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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나 Nov 06. 2018

번외편>한국으로 떠나는 가을 휴가 - 한달 반의 시간들

필히 더 그리울 것을 알면서 소원하다

 3년만에 한국에 도착한 날짜는 추석 이틀전이었습니다. 아직은 습한 열기가 남아 있는 늦여름의 느낌 속에 인천 공항에 내렸습니다. 두 돌을 앞두고 있는 둘째 아이는 한국 방문이 처음이었고  친정 아빠와도 첫만남이었습니다. 공항에서 아빠가 제 둘째 아이와 드디어 만났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순간의 만남을 위해 수많은 걱정들을 뒤로 하고 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번에 한국에 와서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뭔가 쓸 시간은 없었지만(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이 없으니 도저히 일련의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음) 밥을 먹으면서도 활자중독증처럼 책을 펴보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한 번 걱정스럽게 말씀하시긴 했어요.


"쉬는게 좋지 않겠니."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내 영혼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그래."


 시답잖은 소리, 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그 대화 후론 단 한번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한 책들을 잔뜩 빌려다주셨죠. 옛날 아빠 손을 잡고 매일 같이 도서관에 갔던 그 날들을 절로 생각나게 했습니다.

 아빠는 이번에 제가 한국에 머문 시간 동안 평생을 봐 왔던 것보다 더 많은 날들을 부엌에서 엄마를 도와 주방일을 하셨습니다. 엄마가 손주들과 지내시며 낮시간동안 피곤하셨을테니 잠깐이라도 쉬라는 뜻이셨죠.

 자주 휴가를 내셨고 평일에도 많은 시간을 손주들과 그리고 저와 보내주셨어요. 첫째 아이가 호주로 돌아갈 때 할아버지도 함께 가셔서 세발자전거를 밀어 달라고 말했을 정도니 말 다했죠.(첫째 아이는 예민하기로 우주 최강)

 

어느 날, 저는 아빠에게 고백했어요.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저는 아이를 낳지도, 결혼을 하지도 않을 것 같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더군요.

결혼도 아이도 없는 삶도 멋지겠지만 지금 두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 위대한 일은 해내지 못했을 거라고. 그리고 죽는 날까지 애정을 줄 대상이 생긴다는건 나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제 아이들은 자주 호주에 있는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며 지냈는데 첫째 딸아이는 유독 그 시간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제 느낌엔 그리운 연인들의 분위기였죠.(나는 왜 저 둘 사이에서 악역 같은 기분이 드는가) 전화를 끊고 나면 당장 가자고 조르기도 여러번.(아빠가 선물을 사다 놨다는 얘기가 주효하긴 했습니다만) 가끔씩이나마 호주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나의 집'은 어디인지 잊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엄마에게 여쭈어보았어요.

호주에서 가깝게 지내는 로다 할머니가 내 엄마가 되어주고 싶으시다는데 엄마 생각은 어떠신지. 그 한없이 무겁기도 사소하기도 한 얘기에 엄마는, 마냥 기뻐해주셨습니다.

 친한 친구 집에서 하룻잠 함께 자던 날에는

 호주에서 지내며 슬프고 견디기 어려웠던 날들을 얘기했습니다. 친구는 위로해주면서 이렇게 얘기해줬죠. 그 곳에  네 얘길 들어줄 친구가 반드시 있어야만 해, 라고.

 그 마음이 고마울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저를 그리워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저는 어쩌면 정말 중요한 순간 곁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 한없이 미안합니다. 이 부채감을 어쩌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첫째 딸아이는 비행기를 타야만 할머니 집에 올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비행기를 택시처럼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겠죠) 가끔 혼자서 외출하는 엄마를 보면서 할머니에게 말했답니다.

 

엄마는 커피가 필요해, 라고.


 그만큼 저는 휴가를 잘 보내고 돌아가는 중입니다. 출국 날짜가 남았지만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정신의 일부는 호주로 먼저 가 있는 기분입니다.^^ 어서 갔다가 또 오게 될 날을 벌써 그리워하는 중입니다.


 한국의 가을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나마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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