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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Dec 13. 2020

프라하의 드보르작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내가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체코의 세 명의 대표적 음악가가 스메타나, 드보르작, 야나체크이다. 그중 체코의 대표적 국민음악가인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블타바) 강>은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 프라하 시내를 다니노라면 도처에서 이 곡을 듣게되는데,  프라하 성 앞에서 연주하는 악사들의 모금 통에는 그 연주가 끝나고 나면 돈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에 비해 야나체크는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곡도 다소 심각한데, 그의 오페라 중에는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오페라 화한 것도 있다. 혹시 야나체크 음악을 듣고 싶으면,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OST 곡으로 쓰인 그의 피아노곡을 들어봐도 되는데,  그 곡을 들으면 프라하의 첨탑들도 떠오르고 체코 전원의 슬프면서 사색적인 분위기도 떠오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체코 하면 드보르작이다. 드보르작의 9번, 일명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의 주제 선율은, 중등교과서에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의 번안 가곡으로 실려 우리에게도 유명한 곡이 됐다. 드보르작을 조금 더 아는 이는, 그의 귀엽고 경쾌한 피아노곡 <유모레스크>도 들어봤을 것이다. 


대체로 스메타나가 활기차고, 야나체크가 무겁다면, 드보르작의 음악은 따뜻하다. 내가 겪어본 체코 사람들에게는 이 세 가지 면이 다 보이지만, 나는 그냥 내 식으로 체코 사람들을 드보르작 같이 따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드보르작을 예전부터 따뜻하다고 생각한 것에는 주관적이긴 하지만 이유가 있다.  


몰다우 강을 연주하는 프라하 궁 앞의 악사


내가 재직하는 대학은 지역의 조그만 대학임에도 음악과, 미술과 등이 다 있다. 음악과는 학생들이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하는 등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 학교 예산 심의 때마다 우리 처지에 음악과가 웬 말이냐면서 음악과를 없애야 한다는 험악한(?) 말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음악과 학생들의 연주회가 있을 때마다 거의 참석한다. 유치한 이유지만 일단 공짜고, 학생들의 연주회가 나에겐 오히려 더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시디에서 듣던 유명한 이들의 연주를 학생들이 벌벌 기며 연주할 때마다 저 곡이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 하는 어려운 곡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라는 '요상한' 이유에서다. 


체코에 안식년으로 오기 전 해 늦가을에 있던 학생들 정기연주회에서는 드보르작의 8번 교향곡이 연주됐다. 우리 학교 음악과는 규모가 작아 교향악단 편성도 수월치 않아서 연주회 때는 졸업생이 동원되기도 하고 외부에서 시향 단원들을 꿔오기도 한다. 언젠가 학교 보직을 맡았을 때 음악과 선생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데 비올라 파트의 학생이 부족해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에게 비올라를 연습시키려 한다며 비올라 악기 구입이 필요하다 해서 이를 예산에 반영했던 기억도 있다.  


그날 드보르작의 8번 교향곡은 기특하게도(?) 전 악장을 다 연주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드보르작이 낭만파 작곡가라 관악기를 많이 쓰는데, 관악 파트에서 비록 엄청난 ‘삑사리’가 나기는 했어도, 난방도 제대로 안 된 학교 강당에서 덜덜 떨며 드보르작을 들으면서 그의 음악이 그렇게 따듯한지를 새삼 느꼈다. 대개 낭만파 음악이 밝거나 아니면 어둡거나 인데, 드보르작은 이 양자를 두루 갖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드보르작 박물관 정원(위), 박물관 정문(아래  좌), 2층의 30여 석짜리 연주홀(가운데),  캠브리지대 명예박사 학위 복


