막 여부마저 불분명해지면서 지쳐가는 건 야구를 기다리는 팬들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은 마침내 정치권까지 개입하게 만들었다. 다름 아닌 대통령이 양측의 합의를 촉구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1995년 1월 27일, 양측의 대표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2월 7일까지 협상을 매듭지을 것을 요청했다. 양쪽의 입장 차이가 너무 극명한 나머지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 또한 의미가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기한을 5일 남겨두고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구단주들이 협상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샐러리캡 도입을 포기한 것이다.


선수 노조는 샐러리캡 도입 포기 선언을 디딤돌 삼아 구단주들의 모든 제안을 취소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선수 노조의 실수였다. 구단주들이 한 발 양보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모든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자 한 선수 노조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것이다. 특히 선수 노조의 대표였던 톰 글래빈(애틀랜타)과 데이빗 콘(캔자스시티)은 엄청난 강도의 비난을 받았다.


이미 구단주들은 파업을 끝내지 않을 경우 대체 선수들로 스프링 트레이닝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때마침 연방 노동 관계 위원회와 당시 미국 지방법원 판사였던 소냐 소토마요르는 현재 상황의 원인은 선수 노조의 파업에 있으며 대체 선수들로 스프링 트레이닝을 치르는 것과 리그 개막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로 인해 4월 1일, 선수 노조의 232일간의 파업은 마침내 막을 내렸으며 1995시즌은 144경기 체제로 진행되었다.


2021-2022 직장 폐쇄

2017-2021 CBA는 현지 기준 지난해 12월 1일 11시 59분에 만료됐다. 기존 CBA가 만료되기 전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자 구단주들은 현지 기준 2일 오전 12시 1분부터 만장일치로 직장 폐쇄를 선택했다.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1994년의 리그 중단을 꼽으며 이번 직장 폐쇄가 선수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CBA 협상의 쟁점은 서비스 타임과 보너스 풀 그리고 드래프트 추첨제와 사치세다.


선수 노조는 FA 취득 시기 단축을 원했지만 구단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고 결국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게 되었다. 대신 보너스 풀 합의에는 동의했다. 보너스 풀은 연봉 조정 자격 취득 전의 선수들을 위한 포상금이지만 규모와 금액 면에서 양측의 입장 차이가 크다. 구단주들은 30명의 선수와 2000만 달러를 내세웠지만 선수 노조의 주장은 150명의 선수와 1억 1500만 달러다.


드래프트 추첨제의 도입 또한 양측의 의견이 같았다. 드래프트 추첨제는 드래프트에서 좋은 유망주를 차지하기 위한 탱킹을 방지하기 위해 상위 지명권을 두고 추첨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추첨한 팀의 숫자에서 이견을 보였는데 구단주들은 4팀을 주장했고 8팀을 내세운 선수 노조는 현재 7팀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치세다. 현재 선수들의 몸값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구단들은 사치세 증가폭을 낮춰 지출을 줄이려고 하는 반면 선수 노조는 증가폭을 늘려 구단들의 투자를 유도하려 하고 있다. 때문에 구단들은 사치세 기준을 올해 2억 1400만 달러, CBA 마지막 해에는 2억 2200만 달러를 주장했지만 선수 노조는 올해 2억 4500만 달러, 마지막 해에는 2억 730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메이저리그 대변인은 3월 1일까지 협상이 완료되지 않는다면 정규 시즌은 취소되고 새로운 스케줄로 짜여질 것이며 경기가 취소된다면 그 기간 동안 선수들은 연봉을 지급받지 못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과연 이 협상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 중요한 점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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