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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나 Sep 15. 2018

4. 지금 우리가 발휘하고 있는 '순정'과 '투지'

우주 정복의 꿈도 발길질부터 시작(feat. 엄마 주의 요망)

  최근에 냉장고 소음이 커져서 수리를 요청했다. 그런데 우리가 냉장고를 살 때 들었던 보험 덕분에 새 냉장고로 교체해 주겠단다. 기존의 냉장고 안에 물건들을 빼내고 기다리면서 무척 신이 났다.
 새 냉장고를 설치해 주러 온 분들이  문제의 냉장고를 치웠다. 그러자 바닥에는 유리조각과 진통제 알약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자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나의 치열했던 시간들이 거기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손목 통증으로 힘들었었다. 유리병 뚜껑을 돌려 열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적이 부지기수였다. 가끔은 조각을 맞춰보고는 잃어버린 유리 일부를 찾느라 종일 신경을 쓰기도 했다. 아이가 다칠까 걱정스러워 애를 먹었다.  한밤중에 손목 통증으로 먹어야만 했던 진통제도 만만찮다. 이렇게 아플 바에는 팔이 없는 것이 낫겠다고 엉엉 울기도 했다.

 새 냉장고가 자리를 잡기 전에 얼른 바닥을 청소하면서 담담하게 그 날들을 생각했다.

수고 많았어,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더는 아이 안아주지 마세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둘째를 낳게 된다면 손목 통증은 더 빨리, 강하게 시작될 겁니다. 예방 방법이요? 그런 건 없습니다.


 내가 육아 8개월차에 한국에 갔을 때,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께 받은 진단 내용이다.

 

멍한 표정의 나.(난처&당황)


 "하나 방법이 있긴 한데."

 

 종전과 달리 부드럽고 따뜻한 어조로 의사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묶읍시다! 양 팔 모두!"

손목 보호대만으로는 부족했던 98% 를 깨닫게 해 준 반깁스의 위력

 몇 초간 고민하다가 그러겠다고 했다. 내 대답에 의사 선생님이 더 놀라셨다. 


 대부분의 엄마분들이 그냥 가셨다가 더 악화된 상태로 돌아오거든요.

 반깁스로 두 팔을 고정하고 나자 큰 교통 사고라도 당한 사람처럼 내 모습이 나도  부담스러워졌다.(가재 같다랄까) 게다가 아이까지 곁에 있으니 모든 주위 사람들이 나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활활 불타오르는 것처럼 아프던 손목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평생 아플 것만 같더니만 휴식기만 가져 주면 나을 수 있는 건가 봐.


 나는 그 확신이 들자마자, 반깁스를 풀고 다시 손목보호대를 착용해 버렸다.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접고 펴고,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고 내리고, 이유식을 만들고, 목욕을 씻기고, 안아주고 달랬다.

 아마도 진짜 내가 공포스러웠던 것은 영구적인 통증이었나보다. 나는 이 시기만 버텨보잔 다짐을 하면서 친정 엄마께는 내 손목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많이 회복됐고 이제는 요령껏 아껴 쓸테니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나를 애타게 찾는 아이를 더는 외면하기가 어려웠다.(물론 엄마는 못마땅해하셨다. 엄마는 호주에 돌아가 또다시 혼자 아이를 돌볼 나를 한국에 갔던 그 날짜부터 헤아리며 줄곧 걱정하셨다.)


그런데, 육아 지인 선배들의 얘기는 나를 다시 절망스럽게 했다.


 엄청 가벼운데?이 무게가 무겁다고? 그리고 서너살이 넘어도 덩치만 크지 애라 안아줘야 하는데 벌써 애기가 무겁다고 하면 어떻게 해?


 한 두번도 아니고 내 아이를 안아보는 언니들은 한결 같이 다들 가볍다, 솜털같다 말했다.(심지어 아이가 우량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 앞에서 손목 보호대를 하고 있기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통증을 앞으로 몇 년씩이나 계속 끌어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정말 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빈도'의 문제였다.


 돌 무렵에 아기띠를 졸업했다. 아이는 특유의 고집으로 뭐든 혼자 해 보겠단 시기가 오면서 카시트에 혼자 올라가 앉기 시작했다. 휴대용 유모차로 갈아타면서 내 두 팔과 허리가 몇곱절 편안해졌다. 걸어다니면서 체력 소모가 많아지니 아이는 잠투정이 줄고 수면 질이 높아졌고 내가 안아 재우는 시간이 사라져갔다. 간식으로 협상할 수 있고 주위 볼거리에 눈이 팔려 내 품을 거부하는 날도 왔다.

  그렇게 나는 '불타오르던' 손목으로부터 살아남았다. (육아 14개월차 때로 기억한다.) 둘째 때도 손목은 말썽이긴 했지만 딱 1년만 버티면 된다는 경험이 있어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에 멀리 사는 친구가 놀러왔다. 친구의 아이는 곧 한 살이 된다. 요즘 한창 기어다니느라 바쁘다. 나는 아이를 안고 예쁘다고 연신 귀여워했는데 친구가 왈,

 

 "다들 가볍다 그러는데 나는 지금도 얘가 너무 무거워. 앞으로는 어쩌나 싶다."


 나는 친구의 얼굴에서 '나'를 보았다. 나는 3년 전의 나에게 위로하듯 친구에게 말했다.


"당연히 무겁지. 난 잠깐 안아주는 이모고 넌 스물 네시간 함께 하는 보호자잖아. 그리고 아직 기어다니는 애라 안아줘야하는 환경이 얼마나 많은데. 걸어다니면 상황이 나아져. 네가 지금 많이 힘들 때야."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임신했을 때가 좋은 거야, 아이가 누워 있을 때가 좋은 거야, 말 못할 때가 좋은 거야' 라든가 '에너지 넘치는 아들도 아닌 순한 딸을 키우면서 힘들다고 하지 말아요, 세 쌍둥이도 아니고 하나 키우면서 엄살 말아요,  애 버릇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피곤하다 말아요' 등의 말들을 하는 엄마들을 보면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진다. 나는 그냥 '잘 하고 있어. 곧 나아질 거야.'라고 주위의  새내기 엄마들에게 말한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나조차 몰랐던 내가 가진 DNA 속 희귀한 '순정'과 내년치의 체력까지 미리 끌어와 오늘 불태우는 '투지'로 육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모두들 오늘밤 '안녕한' 시간들이 예정되어 있기를 바란다.

KBS2 드라마- 고백부부 ; 이 드라마를 보고 나를 떠올렸다는 지인들이 있었다. 저 손목보호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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