체코에 와서 드보르작 박물관을 가보기로 작정하고 체코 관광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의 박물관 또는 기념관이 전국적으로 여섯 군데나 있었다. 그의 고향 생가에도 있고, 그의 음악가 사위인 ‘수크’의 저택에도 있고 등등 …. 그래서 나중에 갈 때 가더라도 일단은 가까이 프라하에 있는 박물관을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드보르작 박물관 방문은 그게 처음이자 끝이었다. 더 이상 가볼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박물관은 프라하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는데,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이층짜리 단독주택 건물이라 다소 의외였다. 건물은 18세기 초 건물이라지만 프라하에야 그런 건물은 숱하게 있어 그다지 새로울 건 없었다. 정원에 조각상들이 있어 그럴듯해 보였는데 갔던 때가 겨울철이라 좀 쓸쓸했다.


드보르작이 쓰던 개인용품들, 그리고 그가 남긴 악보 초고들이 전시돼있는데 그건 내가 드보르작을 연구하는 음악학자도 아닌 이상 특별히 흥미를 끄는 것은 아니었다. 단 드보르작이 미국, 러시아에 가서 음악활동을 한 것은 알았는데, 영국에서도 활동을 해 캠브리지 대학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의 가운이 전시돼있는 것을 보고 당시 드보르작의 위상이 국제적으로도 꽤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프라하서는 굳이 드보르작의 박물관을 가보지 않아도 그를 곳곳에서 만난다. 체코 필하모니의 근거지인 루돌피눔 극장의 메인 홀이 드보르작 홀이다. 블타바 강변에 있는 그 극장 앞에는 드보르작 동상도 서있다. 비쉐흐라드의 예술가 묘지를 가보면 그중 가장 품위 있고 멋있는 묘지가 드보르작의 흉상이 있는 그의 묘지다.


그의 오페라 작품 <루살카>는 프라하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인데, 나는 결국 그걸 보지 못하고 왔다. 첨에는 다른 오페라 작품보다 관람료가 월등히 비싸서 망설이다가, 핑계이긴 하지만 늘 매진이 되는 바람에 어영부영하다 못 보게 됐다. 역시 드보르작은 프라하에서 대단한 인기다.  


드보르작 홀이 있는 루돌피넘 극장(좌), 드보르작 묘지


원래 드보르작을 좋아했지만 안식년으로 그곳을 갔다 오고 나니 더 좋아하게 됐다. 그쪽의 음악방송을 틀어놓으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드보르작 음악이 나왔기 때문에도 그랬으리라. 그러나 짧은 1년이기는 하지만 한국을 떠나 외국에 나가 있다 보니 드보르작에게로 감정이입이 되어 더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드보르작 역시 3년간 체코를 떠나 미국에 가서 음악활동을 했다. 그는 거기서 향수병에 많이 시달렸다. 그때 작곡한 곡들이 앞서의 신세계 교향곡, 그리고 아메리칸 조곡, 아메리칸 4중주 등이다. 이 곡들에는 민요풍의 멜로디가 자주 나오는데, 흔히들 이를 드보르작이 미국 체류 중 접하게 된 아메리칸 인디언 또는 흑인들의 민속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한다. 글쎄? 내가 그쪽 음악을 모르니 뭐라 얘기할 순 없지만 오히려 나는 체코 또는 슬라브 쪽의 선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드보르작의 이 곡들에 ‘신세계’니 ‘아메리카’니 하는 별칭이 붙여지긴 했어도, 이 곡들은 미국을 그린 게 아니라, 오히려 그곳 아메리카에서 자기의 고향을 향한 애틋한 향수를 그리고 있다. 드보르작이 미국을 방문했던 시기에 앞서 19세기 중반부터 신대륙 미국으로 체코인들의 이민이 줄을 이었고 당시 시카고 등을 중심으로 이들 이민자 집단이 크게 형성돼 있었다.


드보르작은 어쩌면 자신의 음악으로 미국의 이민 동포들과 자신의 향수를 달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드보르작 음악에 유달리 공감하는 것은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그리움과 이를 어루만져주는 그의 따뜻한 마음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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