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트라 산맥에서 다시 브라티슬라바 쪽 방향으로 돌아오던 중, 옛날 은광도시로 명성을 떨친 반스카 슈티아브니차(Banská Štiavnica)를 둘렀다. 내륙국가인 슬로바키아에서도 가장 한가운데 산골짝에 있는 광산 도시에 뭐 볼 것이 있을까 싶어 갔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로, 옛날 유럽의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는 예쁘장한 도시였다.
독일의 작센지방과 그와 인접한 체코와 슬로바키아에는 과거에 유명했던 광산 도시들이 여럿 있다. 이들 광산도시는, 르네상스 이후 중세 유럽이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본축적을 하고, 광산개발을 위한 근대 공업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일의 근세는 광산개발로 부를 축적한 시기인데, 당시 독일의 대부호 푸거 집안은 광산업을 통해 큰돈을 벌고 금융 대부업도 하며 이 돈으로 마젤란의 해외 탐험을 자원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중세 가톨릭에 반기를 들고 근대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의 아버지도 원래는 작센의 광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반스카 슈티아브니차에서도 광산 발파작업을 위한 화약이 최초 사용되고, 그곳 대학에 광산 관련 학과가 최초로 설치된다. 이곳을 지배했던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는 부다페스트나 비엔나의 궁궐을 짓기 위한 재원을 이 은광도시로부터 조달받기도 했다.
당연히 과거 이 도시의 경제적 위상은 높았고, 그 번영의 결과로 이뤄진 문화유산 덕분에 현재 비록 광산업은 쇠락했지만 관광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시내에는 유럽서 흔히 보는 역병 퇴치를 기리는 아름다운 삼위일체 탑을 중심으로, 광부 동상도 서있고 광부 전설과 관련된 도롱뇽 기념물도 보이고(이곳서 도롱뇽 축제도 열린다.), 바로크 양식으로 된 옛 광부 회관의 건물도 있다. 도시 끝 언덕으로 올라가면 로켓 모양의 ‘노베 자모크’(New Castle) 성이 있는데, 이 성은 16세기 당시 이 노다지 도시를 수차례 노렸던 오스만 터키의 공격을 막던 성이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밤도 깊어지고 대부분의 상점도 문을 닫아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건물 한편서 불빛이 새 나오고 신나는 밴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 그곳으로 가서 건물 안을 기웃거렸다.
우리 어머니가 늘 내게 들려주시던 얘기가 있다. 옛날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던 날, 어머니를 놓칠세라 꼭 손을 붙잡고 다니던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 어머니가 당황했었다. 알고 보니 신입생들을 축하하는 브라스밴드 연주하는 곳 맨 앞으로 달려가서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고 서있더라는 얘기다. 내가 좀 흥이 많은 사람이다!
그날 밤도 음악이 들리는 곳을 찾았다가 안에 있는 이들이 들어오라고 권유하니 못 이기는 척하고 들어갔다, TV 여행 프로그램에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다 ‘설정’이 아닐까? 집에서 담근 술이라는데 엄청나게 센 술을 받아먹고는, 생면부지의 이방인들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놀았다.
서로들 말이 통하지를 않아 자세히는 알지 못하겠지만 무슨 결혼식 피로연 같은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신랑 신부로 추정되는 이들이 어린애를 안은 걸 보면 도대체 무슨 영문의 잔치인지는 끝내 몰랐다.
밴드 연주는 다소 우울한 표정을 한 갈색 또는 검은색 피부의 집시들이 했다. 슬로바키아 시골을 다니다 보면 빨래가 어수선하게 내걸린 집시마을을 자주 지나치게 되는데, 집시 중에는 이런 잔치에 불려 와 연주하는 이들도 있나 보다.
술김에 슬로바키아 금발의 아가씨들을 부여잡고 신나게 춤을 췄는데, 그쪽 어르신네들 역시 갈수록 이런 분위기가 못마땅했나 보다. 자기 젊은이들 몇 명에게 눈치를 주는 듯싶어 자정이 훨씬 넘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쫓겨났다.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은 충동은 젊은 시절에 강렬한 법이지만 평생을 지속하는 여진인 것 같다. 어느 밤 집시들의 밴드 연주에 맞춰 슬로바키아 아가씨들과 춤을 췄던 낯선 체험들, 그러나 이것이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우리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대리충족을 하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