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하겠지만 2024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었다. 걱정과 슬픔으로 12월을 보내면서도,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몰려든 업무량으로 애초에 생각했던 2024년 회고와 2025년 신년 다짐 글을 쓸 시간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그냥 드는 생각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식으로 적어보려 한다.
#1. 회사를 다녔을 때보다 길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들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3년 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감사하게도 만 3년이 넘어가는 프로젝트들이 생기고 있다. 예전에 가장 오래 다녔던 회사가 만 3년(바빠서 쓰지 못했던 연차들 덕에 서류상으로는 3년 1개월이 된다)이었으니, 오히려 회사보다 더 오래 일하게 되는 역설이 생긴 것이다.
독립적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바로 '나 혼자만 잘 해서 되는 건 없다'는 거였다. 올해는 더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2. 길어지는 옆동네 기러기 생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려다 여러 이유로 집을 구하지 못해, 아내와 아이와 따로 살게 된지도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아내는 1월 첫 출근일자로 복직을 했고, 15개월 된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과 돌봄은 장모님이 해주고 있다.
나는 처가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옆에 있는, 팔려고 내놓았으나 나가지 않아 비어있는 부모님 소유의 집에서 임시로 지내는 중이다. 그래서 늦은 오후부터 처가에 가서 아이를 돌보다 재우고, 임시로 지내는 집이 빨리 팔릴 수 있도록 부동산 연락 같은 일을 하면서 양가에 도리를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이는 갑자기 바뀐 환경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없는 시간 역시 알고있는 듯 하다. 최대한 일을 끝내고 처가에 가면, 아이는 아빠, 아빠 하면서 너무 반기는 바람에 하루 종일 아이를 봐준 장모님께 민망할 정도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을 때는, 엄마 아뻐를 양쪽에 앉혀 놓고 엄마에게 누워서 부볐다 아빠에게 누워서 부볐다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아이를 하루에 한 번씩은 꼭꼭 보지만, 같이 살고 있지는 않는 '옆동네 기러기' 아빠 생활을 빠르게 청산하고 싶다. 물론 국가적인 근심걱정으로 인해 정말 쉽지는 않을 것이다.
#3. 근심걱정과 슬픔, 그리고 외가
작년 12월은 근심걱정으로 시작해 슬픔으로 끝났다. 근심걱정은 새로운 집을 구하는 데 치명타로 다가왔고, 대형 참사가 일어난 곳은 외가와 매우 가까운 곳이라 마음이 매우 좋지 못하다.
나라에 큰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새로 살 집을 빨리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시세가 조금만 내리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래서 원래 살던 집의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아내와 아이가 처가로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 사무실에서 연락조차 없다.
외가에는 30년이 넘도록 매년 한 번씩은 갔던 것 같다. 심지어 참사가 나기 보름 전에도 다녀왔다. 그래서 공항이 생기기 전은 어땠는지, 공항이 생기고 나서는 어떻게 주변이 바뀌었는지 나름대로 자세한 기억들이 있다.
사고 소식을 뉴스로 보고 바로 외가에 살고 있는 둘째 이모에게 별 일 없는지 전화를 드렸다. 괜찮다고는 하는데 이미 수많은 전화를 받은 듯 했다. 보름 전 외가에 갔을 때 이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모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고, 계엄이라는 게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이 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외할머니는, 지금은 연로하셔서 손자도 못알아보지만 일제시대와 6.25 때 마을에 얼마나 참혹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얘기해 주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상처가 많은 땅에 또다른 상처가 더해졌다.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떠나신 분들이 편히 쉬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분들의 상처도 조금이나마 치유되기를 다시 기도한다.
#4. 엄마의 희망
3년 전, 상견례를 3일 앞두고 아빠는 하반신 마비를 당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긴 재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다. 3년이면 마비가 곧 장애라고 인정하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엄마는, 반드시 아빠가 다시 일어나 걸어다닐 것이라는 희망이 3년 전에 비해 하나도 꺾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현싱을 인정하고 다음을 생각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도, 내가 그동안 부모님이 말한다고 해서 잘 듣지도 않았는데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에 그만두곤 한다.
올해에는 이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5. B2B 콘텐츠 마케팅으로의 집중
신기하게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가 B2B 콘텐츠 마케팅이다. 제너럴리스트로서 이것저것 많이 해봤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 지금도 거리낌이 없지만 이렇게 한 분야로 일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프리랜서를 하기 전에는 B2B 업무를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프리랜서를 하면서 B2B 마케팅, 이 중에서도 B2B 콘텐츠 마케팅의 가능성을 보았고, 경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활동 초반부터 업무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B2C의 관점에서, 단순한 콘텐츠 마케팅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등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따로 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치를 쌓으면서 서서히 인바운드로도 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아마도 올해는 B2B 콘텐츠 마케팅에선 많은 기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5년에는 어떤 자기 일들이 생길까. 2024년보다는 조금이라도 따뜻하고 좋은 소식들이, 개인적으로도 우리 전체적으로도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