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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an 31. 2021

프라하 먹거리의 오해(?)

체코로 안식년을 가게 됐다고 하니, 우리 학교 주당 선생님들이 맥주의 나라로 가니 얼마나 좋겠냐며, 가서 맥주나 실컷 먹고 오라고 덕담 아닌 덕담을 해줬다. 독문과 선생님은 ‘맥주는 역시 독일이지만 이웃나라 체코도 그에 못지않다’며 자신이 안식년 때 마셨던 독일 맥주를 행복하게 회고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체코서는 일상적으로 맥주를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 


늘 맥주와 함께 하게 되는 음식 


식당을 가면 음료수를 주문해야 하는데 진짜 듣던 대로 맥주가 물보다 쌌다. 게다가 느끼한 서양 음식 먹을 땐 맥주가 안성맞춤이었다. 하우스맥주는 빼고 상표를 달고 나오는 체코 맥주가 서른 가지 이상 된다고 한다. 그중 내가 마셔본 게 열 가지 정도 된다. 그 열 가지는 맛이 기준이 아니라 대개 천 원 가격대 이하의 것들이라 사 먹었다. 값은 싸도 종류가 다양하고 모두가 처음 마셔보는 것들이다 보니 그런대로 다 괜찮았다. 


비단 체코만이 아니라 유럽은 어느 나라를 가든 맥주 문화가 풍성하다. 벨기에는 맥주 브랜드만 5백 개 이상이라고 하니 오히려 체코는 저리 가라 인 것 같다. 더블린을 가면 기네스 맥주가 관광도시 더블린을 먹여 살리는 형국이다. 포르투갈의 그 유명한 타르트 파이는 슈퍼복이라는 드래프트 비어와 곁들여야 제 격이다.


단지 체코의 일인당 맥주 소비량이 전 세계 1위라고 알려진 것은, 체코 사람들 자체보다는 체코로 놀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프라하에 취해 마셔댄 맥주가 합산돼 그런 계산이 나온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5월로 들어서면 프라하의 올드 타운 광장은 한마디로 대형의 야외 맥주홀로 변하기 때문이다. 


고슴도치 브랜드의  예체크 맥주집(좌)과 3천 원짜리 헝가리 산 화이트 와인, 토카이


와인 역시 체코에 가서 일생을 통해 마실 만큼의 양을 다 먹고 왔다. 유럽은 워낙 치즈가 싸고 다양하니 치즈를 사 먹을 기회가 많고, 이 치즈를 먹게 되면 자연히 와인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엔 종이 팩에 담긴 900원짜리 와인이 싸고 신기해서 사다 먹었다. 근데 어느 날 노숙자가 이 와인과 함께 싸구려 빵을 우적대며 먹는 걸 보고 그때부터 어쩐지 술맛이 떨어져 더 이상 그건 안 사 먹었다.


하단의 900원짜리 팩 와인, 나머지 와인도 6~70 코룬, 한국 돈으로 3~4천 원 와인들이다.


체코 사람들에게 와인을 선물할 때 대개 만 원 내외의 모라비아 산 와인을 사다 주면 아주 고마워했다. 우리는 체코가 아닌 포르투갈 산 적포도주인 포토와인과 헝가리 산 백포도주인 토카이 와인을 주로 사마셨다. 이 와인은 슈퍼마켓에 가면 항상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는데 늘 할인된 가격으로 물경! 3천 원이다. 토카이는 고급 와인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싼 종류의 것도 있나 보다. 헝가리 물가가 체코보다 싸서 그런 것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맥주와 와인 가격이 이러하니 프라하는 가히 ‘술 권하는 사회’이다. 아내는 귀국 후 건강검진을 하니 지방간 수치가 다 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술 탓을 안 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한국 돌아와서는 음식이 달라지니 와인과도 다시 멀어졌다. 그래도 가끔씩 뭔 때면 치즈와 와인으로 기분을 내게 되는 건 체코 시절 배운 학습효과다. 


프라하의 와인바(좌), 오페라 극장의 와인 판매대


맥주와 와인은 풍요를 누렸지만, 역시 체코는 내륙국가이다 보니 거의 생선 구경을 하지를 못한다. 체코의 식료품 가격이나 외식비용은 한국의 절반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생선은 귀하다 보니 노르웨이 산 연어나 프랑스 등에서 운송된 농어 따위는 비쌌다.


