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노는 체코에서 프라하 다음으로 큰 도시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프라하에서 비인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더러 그곳서 일박을 하고 가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브르노는 프라하처럼 중후한 맛은 없으나, 르네상스 풍의 건축물로 이뤄진 거리들이 좀 더 젊고 발랄한 인상을 준다. 프라하보다는 비인에 가까워서인가?
주마간산 격으로 하루 시내를 구경하고 난 후, 다음날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슈필베르그(Špilberk) 성을 갔다. 성으로 가는 길 초입에 뜻밖에도 멘델이 있던 수도원을 만났다.
멘델은 오스트리아 비인서 공부했지만, 그 후 고향인 브르노의 수도원으로 돌아와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 유전학을 연구하며 평생을 보냈다. 정원에는 온실과 콩밭도 보였다.
마침내 오르게 된 슈필베르크 성은 유럽 어디서나 보는 성으로, 안내판에는 여느 성과 마찬가지로 유럽을 휩쓸고 간 여러 전쟁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게, 1805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이 성을 점령한 기록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3~67)는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전쟁을 중심으로 그린다. 작품 초반에는 18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브르노(브륀) 궁과 인근에서 벌어진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 대혁명 후 혼란했던 내부를 평정한 나폴레옹은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모은다. 권력의 자리에 오른 후 전쟁이나 정복을 수행하면서 혁명사상을 외국까지 전파하여, 아직 군주 치하에 있던 러시아나 오스트리아 등을 위협한다.
나폴레옹은 급기야 비인을 침공하고 오스트리아 왕실은 브르노로 피난을 떠난다. 브르노가 ‘작은 비엔나’로 불리는 사연이기도 하다. 당시 브르노는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였다.
러시아는 동맹국 오스트리아를 도우러 출정하고, 소설 속 인물 안드레이 공작은 장교로 참전한다. 『전쟁과 평화』에는 주인공 격의 세 명의 인물이 있다. 여주인공 나타샤, 그리고 그녀에게 실연당한 안드레이, 안드레이의 친구로 나타샤와 결혼한 피에르 백작이다.
총각 때 어떤 여자가 내게 말하길, 젊었을 때 자기는 “이지적인 안드레이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어선 인간적인 피에르를 더 좋아하게 됐다.”라고 했다. 소설은 아니고 영화를 보고 한 얘기 같았는데, 나는 과연 안드레이인가? 피에르인가? 하며 머리를 굴렸던 기억이 난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전장에 있던 안드레이 공작은 오스트리아 왕실에 전황을 보고하기 위해 브르노 궁전을 찾는다.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군인으로서의 명예심에 불타는 안드레이는 막상 그곳에 도착했을 때 심각한 회의에 빠진다. 오스트리아 왕실과 귀족들, 그리고 자국의 외교관들 모두가 전쟁이 내건 명분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영리와 이해관계들만 좇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브르노에서 10여 km 떨어진 아우스터리츠서 벌어진 전투서 러시아‧오스트리아 동맹군은 나폴레옹 군대에게 대패하고, 전투에서 크게 부상당한 안드레이는 소설 속에서 영웅 나폴레옹과 마주친다. 그러나 안드레이는 나폴레옹의 눈을 쳐다보면서 ‘위대함의 보잘것없음’ 또는, ‘생의 보잘것없음’을 느끼며 전쟁이 끝난 후 허무주의에 빠진다.
이에 반해 젊은 시절 나폴레옹을 찬양했던 피에르는 1812년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나폴레옹도, 러시아 황제도, 장군도 아닌 민중이라는 자각에 이른다. 쉽게 찾을 수 없어 그렇지 역사에는 과학적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의 주인공은 늘 민중이기 때문이다. 참회 귀족 피에르가, 몰락하는 귀족 출신이나 민중적 생동감이 넘치는 매력적인 아가씨 나타샤와 결합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남북 정세가 불안하면 보수우익과 군사주의자들은 북한과의 일전을 불사하며 국민 대중을 선동한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는,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늘 역사의 법칙을 걸어간 민중임을 얘기해준다. 슈필베르크 성 하늘은 언제 그런 전쟁이 있었냐는 듯 쾌청하게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