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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도시 카를로비바리의 봄을 찾아

by 양문규

‘프라하의 봄’은 원래 1968년 체코의 민주 자유화 혁명을 빗대 말한 것이지만, 외국인으로 이곳을 한 해 살아봤던 나로서는 프라하의 ‘봄’이 진정 감격스러웠다. 그건 봄이 꼭 아름다워 서라기보다는 그곳에서 겨울을 겪어본 경험 때문이리라.


프라하의 겨울이 그리 추운 건 아니나, 그곳은 북위 50도로 북만주 지역과 비슷한 위치라, 한겨울엔 오후 4시면 캄캄해진다. 날씨가 흐린 날이면 낮 2~3시부터 어둑어둑해져 시내의 오래된 건물은 중세의 ‘고스트’와도 같은 웅얼거림을 시작한다. 카프카가 『성』이라는 음산하고 심각한 소설을 쓴 사연을 알 법하다.


그러나 봄이 되면서 한국서 손님들이 물밀듯이 놀러 오기 시작하고 프라하의 봄은 단연 활기를 띤다. 동창 부부도 방문했는데, 공항으로 마중 나간 나를 만난 감격에 들떠 그만 시내로 들어오는 지하철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은 이 모든 걸 다 잊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게 했다. 언젠가는 트램을 탔는데, 차 뒤쪽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단체관광단에 껴왔던 동창이 나를 발견하고 놀래 소리를 지른 것이다.


손님 중에는 처형도 있었다. 처형의 남편은 바로 전 해 가을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부부는 당시 체코 바깥을 여행 중이라 장례식에 참여를 못했다. 죄송한 마음과 함께 처형을 위로하고자 체코로 초대했다. 공항서 만난 처형은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지만 나이에 비해 애잔한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처형과 함께 프라하 바깥으로 유채꽃 피는 들판을 지나 찾아간 곳이 온천도시 카를로비바리다. 여긴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서, 버스기사가 천연덕스럽게 우리를 보고 “안뇽하세요?”라고 말할 정도다. 피부병과 심장병이 있었다는 독일의 문호 괴테도 자주 찾았던 이곳은 이미 18세기 당시부터 유럽에서 이름난 온천이었다.


이곳은 온천욕뿐 아니라 ‘마시는 온천’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약수도 유명해 이곳에 도착하면 일단 알라딘의 램프 같은 자기 컵을 사서 약수를 받아먹는다. 기분이겠지만 약수는 꼭 이걸로 먹어야 제 격이다.


나이가 나이인즉슨 우리는 몸에 좋다는 약수를 마시는 재미도 있거니와, 더 달콤한 재미는 온천수를 마시고 난 후의 떨떠름한 철분 맛을 달콤한 크림이 든 얇은 과자 오플래키(oplatky)로 입가심을 하는 것이다. 원형 모양의 오플래키 과자가 사각형으로 바뀐 게 웨하스 과자이고, 도톰한 빵으로 변신한 게 와플이다. 이곳에는 이 과자 도매상이 즐비하다. 지인들은 이를 비교적 싼 가격으로 대량 구입해 한국에 돌아가 선물로 나눠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약수와 함께 오플래키로 주전부리하고, 그리스 신전과도 같은 화려한 콜로나다 양식의 온천장을 돌아다니며 봄처럼 솟아오르는 간헐천도 즐겼다. 카를로비바리는 영화제로도 유명한 도시다.(「박하사탕」이 여기서 특별상을 받았다 한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봄의 풍광이 어우러진 영화 촬영장에서는, 시대극을 찍는지 전통 복색을 한 봄 같은 여배우들이 이국의 봄을 더 생동감 있게 했다. 나는 카를로비바리의 봄을 아내와 처형, 자매 둘이서만 사진에 담을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이를 눈치챈 처형은 미안해하면서도 봄 소풍 온 여고생 같이 즐거워했다.


김소월의 「금잔디」라는 시가 있다. 시 속의 화자가 세상을 떠난 임의 무덤가를 이듬해 봄에 다시 찾았었나 보다. 사랑하는 임이 죽었으니, 봄이 와도 온 것 같지 않고 당연히 모든 게 슬퍼 보일지 알았는데, 가신 임 무덤가가 자리한 심심산천에 금잔디가 불붙듯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슬프면서도 봄의 생명력에 어찌할 수 없는 벅찬 마음을 노래한다.


그래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로부터 또 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처형은 두 딸로부터 세 명의 손자를 봤다. 요즘 하루에도 수차례씩 아내와 통화하는데, 손자들 돌보느라 자랑스러우면서도 고달프고 화나는(?) 사연을 마라톤 중계방송하듯 전한다.


온천수를 받아먹는 알라딘의 램프 같은 컵


KakaoTalk_20150425_062232167.jpg 오플래키 가게


KakaoTalk_20150425_062329334.jpg 콜로나다 양식의 온천장


KakaoTalk_20150425_160701253.jpg 영화 촬영장


KakaoTalk_20150425_062334818.jpg 카를로비바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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