음식점에서도 먹을 수 있는 생선 요리는 민물생선인 송어가 전부다. 특이하게 민물 생선인 잉어가 체코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야의 메인 요리로 사용된다. 먹어보지는 못했고 프라하 길거리에 이 잉어를 수조에 넣고 파는 노점상들이 곳곳에 등장하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음을 알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잉어 노점상


김치 담가 먹을 조선 배추나 무 비슷한 것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일단 중국인들이 있고 또 오래전 공산 체코 시절 산업연수생들로 왔던 북베트남 사람들이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북한 사람들이 북한으로 돌아간 것과는 달리 베트남으로 가지 않고 계속 이, 삼세들을 낳고 여기서 살고 있기에 이런 채소 시장이 형성돼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대형 마트 말고 동네의 식료품 가게는 거의 베트남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어 소소한 과일이나 채소 또는 쌀국수들을 이들 가게에서 구입하면 됐다. 


베트남 음식점은 체코 사람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어 언제나 가면 체코 사람들로 바글바글 댔다. 솔직히 말하면 체코 가서 체코 음식을 먹어본 건 별로 없고, 외식할 때는 베트남 식당을 자주 갔었다. 내가 방문한 카렐 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는 한국, 중국, 일본학과 말고 베트남 학과가 있다.


체코 사회에서 베트남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세금 잘 내고 별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살아가는 외국인들로 평판이 좋다. 한국서 한국말을 잘 못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보다가, 여기서 체코 말을 유창하게 하는 베트남 이세들을 보니 이들이 대단해 보였다.  


굴뚝 케이크라 부르는 트레들로 가게


그래도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베트남 음식점을 데리고 갈 수는 없어 한번쯤은 체코 음식을 대접해야 했다. 그때 먹는 것이 콜레뇨라는 음식이다. 아마 체코를 둘렀던 관광객은 이 음식을 대부분 먹어봤을 만큼 이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콜레뇨 식당을 가면 익살스러운 체코 종업원들은 한국말로 ‘족발’을 시킬 거냐고 물어본다. 


콜레뇨는 돼지다리 무릎 부분을 소스로 발라 화덕에 구워 낸 것이다 바비큐가 보통 그러하듯이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식초와 설탕에 절인 배추가 곁들여지기도 하고 밥 대신 덤플링이 함께 나오는데, 덤플링은 그냥 우리로 말하면 찐빵 맛이 나는 짐짐한 빵이다. 그렇다면  정작 콜레뇨 맛은 어떨까? 나에겐 별로였다. 단 수제 생맥주와 함께 먹으면 한두 번쯤은 먹을 만하다. 


실제 이 음식은 이웃나라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돼지 수육 또는 훈제 요리와 비슷해 이걸 굳이 체코 음식이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체코의 음식은, 식도락을 적대시해온 프로테스탄트 국가 독일의 영향으로, 그 양념이 단조롭고 음식 재료의 범위도 넓지 않아 이태리, 프랑스 같은 미식(美食) 국가의 음식들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콜레뇨 요리


나는 콜레뇨가 체코의 대표 음식으로 알고 한국 손님들에게도 그렇게 소개하고 대접했는데, 지인인 한국학을 연구하는 체코 할머니가 이를 참으로 신기하다고 얘기해줬다.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콜레뇨가 그런 음식으로 소개됐는지 모르겠다면서, 체코 사람들, 가령 여인네들은 거의 콜레뇨 요리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잘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 할머니 자신은 평생을 통해 두 번 정도 먹었다고 한다. 차라리 소금에 절여 햄처럼 저민 콜레뇨는 먹을지언정 한국인들이 체코 와서 먹는 그런 식의 콜레뇨는 거의 안 먹어봤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 말이 맞는다면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 


관광객으로 보고 가는 현실이 그 실상과는 거리가 있음을 새삼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이런 거야 사소한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밖의 다른 주요한 사실들을 판단해야 할 경우, 질문은 더 많이 던지되 진단은 덜 내리고 답은 성급히 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더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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