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물을 기꺼이 수혈하려는 무서운 고인물
이사를 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설치하는 것이다. 전에 살던 집에는 커튼을 직접 설치했었지만, 이번에는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동네에서 가장 잘 한다고 해서, 두세달 정도 기다려야 하는 곳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운좋게도 블라인드 설치는 (전문가 입장에서는) 금방 하는 작업이라 가능하다고 연락을 받았고, 빠르게 블라인드를 설치할 수 있었다.
블라인드가 어느정도 설치되고 나자, 인테리어 사장님은 우리 부부에게
"죄송하지만 집 좀 둘러봐도 될까요?"
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막연히 인테리어에 참고가 되겠거니 하고 편히 보시라고 했는데, 여기서 일의 자세에 대해 한 수 배우게 되었다.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본인과 같이 동네에서 오래 한 사람들은 실용적으로 좋은 솔루션을 줄 수는 있지만, 젊은 사장님들이 새롭게 시도하는 인테리어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행을 찾아내 성장한다. 그래서 이 집처럼 젊은 인테리어 사장님이 한 것 같은 집은 자세히 둘러본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 업체에 대한 신뢰도가 확 올라감을 느꼈다. 블라인드 설치가 끝나고 아내도 같은 생각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블라인드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를 하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동네에서는 잘나가는 '고인물'이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인테리어를 보고 배우려고 하는 것을 볼 때 단순히 고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정체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요새 내가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는 "이런 건 젊은 애들이 잘 하죠."였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의 범주 안에 든다면 최소한 주의깊게 보고 배워야 하는 게 더 옳다.
주니어 때 많이 생각했던, '모르면 배워야지, 뭐'라는 간단한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면 되는 거였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